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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하늘색 머리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던, 마찬가지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응,《불릿 라인》을 보고 공격을 회피한 거야."

사내는 총탄의 궤적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다시 뛰었으며, 또 금세 정지했다. 이번엔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상반신을 90도로 젖혔다.

그 직후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두 발의 총탄이 사내의 머리위를, 한 발이 다시 사이를 통과했다. 다시 전진, 그리고 정지, 마치《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매우 기민한 동작을 보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7미터 정도를 전진했다. 앞으로 3미터면 플레이 요금의 도 부래를 얻을 수 있다──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제까지 세 발씩 같은 간격으로 연사하던 NPC 건맨이 시차를 두고 두 발, 한 발을 쏘았다. 뒤늦게 날아온 한 발은 점프로 회피했지만 착지하면서 균형을 잃고 왼손을 지면에 댔다. 황급히 일어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어, 건맨의 오른손이 불을 뿜자 날아든 불줄기가 사내의 하얀 조끼 위에 오렌지색 불꽃을 피웠다.

헤롱헤롱~, 하는 맥 빠지는 음악. 건맨은 지저분한 말로 승리를 외쳐댔고, 그의 뒤에서는 잭팟 금액 표시가 가벼운 금속성과 함께 500크레디트만큼 상승했다. 사내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게이트를 나왔다.

"......봤지?"

곁에 있던 소녀가 머플러 안에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했ㄷ다.

"좌우로 크게 움직이면 모를까, 거의 일직선으로 돌진해야 하니..... 아무래도 저 정도가 한계더라고."

"흐음...... 그렇구나. 라인이 보이면 이미 늦은 거란 말이지......"

나는 중얼거리곤 게이트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어......? 얘, 잠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저지하려는 소녀에게 한쪽 뺨만 살짝 치켜 올려 웃음으로 대답하고는 캐셔에 오른손을 댔다. 짤그랑 하는 구식 레지스터 같은 소리가 들리고 조용한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새로운 바보가 등장한 탓인지, 혹은 내 용모 탓인지 갤러리들과 조금 전의 한랭 지형 위장복 사내를 포함한 삼인조가 술렁거렸다. 머플러를 두른 소녀는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건맨의 욕설과 동시에, 눈앞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허리를 낮추고 전력질주 자세를 취했다. 숫자가 줄어들고 금속 바가 닫힌 순간, 나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몇 걸음도 나아가기 전에 건맨의 오른손이 척 올라오고, 그가 쥔 권총 끝에서 세 줄기의 붉은 선이 뻗어 나왔다. 각각 내 머리, 오른쪽 가슴, 왼발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느낀 순간, 있는 힘껏 오른쪽 전방으로 뛰었다.

그 직후 몸의 왼쪽을 스치고 오렌지색 불줄기가 지나갔다. 즉시 오른쪽 발로 바닥을 박차고 중앙으로 돌아왔다.

물론 VRMMORPG에서 총을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ALO에도, 그리고 SAO에도 활이나 독액이나 마법같은 원거리 공격을 하는 몬스터들은 다수 존재한다. 이런 원거리 무기를 회피하는 방법은 한 가지, 적의《눈》을 통해 사선(射線)을 읽는 것이다. 개발자였던 카야바 아키히코의 집착이었는지, 카디널 시스템 상에서 동작하는 VRMMORPG의 몬스터들은 모두 조준하는 곳과 완전히 똑같은 곳에 시선을 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눈에 속하는 기관을 가진 경우게 한해서.

그 원칙은 지금 내게 총을 겨누고 있는 NPC 건맨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나는 붉은 예측 라인도, 검은 총구조차도 보지 않은 채 오로지 건맨의 눈만을 응시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생명 없는 눈동자를 보고 탄환이 날아들 궤도의 기척을 감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혹은 위로 아래로 최소한의 거리만을 움직여 소리 없이 표시되는 예측선 그 자체를 회피했다. 실제로 탄환이 통과했을 때는 이미 나는 다음 전방 대시자체를 취하고 있었다.

3연발 총격을 2세트 회피한 시점에서 10미터 라인을 돌파했는지 짧은 효과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내 의식에는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다.

건맨이 여섯 발을 쏘아 텅 빈 탄창을 젖혀 탄피를 후방으로 배출하더니, 동시에 왼손으로 새 탄환 여섯 발을 단숨에 풀 장전, 철컥 하는 상쾌한 소리와 함께 프레임을 되돌리는 일련의 작업을 0.5초 만에──이건 정말 사기다──해치우고는 다시 나를 조준했다.

다음 공격은 이제까지처럼 리드미컬한 3연사가 아니었다. 변칙적인 간격을 두고 날아드는 두 발, 한 발, 그리고 세 발의 탄환을 나는 반 이상 감만으로 회피하고는 다시 5미터를 좁혔다. 다시 짧은 팡파르. 동시에 건맨은 번개와도 같은 0.5 리로드.

남은 거리는 5미터 이제 적은 코앞이다. NPC 건맨의, 기분탓인지 얄밉게 일그러진 콧수염 난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카우보이 모자 아래에서 검은 눈이 살짝살짝 움직이며 내 가슴 높이를 수평으로 흝었다. 좌우 회피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몸을 쓰러뜨려 금속 타일 위를 슬라이딩했다. 무슨 머신건이냐고 항의해주고 싶어지는 연사로 뿜어져 나온 여섯 개의 불줄기를 지나 2.5미터까지 접근했다.

이제 다시 적의 탄환이 멀어졌다. 재장전하는 0.5초의 틈이 있다면 충분히 터치다운할 수 있다.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생각한 나는 건맨의 눈이 싱극 웃는 것을 보였다. 어쩌면 그런 기분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

반사적으로 전방 대시 예정을 변경해 위로 힘껏 도약했다.

노 리로드로 리볼버에서 뿜어져 나온 여섯 발의 레이저가 바로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곳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말이 되냐! 입 안으로 외치면서도 공중에서 몸을 휘릭 1회전 해 건맨의 바로 앞에 착지.

여기서 멋들어진 대사 한 마디를 내뱉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았지만, 적이 또 다른 비장의 카드──이를테면 눈에서 광선을 쏜다거나──를 내놓기 전에 승부를 내기 위해 나는 가죽조끼를 입은 적의 가슴을 재빨리 터치했다.

가게 안의 소리가 모조리 사라진 듯한 한순간의 정작 후.

"오 마이 갓──────!"

요란한 절규와 함께 건맨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지면에 털썩 주저않았다. 동시에 미칠듯한 팡파르의 폭풍.

여기에 섞여 와르르르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었더니, 건맨의 등 뒤 벽돌벽이 안쪽부터 폭발하듯 무너졌다. 놀랄 틈도 없이 안쪽에서 금화의 비가 와르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내 발치까지 굴러오더니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네온 간판 아래에는 잭팟의 디지털 숫자가 빠르게 감소하더니 마침내 0이 되고, 그와 동시에 금액의 폭포도 사라졌다. 시끄러운 사운드가 한참을 가게 안에 울려 퍼진 후 게임은 리셋 되고, 건맨도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발적인 슬랭을 내뱉고는 있지만 조금 전의 말도 안 되는 12연사가 공개된 후에는 도전하려는 사람이 나타날지 어떨지 의심스러웠다.

"......휴우."

나는 숨을 내쉬고는 왼쪽의 울타리에 열린 출구로 게임 레인을 벗어났다.

그 순간, 어느샌가 두 배 정도로 늘어나 있던 갤러리의 벽에서 술렁임의 파도가 솟아났다. 뭐야, 적? 누구야, 쟤? 그런 목소리들이 오갔다.

인파 끝에서 재빠르게 달려온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날 응시했다. 몇 초 후, 그 입술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나왔다.

"......너, 반사신경 무지하게 좋구나...... 마지막에는 코앞에서...... 2미터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레이저가 날아왔는데 그걸 피하다니...... 그 정도 거리면 불릿 라인과 실제 사격 사이에 타임 랙도 거의 업을 텐데......"

"어...... 그, 그야......"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잠시 고민한 끝에 말했다.

"그야, 이 총알 피하기 게임은 예측 라인을 예측하는 게임이잖아요?"

"예......예측 라인을 예측해?!"

소녀의 귀여운 비명이 가게 안의 공기를 꿰뚫었다. 갤러리들도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분 후, 겨우 인파가 삼삼오오 흩어진 무기점 한구석에서, 나는 쇼 케이스 안의 라이플을 이것저것 바라보며 고개를 꼬고 있었다.

"으음...... 이 어설트 라이플이란 건 서브머신보다 구경이 작은데도 몸집이 큰 건 왜 그런가요?"

곁에 서 있던 소녀에게 소박한 의문을 던져보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놀라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낮선 것을 본 고양이처럼 경계심과 호기심이 섞인 눈동자를 가만히 내게 향하고 있었다.

"...... 그런 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어마어마한 회피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컨버트라고 했지? 전에는 무슨 게임을 했어?"

"어, 그게...... 흔해빠진 판타지인데요......"

"그래......? ──뭐, 됐어. BoB 예선에 나갈 거라면 실전을 볼 기회도 있을 테니까. 근데, 뭐랬지? 어설트 라이플이 구경이 작은 이유? 그건 미국의 M16부터 시작된 소구경 고속탄의 명중률과 관통력이 중시 설계 사상이......"

소녀는 거기서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마치 자신의 괴로움을 느낀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 기묘한 반응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즉시 조용한 미소가 자리를 잡았다.

"......이런 얘기는 별로 상관도 없겠지. 자, 얼른 네 쇼핑이나 마치자."

"어...... 네, 그러죠."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서 시선을 뗴고 커다란 쇼 케이스 앞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300K나 있으면 꽤 좋은걸 살 수 있겠지만...... 결국엔 본인의 취향과 애착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것부터 알아야겠다."

"애착이라......"

나는 소녀의 뒤에 서서 검게 번들거리는 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영 감이 오질 않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총에 관한 지식이라고는《권총에는 리볼버와 오토매틱이 있다.》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끙끙거리는 동안 어느샌가 가게 안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던 진열장 제일 끝까지 오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에게 맡겨 골라달라고 하자──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긴 쇼 케이스 한구석에 충과는 명백히 다른, 금속의 원통 같은 것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직경은 3센티미터, 길이는 20센티미터 정도 될까. 한쪽에는 등산용 캐러비너와 같은 금속 잠금쇠가 달려 있으며, 다른 한쪽은 약간 굵게 되어 있으면서 그 한가운데에 무언가의 발사구처럼 보이는 검은 구머이 뚫려 있었다. 이 가게에 진열되어 있으니 총의 일종이겠지만, 개머리판이나 방아쇠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원통 옆 위쪽에 조그만 스위치가 하나 보일 뿐 이었다.

"저기...... 이건 뭐에요?"

물어보자 소녀는 흘끔 시선을 돌리더니 살짝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것이 버릇인 모양이다.

"아...... 그건 광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