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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위의 통신기를 조작하다가 가만히 얼어 있는 헬렌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까 남자도 그걸로 포기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보란 듯이 행동해주자고."

"미스터 켈리 쿠어와 재스민 쿠어의 스탭이 단둘이서 식사를 한다는 겁니까? 그거야말로 뉴스거리인데요."

"난 신경 안 쓰는데, 당신은 곤란해?"

"예. 전 재스민의 보도 담당관이니까요."

매스컴을 관리해 입을 막는 입장에 있으면서, 그 매스컴에 쫓겨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쯤은 그 여자가 손을 써서 막아주겠지. 시간은 비어 있어?"

"오늘은 조금... 무리입니다. 내일 밤이라면 괜찮습니다만."

"그럼 내일 밤으로 하지."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고, 헬렌은 가볍게 인사한 뒤 방에서 나갔다.

통신기록을 조사해보자 익명의 연방보좌관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던 기록이 남아 있었다. 통신회선이다.

모르는 인물에게서 급히 연락해달라는 요청이 온 셈이니 이상하다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대화의 내용은 대충 상상할 수 있었다.

이 시간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판단하고 연락을 해보자, 한 눈에도 보좌관처럼 생긴 사람이 화면에 나와 짧게 인사한 뒤 곧바로 연방주석과 직통회선을 열어달라고 했다. 주석이 보낸 통신이 들어 있을 테니 서둘러서 확인하고 답장을 달라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용건이지만 직통회선이라고는 해도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보좌관과 통신을 끊고 직통회선을 열어보자, 분명히 주석이 보낸 문서가 도착해 있었다. 켈리가 유령성을 보러 갔다는 보고를 듣고 연락을 한 듯했다.

주석 자신이 켈리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의 편지였지만, 내용은 마치 느긋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도 조금만 더 젊었으면 자네처럼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둥 농담을 던지면서 부인한테 너무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일부러 연락한 건가 싶었지만, 화면에 비친 주석은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런데, 미스터 쿠어. 잘 알고 있겠지만 그 별에 대한 정보는 모두 연방이 관리하고 있다네. 물론 자네의 양식을 신용하지만, 모쪼록 신중하게 대처해주길 바라네. 그 별의 존재를 일반 시민들에게 알릴 수는 없으니까."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 편지는 입막음인 것이다. 정말 정치가라는 건 하는 짓이 너구리 같아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켈리는 곧바로 답장을 작성했고, 그 안에 이런 말을 넣어두었다.

"누구한테 이야기해봤자 그런 말도 안 되는 별은 자기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믿을 리가 없습니다. 직접 봐도 못 믿는 사람 쪽이 더 많지 않을까요. 제 입ㅇ서 비밀이 샐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누라한테 선물로 이야기하는 정도는 봐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보는 석양을 즐기면서, 켈리는 가우란 고원의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 현관 앞에서 베커 의무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의무장은 정기검진 때문에 찾아왔다고 했지만, 켈리를 보자마자 그대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야 돌아왔구만. 마누라는 큰일인데 대체 어디를 쏘다닌 거야?"

"큰일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어?"

"아무 일도 없으니 큰일이지."

의무장은 벌레라도 씹는 표정으로 말했다.

의무장은 재스민의 주치의로서 임신 중에는 안정을 취하도록 엄격하게 지시했다. 특히 절대로 날아다니거나 뛰어다니거나 달리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임신 중에도 전투 훈련을 할 인간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재스민도 일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알았어. 날아다니거나 뛰어다니거나 달리지만 않으면 되지?"

"총을 쏴대는 것도 전투기에 타는 것도 엄금이야. 임산부한테 격렬한 운동은 안 맞아. 적절한 운동 자체는 필요하니까 천천히 움직이는 것 자체는 상관없어."

"걷는 건?"

"물론 전혀 상관없지."

자신 있게 허락해버린 게 실수였을까. 오전에 밖으로 나갔던 재스민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평소에는 달려서 돌던 조깅 코스 30킬로미터를 걸어서 돌았다고 했다. 그밖에도 철봉에 매달려서 턱걸이를 하는 지경이다.

좀더 천천히 할 수 있는 운동으로 하라고 말했더니 실내 풀에서 10,000미터를 헤엄치는 주제에, 본인은 이것도 조심하느라 운동을 줄인 거라고 했다.

의무장 이하 의무반 전원은 지시를 포기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정말, 진찰하면서 걱정하는 내가 바보 같아져."

의무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켈리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 여자한테 상식을 기대하면 어쩌자는 거야?"

"알고는 있지만, 본인은 저렇게 펄펄한데 태아 쪽 발육이 영 시원치 않단 말이야."

"헤에?"

"그렇다고 태아한테 뭔가 특별한 이상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발육지연인 것만은 틀림없어. 어쩌면 조기분만을 유도해야 할지도 몰라."

"그것도 본인한테 이야기했어?"

"일단은. 자궁 내에서 완전히 발육이 멈춰버린다면 차라리 빨리 낳아버리는 편이 안전하다고 설명은 했어. 당신도 알아는 둬."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낳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무사히 태어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임신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자궁은ㅡ사람 몸도 그렇지만ㅡ작은 우주나 다름없어. 몇 만 년 전부터 당연하게 되풀이된 일이니까 잊어버리기 쉽지만, 한 개의 세포에서 아기를 만들어내는 거야. 말해두는데 이 과정은 엄청난 기적이라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집 안에 들어서자 또다시 패션쇼가 한창이었다.

단, 지금까지 벌어졌던 것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탁자 위에 가죽장갑이나 지갑, 벨트 등이 여러 종류 죽 늘어 놓여 있는 것이 맘치 상품설명회 같았다.

이 저택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가 그 곁에 서 있는 걸 보면 이 사람이 설명요원일까.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직 같은 분위기에 왠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영업직보다는 연구실 쪽이 어울리지 않을까.

재스민은 켈리를 봅고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고 있다. 옷이 상당히 넉넉해 보이는 걸 보면 임부복인 듯하지만, 정작 알맹이ㅡ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소우주 쪽은 그런 옷이 무색할 정도로 부푼 기색이 안 보인다.

"마침 잘 왔어. 이것 좀 시험해봐."

재스민은 켈리에게 신사용 장갑을 건넸다.

고급품이라는 점 이외에는 별로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인다. 시험해보라는 말은 끼어보라는 말일까.

"가죽 부분하고 안감 사이에 폭발성 섬유를 끼워놨어. 굳이 말하자면 장갑형 폭탄이지."

켈리는 얼굴을 찌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