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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 아니라 몸을 감추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하이웨이 한복판에 살짝 솟아오른 중앙분리대 위를 천천히, 천천히 걷고 있다. 조금 전 시합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불릿 라인이 없어도 내 저격은 언제든 피할 수 있다 이거야?

작약 같은 생각이 뇌리에서 터진 것과 동시에, 시논은 스코프의 조준선을 정확하게 키리토의 머리에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려 했던 그 순간, 1초 전의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키리토는 앞을 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허탈상태에 빠진 듯 온몸의 힘을 빼고 그저 두 다리를 교대로 움직일 뿐. 조금 전 시합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돌진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무기력한 걸음.

저래서는 시논의 저격을 회피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헤카테 Ⅱ가 뿜어내는 탄환의 속도는 음속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총성이 들렸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리고 아래를 보고 있으면 당연히 머즐 플래시를 발견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다시 말해, 키리토는 처음부터 탄환을 피할 마음이 없었다. 일부러 공격을 맞고 자신의 패배로 이 시합을 끝낼 생각인 것이다. 본선 진출권을 따낸다는 목적만 이루면 뒷일은...... 시논과의 결승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우......"

시논의 입술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나왔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힘을 넣었다. 녹색 불릿 서클이 나타나고 키리토의 축 늘어진 머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그 격렬한 움직임은 시논의 심박수가 크게 흐트러졌음을 나타내지만, 바람은 미풍인 데다 거리는 고작 40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쏘면 반드시 맞는다.

검지 아래에서 방아쇠의 스프링이 끼리릭 작은 소리로 울었다. 하지만 금세 손가락이 풀렸다. 다시 한 번 힘을 주고, 방아쇠가 운다. 다시 되돌린다.

"............웃기지 마!!"

그 외침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일그러진 것이었다.

동시에 시논은 방아쇠를 당겼다. 50구경 라이플의 포효가 관광버스 안에 가득 차고, 커다란 앞 유리창이 새하얗게 물들었다가 터져 나갔다.

발사된 탄환은 저녁놀의 진홍빛을 일직선으로 꿰뚫고 날아가──키리토의 오른쪽 뺨에서 5센티미터 이상 벗어난 공간을 통과해 아득한 등 뒤의 노면에 쓰러져 있던 승용차의 배에 명중했다. 불기둥. 잇달아 시커면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머리 바로 옆을 12,7밀리미터 탄환이 가로질러간 압력에 밀려난 키리토는 살짝 비틀거린 후 멈춰서는 고개를 들었다.

소녀처럼 단정한 그 용모에는 왜 빗맞힌 것인가 하는 의문의 빛만이 엷게 베어 있었다. 스코프 한가운데에 비친 그 얼굴을 응시하며 시논은 볼트 핸들을 당기더니 지체하지 않고 두 번째 탄환을 발사했다.

이번 탄환은 키리토의 머리 위를 날아가 필드 저편으로 사라졌다.

재장전. 방아쇠를 당긴다. 세 번째 탄환이 키리토의 발치 약간 왼쪽의 아스팔트에 거대한 탄흔을 뚫었다. 재장전. 발사. 재장전. 발사. 재장전. 발사.

여섯 개의 탄피가 시논의 주위를 구르다 잠시 후에 소멸했다.

멀쩡하게 서 있던 키리토는 스코프 너머로 그저 질문하듯 시선만을 보낼 뿐이었다.

시논은 부스스 일어나서는 헤카테를 두 손으로 끌어안고 버스의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거의 흔적도 없이 날아간 앞 유리창을 지나 길 위에 뛰어내리고, 그대로 걸어간다.

얼마 후 키리토에게서 겨우 5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도착하자 시논은 발을 멈추었다.

아직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검은 옷의 광검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왜 그래."

그 질문의 의미와 여기 담긴 비난은 키리토에게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다시 발밑을 향한다.

마침내, 마치 NPC처럼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가 낮게 돌아왔다.

"......내 목적은 내일 본선에 나가는 것뿐이야. 더 이상 싸울이유는 없어."

예상했던 대답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순식간에 가슴에 차올라 다음 말을 밀어냈다.

"그럼 시합 개시 직후에 그 총으로 자살했으면 될 거 아냐. 총알 값이 아까웠어? 아니면 일부러 총에 맞아 킬 카운트 하나를 헌납하면 내가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어......?!"

고개를 숙인 키리토에게 다시 한 걸음을 다가갔다.

"고작해야 VR 게임. 고작해야 원 매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네 마음이야! 하지만 그 가치관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면서도 시논은 자신 또한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개인적인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지금의 시논도 마찬가지였다. 키리토를 용서할 수 없다면 첫 일격으로 시합을 결판내고 그대로 잊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지 않은 채 여섯 발의 탄환을 일부러 빗맞혀 상대를 위협하고, 나아가서 얼굴을 맞대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났다. 오히려 떼를 쓰는 것은 시논 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시논은 자시늘 억제할 수 없었다. 헤카테를 끌어안은 두 팔이 떨리는 것을,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그리고 두 눈가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저 멀리 지평선으로 가라앉는 태양을 등지고 반쯤 실루엣이 되었던 키리토의 두 분이 꽉 감기고 입가가 굳게 다물어졌다.

마침내 가녀린 아바타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더니, 미약한, 하지만 어렴풋한 감정이 깃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나도 아주 옛날에, 누군가를 그렇게 책망 했던 것 같아............"

".................."

말없는 시논을 흘끔 보고 킬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고작해야 게임. 고작해야 원 매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이 세계에 살아갈 의미도 자격도 없지. 나는 분명 그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리고 머리를 들더니 칠흑의 눈동자로 시논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세계에서 온 검사는 말했다.

"시논, 내게 사죄할 기회를 주겠어? 지금부터 나와 승부해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시논은 한순간 분노도 잊고 눈을 크게 떴다.

"지금부터라니...... 무슨 소리야."

BoB 예선 및 본선은 적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조우전이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지도 않은 채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으니, 개시 때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키리토는 슬쩍 웃더니 왼손의 파이브세븐은 홀스터에서 뽑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시논을 손으로 저지하고는, 한 번 슬라이드를 당겼다. 배출된 탄환을 허공에서 멋지게 캐치하고 총을 홀스터에 다시 넣는다.

가느다란 5.7밀리미터 탄환을 왼손 손가락으로 핑그르르 돌리더니, 키리토는 말했다.

"너도 아직 탄환은 남았지?"

"............응, 한 발."

"그럼 결투 스타일로 하지. 음...... 10미터 떨어져서 너는 라이플을, 나는 검을 드는 거애. 이 탄환을 던져서, 지면에 떨어지면 승부 시작. 그러면 어떻까?"

놀랐다기보다 시논은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의 분노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는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입을 움직였다.

"저기......? 그걸로 승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 겨우 10미터면 이 헤카테의 탄환은 안 맞을 수가 없어. 내 스킬 숙련도에 스탯 보정, 거기에 얘의 스펙이 더해지면 시스템상 필증거리란 말이야. 광검을 움직일 틈도 없어. 결국 네가 자살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을 텐데."

"그야 해보지 않고는 모르지."

오만불손하게도 그렇게 말하고──키리토는 붉은 입술에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시논은 등에 무언가 짜릿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진심이다. 이 광검사는 진심으로 나와 웨스턴 스타일의 결투를 해서 이길 생각인 것이다.

분명 헤카테 Ⅱ의 탄찰에는 앞으로 탄환이 한 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그걸 어떻게든 회피한다면 승부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필중이자 필살의 탄환을《어떻게든》피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쇼핑몰에 있었던《탄환 피하기 게임》의 건맨이 사용하는 골동품 리볼버하고는 탄속도 정밀도도 위력도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만약 키리토에게《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어. 어떻게든.

다음 순간, 시논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좋자. 그걸로 결판을 내주겠어."

그리고 돌아서서 중앙분리대 위를 열 걸음 동쪽으로 날아간 후 다시 한 번 태양을 향해 마주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정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