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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힘이 돌아온 몸을 일으켜 세검을 지팡이 삼아 천천히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키리토도 일어났다. 두 사람은 비틀비틀거리며 소녀를 향해 몇 걸음을 다가섰다.

「유이……」

아스나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걸자 소녀도 소리없이 돌아보았다. 조그마한 입술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커다란 칠흑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유이는 아스나와 키리토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빠……엄마……. 전부, 생각났어……」

◆ ◆

흑철궁 지하미궁 심장부의 안전지대는 완전한 정사각형을 하고 있었다. 입구는 하나뿐이고, 중앙에는 매끄럽게 닦인 검은 입방체의 돌책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스나와 키리토는 돌책상에 오도카니 앉은 유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엘과 싱커는 한발짝 먼저 탈출했기 때문에 지금은 셋뿐이었다.

기억이 돌아왔다고 말한 후로 유이는 몇 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어째서인지 슬픔이 맺혀 있었으며, 말을 거는 것이 주저되었지만 아스나는 마음을 굳히고 물어보았다.

「유이……. 생각난 거야……? 지금까지의, 일……」

유이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으나,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어린 눈으로 웃으며 살짝 입을 움직였다.

「네…….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키리토 씨, 아스나 씨」

그 정중한 말을 듣자마자 아스나의 가슴이 불길한 예감에 옥죄어들었다. 무언가가 끝나버릴 것만 같은 애절한 확신.

네모난 방 한가운데에서 유이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소드아트·온라인》이라는 이름의 이 세계를 제어하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의 이름은 《카디널》. 그것이 이 세계의 밸런스를 자신의 판단에 의거해 제어하고 있습니다. 카디널은 원래 인간의 정비가 필요없는 존재로 설계되었죠. 두 개의 코어 프로그램이 상호 에러를 수정하며, 또한 무수한 하위 프로그램으로 세계 전체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몬스터 및 NPC의 AI, 아이템과 통화의 출현 밸런스, 이 모든 것이 카디널이 지휘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죠. -하지만 단 한 가지, 인간의 손에 맡겨야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정신성에 기초한 트러블. 그것만은 같은 인간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수십 명 규모의 스태프가 준비될, 예정이었습니다」

「GM……」

키리토가 중얼거렸다.

「유이, 즉 너는 게임 마스터-인거야……? 아가스의 스태프……?」

유이는 몇 초간 침묵한 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디널 개발자들은 플레이어를 돌보는 것까지도 시스템에 맡겨보기 위해 어떤 테스트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너브 기어의 특성을 이용해 플레이어의 감정을 상세히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생긴 플레이어의 곁에 찾아가 말을 들어주는…… 《멘탈 헬스·카운슬링 프로그램》. MHCP 시작(試作) 1호, 코드네임 《Yui》. 그것이 저입니다」

아스나는 경악한 나머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 AI라고 하는 거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유이는 슬픈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제게는 감정 모방 기능이 주어졌습니다. -가짜인 거에요, 전부……이 눈물도……. 죄송합니다, 아스니 씨」

유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더니 빛의 입자가 되어 증발했다. 아스나는 유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손을 뻗었지만, 유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스나의 포옹을 받아들일 자격 따윈 없다고 말하듯.

아직까지 믿을 수가 없어 아스나는 말을 쥐어짜냈다.

「그래도……그래도, 기억이 없었던 건……? AI에게 그런 일도 일어나는 거야……?」

「……2년 전……,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날……」

유이는 눈을 내리깔고, 설명을 이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저도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카디널이 제게 예정에 없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플레이어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금지……. 구체적인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의 정신상태 모니터링만을 계속했습니다.

아스나는 반사적으로 , 그 《예정에 없는 명령》이란 SAO 유일의 게임 마스터 카야바 아키히코의 조작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 인물에 관한 정보를 지니지 않았을 유이는, 어린 얼굴에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움직였다.

「상태는-최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모든 플레이어는 공포, 절망, 분노와 같은 어두운 감정에 항상 지배당했으며 때로는 광기에 빠지는 사람마저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원래대로였다면 당장이라도 그 플레이어의 곁에 달려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데…….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게 접촉할 수는 없었습니다……. 의무만 있을 뿐 권리가 없는 모순된 상황 속에서, 저는 서서히 에러를 축적했고,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지하미궁 바닥에 은실을 흔드는 듯한 유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아스나와 키리토는 조용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모니터링을 하고 있을 때,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매우 다른 정신 파라미터를 가진 두 플레이어의 존재에 깨달았습니다. 그 뇌파 패턴은 그때까지 채취했던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쁨……편안함……,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감정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한 저는 그 두 사람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대화나 행동을 접할 때마다 제 안에 이상한 욕구가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루틴은 없었을 텐데도……. 그 두 사람의 곁에 가고 싶다……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저는 매일 두 사람이 사는 플레이어 홈에서 가장 가까운 시스템 콘솔에 실체화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저도 상당히 망가졌던 것일 테지요……」

「그게, 그 22층의 숲인 거야……?」

「네, 키리토 씨, 아스나 씨……저, 줄곧, 두 분과……만나고 싧엎습니다……. 숲속에서, 두 분의 모습을 봤을 때는……굉장히, 기뻤습니다……. 이상하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저는, 그저, 프로그램인데……」

끈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유이는 말했다. 아스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두 손을 가슴 앞에서 꼭 쥐었다.

「유이……너는, 진정한 AI구나. 진짜 지성을 가지고 있어……」

속삭이듯 말하자 유이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저에게는……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되 버린 것인지……」

그 때,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키리토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유이는 이제, 시스템에게 조종당하기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야. 그러니까, 자신의 바람을 입으로 말할 수 있을 거야」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걸었다.

「유이의 바람은 뭐니?」

「저는……저는……」

유이는, 두 사람을 향해 가느다란 팔을 한껏 벌렸다.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아빠……엄마……!」

아스나는 넘쳐나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유이에게 다가가서는, 그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거야, 유이」

키리토도 유이와 아스나를 끌어안았다.

「아아……. 유이는 우리 아이야. 집으로 가자. 모두 같이 살자……언제까지나……」

하지만……유이는, 아스나의 품 안에서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에……」

「이미……늦었어요……」

키리토가, 당황한 듯한 소리로 물었다.

「어째서야……늦었다니……」

「제가 기억을 되찾은 건……저 돌에 접촉했기 때문이에요」

유이는 방 한가운데로 시선을 돌려 그곳에 안치된 검은 입방체를 작은 손으로 가리켰다.

「아까 아스나 씨가 저를 이 안전지대로 대피시켜주셨을 때, 저는 우연히 저 돌을 건드리고, 그리고 알았죠. 저건 단순한 장식 오브젝트가 아니었어요……. GM이 시스템에 긴급 액세스하기 위해 설치한 콘솔인 거에요」

유이의 말에 무슨 명령이 담기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돌에 갑자기 몇 줄기의 광채가 흘렀다. 그 직후 붕……하는 소리를 내며 표면에 청백색의 홀로키보드가 떠올랐다.

「조금 전의 보스 몬스터는 이곳으로 플레이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카디널이 배치한 것일 테지요. 저는 이 콘솔에서 시스템에 액세스한 후 《오브젝트 이레이저》를 불러내 몬스터를 소거했습니다. 그때 카디널의 에러 정정 능력 덕에 파손된 언어기능을 복원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방치되었던 저를 카디널이 주목하는 결과도 가져왔지요. 지금 코어 시스템이 제 프로그램을 스캔하고 있어요. 금방 이물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저는 사라질 거에요. 이젠……별로 시간이 없어요……」

「그런……그런 건……」

「뭔가 방법은 없는 거냐고! 이 장소에서 떨어지면……」

두 사람의 말에도 유이는 잠자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다시 유이의 하얀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 엄마, 고마워요. 이걸로 작별이네요」

「싫어! 그런 건 싫어!!」

아스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지금부터잖아!! 지금부터, 모두 즐겁게……사이좋게 살아가려는데……」

「어둠 속에서, 언제 끝늘지도 모르는 긴 괴로움 속에서, 아빠와 엄마의 존재만이 저를 붙들고 있었어요……」

유이는 아스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희미한 빛이 그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유이, 가지 마!!」

키리토가 유이의 손을 쥔다. 유이의 조그마한 손가락이 살짝 키리토의 손가락을 잡았다.

「아빠랑 엄마의 곁에 있으면, 모두들 활짝 웃었어요……. 저, 그게 너무나도 좋았어요. 부탁이니, 앞으로도……저 대신……사람들을 구해주세요……기쁨을 나눠주세요……」

유이의 흑발과 원피스가 끝부터 아침 안개처럼 덧없는 빛의 입자를 흩뿌리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유이의 미소가 천천히 투명해져 갔다. 무게가 희미해져 갔다.

「싫어!! 싫다고!! 유이가 없으면, 난 웃을 수 없어!!」

넘쳐나는 빛에 휩싸이며 유이는 생긋 웃었다. 사라지기 직전의 손이 살짝 아스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엄마, 웃으세요…….

아스나의 머릿속에 어렴풋한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과 동시에 한층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그것이 사라진 순간 아스나의 품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억누를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아스나는 무릎을 꿇었다. 돌바닥 위에 웅크린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차례차례 지면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유이가 남긴 빛의 파편에 섞여 사라져갔다.

■4

어제까지의 싸늘했던 날씨가 거짓말인 것처럼 따뜻한 미풍이 잔디 위에 불고 있었다. 온기에 이끌렸는지 작은 새들이 몇 마리 정원수 위에 앉아 인간들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샤네 성당의 넓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