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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담임교사가 말했다.
그 한마디에 일제히 학생들은 책상 서랍이나 가방에서 제각기 책을 꺼냈다.
요즘은 어느 학교나 행하고 있다는 아침의 10분간 독서. 소녀도 책상 서랍에서 읽던 문고를 꺼냈다. 천천히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겼다.
‘한겨울에 반소매 티셔츠 하나만 입고 지낼 수 있을 만한 따뜻함. 한여름에 눈이 내려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 책은 그런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소녀는 그것을 읽을 때마다 ‘아-,그럴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에 빠졌다.
물론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책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소녀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책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도 지금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 많으니까.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 그리고 문명이 진보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현상 등.
그렇다면 계절이 뒤바뀌는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소녀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상의 끝도 올지 몰라.
1월 17일. 화요일.
목도리 후 맑음.
아침. 오늘은 지각 직전이 아니었고 목도리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역시 추운 것보다는 낫다. 훨씬 낫다. 더운 것도 싫다. 더우니까. ...어서 봄이 오지 않을까? 수업 내내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졸지만 그게 또 좋다. 멍하니 생각에 잠길 수 있고.
앞머리를 매만졌다.
짧은 시간.
시작종 소리와 담임교사 그리고 시작되는 독서 시간. 소녀는 이 시간이 좋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가운데 흐르는 자신만의 시간. 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학교에 있을 때 유일한 자신만의 것.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었다. 독서 시간이지만 문득 책에서, 활자들에서 눈을 떼고 창 밖을 내다보거나 교실 안을 살며시 둘러보는가 하면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면 저절로 하품이 나오는 것이다. 오늘은 지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젯밤에는 아주 늦게 잠들었다. 이부자리에는 일찍 들었는데.
밤, 잠자기 전. 그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끝과 별의 빛, 그것이 도착하는 세상에 대해서. 펼쳐지는 세계. 그리고 우주의 한 귀퉁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어쩌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뭔가가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잠이 달아나버렸다.
자명종 시계 소리에 깨기 10분 전.
세상은 이미 끝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한 듯이 아침은 찾아왔고 세상은 오늘도 시작되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어제와 다른 점은 목도리를 하고 온 것. 지각할 뻔하지 않은 것. 헐레벌떡 뜀박질하지 않은 것. 실내화를 똑바로 신은 것. 그리고 항상 지각하는 남자애가 지각하지 않고 제 시간에 등교한 것. 조금 실망했다.
‘오늘’은 아마도 당연한 듯이 멀어져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변화도 없이.
독서 시간. 소녀가 읽은 것은 단 두 줄뿐이었다.
1월 18일. 수요일.
눈 내린 후 흐림.
소녀가 자고 있는 사이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에는 이미 온 동네가 눈으로 살짝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한숨이 하얗고 뽀얗게 부서졌다. 눈이 내리는 것은 춥기 때문이다. 추운 건 싫다. 눈은 예쁘지만 춥잖아. 걷기 힘들고.
아니나 다를까, 눈길에 미끄러져서 소녀는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도 은근히 아팠다.
이 동네는 그렇게 눈이 쌓이는 곳이 아니었다.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소녀와 마찬가지로 눈이 내렸을 때에 걷는 법을 몰랐다. 평소와 같은 보폭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눈에 미끄러져서 꽈당. 꼴사납고 창피하고 아팠다. 앞머리를 매만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나 소녀는 당당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않았다. 그리고 시작되는 10분간. 늘
그렇듯이 책을 펼쳤다. 평상시처럼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 돌아다녔다.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