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또는 단체 정치자금 기부금지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의 정치자금, 그리고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한 정치자금 기부는 금지되고 있다. 이는 부적절한 정경유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은 한국 정치자금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배경에는 2002년 제16대 대선 당시 드러난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있었다. 당시 거대 정당들은 대기업으로부터 막대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에 돈을 가득 실은 채로 정당에 기업의 돈이 기부되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면서 정치자금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여기서 도입된 규제가 바로 정치자금법 제31조 ‘법인·단체 정치자금 기부 금지’이다. 정치자금법 제31조 제1항은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가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누구든지 국내외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인이나 단체 명의의 직접 기부뿐만 아니라, 법인이나 단체가 임직원 및 구성원 등의 명의를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까지 차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대법원은 정치자금법 제31조 제1항에서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것은 법인 또는 단체 스스로 자신의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동조 제2항은 법인 또는 단체가 스스로 정치자금을 기부하지 않더라도 기부자금의 모집 또는 조성에 주도적, 적극적으로 관여한 경우에는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즉 명의만 개인일 뿐 실질적으로는 단체 의사에 따라 조성되고 집행되는 자금이라면 정치자금법상 금지된다는 것이다.


위 대법원 판례는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이하 '청목회')의 임원들이 공모하여 청원경찰법 개정 입법로비를 위하여 소위 '쪼개기 후원'을 한 사안에서 나온 것이다. 청목회는 2008~2009년 청원경찰 처우 개선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면서, 특별회비 형식으로 모금한 단체 자금 약 3억 원을 회원 개인 명의로 분산하여 다수의 국회의원에게 후원하였다. 청목회는 입법 로비를 위해 약 140명의 의원들과 접촉했고, 실제로 38명의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해당 특별회비가 청목회라는 단체의 의사결정에 따라 사용 가능한 자금이므로 정치자금법 제31조 제2항의 ‘단체와 관련된 자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청목회 간부들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14년 결정(2011헌바254)에서 정치자금법 제31조의 합헌성을 인정하였다. 헌법재판소는 ‘단체’란 공동의 목적과 이해관계를 가진 지속적 조직체를 의미하며, ‘단체와 관련된 자금’ 역시 단체 명의 또는 단체의 의사결정에 따라 사용 가능한 자금을 의미하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해당 조항은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통한 금권정치와 정경유착을 차단하고, 단체 구성원의 의사에 반하는 정치자금 제공을 방지하기 위한 정당한 입법목적을 가진다고 보았다. 특히 단체의 정치적 표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비해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금을 통한 정치활동 방식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쪼개기 후원이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개인이 특정 정치인에게 연간 500만 원 미만을 후원할 경우 후원자 명단 공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단체 자금을 소액으로 분산하여 제공하면 추적과 감시가 쉽지 않다. 실제 청목회 사건 역시 개인당 수십만 원 또는 수백만 원 이하의 소액 후원 방식이 활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한국의 제도 방향이 미국과는 상당히 대비된다는 점이다. 한국이 2004년 이후 법인 및 단체 자금의 정치 개입을 강하게 차단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면, 미국은 오히려 법인 및 단체의 정치자금 지출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상징적인 계기가 바로 2010년 연방대법원의 Citizens United v. FEC 판결이다.


해당 소송은 보수 성향 비영리 단체인 ‘시민연합 Citizens United’이 제기했는데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상원의원을 비판하는 영화 상영에 대해 미국 연방선거위원회 FEC가 이 영화를 선거 관련 광고로 분류하고 상영을 금지하자 소송을 낸 것이었다.


이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기업과 단체의 정치광고 및 독립지출을 표현의 자유로 폭넓게 보호하였다. 법원은 후보자나 정당과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지출은 부패의 원인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5대 4 결정으로 회사나 노조도 이른바 ‘독립 지출 independent expenditures (특정 후보 선출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광고비 지출)’을 할 수 있도록 결정). 그 결과 기업과 거대 자본이 선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후 미국 정치에서는 이른바 ‘슈퍼 PAC(Super PAC)’ 중심의 거대 정치자금 구조가 형성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지출이 형식적으로만 ‘독립적’ 일뿐 실제로는 후보자 및 정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후보자들이 사실상 자신을 지원하는 슈퍼 PAC 설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거대 기부자들은 특정 정치인에게 집중적으로 자금을 제공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사회에서는 Citizens United v. FEC 판결 이후 “다크 머니(dark money)” 문제가 심각한 민주주의 위협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자금 출처가 공개되지 않는 정치자금이 선거에 대규모로 투입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국은 금권정치와 정경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강한 규제 모델을 채택하였다. 반면 미국은 정치자금 지출을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폭넓게 보호하면서 기업과 거대 자본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는 슈퍼 PAC과 다크 머니 문제는 거대 자본이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정치자금법 제31조는 단순한 자금 규제 조항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경제력에 의해 과도하게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핵심 장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청목회 사건이 보여주듯이 단체 자금이 개인 명의를 통해 우회적으로 정치권에 유입되는 구조는 여전히 차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 정치자금의 투명성 강화, 선거관리위원회의 상시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 보다 정교한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