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문의주세요 ✔ 전자체품렌탈

고 싶지 않았다. 평생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던 죽음의 공포는 아직까지도 내 등에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오늘밤 혼자 잠든다면 분명 꿈에 나타날 것이다. 그 사내의 광기와 몸으로 파고들던 검, 그리고 그의 몸에 찔러 넣었던 오른팔의 감촉이.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아스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으나-

곧, 두 볼을 붉히면서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로 찾아온 살렘부르그의 아스나의 집은, 변함없이 아담하고, 그러면서도 편안한 온기로 나를 맞아주었다. 여기저기 효과적으로 배치된 소품 오브젝트가 주인의 뛰어난 센스를 말해준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당사자인 아스나는,

“와, 와앗-, 어지럽혀져 있네. 최근 별로 돌아오지 않았더니....”

에헤헤, 하고 웃으며 재빨리 여러 물건들을 치운다.

“금방 밥 지을게. 키리토는 신문이라도 보면서 기다려.

“으, 응”

무장해제하고 에이프런으로 갈아입더니 주방으로 사라져버리는 아스나를 보며, 나는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의 큼지막한 신문을 집어들었다.

신문이라 해도 정보상을 생업으로 삼는 플레이어들이 적당한 헛소리를 모아 신문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수상한 물건이지만, 그래도 오락거리가 적은 아인클라드에선 그것도 귀중한 미디어인지라 정기구독하는 플레이어가 적지 않다. 네 페이지밖에 안 되는 그 신문의 1면을 무심코 본 나는 짜증이 나서 내던지고 말았다. 나와 히스클리프의 듀얼이 톱기사로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신 스킬·이도류가 나타났으나 신성검 앞에 어이없이 패배】

그런 헤드라인 밑에는 고맙게도 히스클리프 앞에 주저앉은 내 모습을 담은 사진- 기록 크리스탈이라는 아이템으로 촬영할 수 있다- 까지 실려 있었다. 놈의 무적 전설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더해주는 걸 도와주고 만 셈이다.

하지만 뭐, 이로써 별것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진다면 소동도 가라앉지 않을까.....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 납득한 후 레어 아이템 상장표 따위를 훑어보고 있으려니, 부엌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저녁식사는 소와 비슷한 몬스터의 고기에 아스나 스페셜 간장 소스를 뿌린 스테이크였다. 식재료 아이템의 랭크로는 그리 고급이 아니지만, 뭐니뭐니 해도 양념이 훌륭한 것이다. 고기를 막 먹어치우는 나를 아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소파에 마주 앉아 식후의 차를 천천히 마시는 동안 아스나는 어쩐지 말이 많았다. 좋아하는 무기의 브랜드며, 어디의 어느 플로어에 관광명소가 있다 등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반쯤 멍하니 듣고 있었으나, 아스나가 갑자기 침묵에 잠기는 바람에 걱정이 들었다. 찻잔 안에서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시선을 떨군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표정이 굉장히 진지해, 마치 전투를 앞두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어, 어이, 대체 어떻게 된....”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스나는 오른손의 찻잔을 소리높여 상에 내려놓더니,

“......좋아!!”

기합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그대로 창가까지 걸어가선 벽을 터치해 방의 조작 메뉴를 불러내더니, 느닷없이 네 귀퉁이에 설치된 조명용 랜턴을 모두 껐다. 방이 어둠에 휩싸인다. 내 색적 스킬 보정이 자동으로 적용되면서 시야가 암시(나이트비전)모드로 전환되었다.

어스름한 푸른색으로 물든 방 안. 창문으로 스며드는 가로등의 어렴풋한 불빛에 비친 아스나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나는 그 아름다움에 숨을 삼켰다.

이제는 쪽빛으로 보이는 긴 머리카락, 튜닉에서 늘씬하게 뻗어나온 새하얀 손발. 그런 것들이 엷은 빛을 반사해 마치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스나는 한동안 말없이 창가에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왼손을 가슴께에 대고 무언가를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말을 걸려는 순간 아스나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허공에 치켜든 손의 검지를 가볍게 휘두른다. 퐁, 하는 효과음과 동시에 메뉴 윈도우가 나타났다.

푸른 어둠 속에 보라색 시스템 컬러로 빛나는 그 위에서 아스나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보아하니 왼쪽의 장비 피규어를 조작하고 있는 모양-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스나가 신고 있던 무릎길이 양말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우아한 각선미를 그리는 맨다리가 드러났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번엔 원피스 튜닉 자체가 장비 해제되었다.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사고 정지에 빠졌다.

아스나는 이제 속옷만을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하얗고 조그마한 천 조각이 간신히 가슴과 허리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쪽...보지 말아줘....”

떨리는 목소리로, 가늘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스나는 두 팔을 몸 앞에서 꼰 채 우물쭈물하고 있었으나, 마침내 고개를 들고 똑바로 이쪽을 보더니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내렸다.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충격을 맛보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다. 푸른색 빛의 입자를 두른 매끄럽고 부드러운 피부, 최상급 비단실을 두른 듯한 머리카락, 뜻밖에도 양감이 있는 두 개의 융기는 역설적이지만 어떤 그래픽 엔진으로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곡선을 그렸으며, 늘씬한 허리에서 두 다리에 걸친 곡선은 야생동물을 연상케 하는 탄력적인 근육에 싸여 있었다.

단순한 3D 오브젝트 따위가 결코 아니다. 비유하자면, 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 같다고 해야 할까-.

SAO 플레이어의 육체는 초기 로그인 때 너브 기어가 대체로 칼리브레이션을 위한 데이터를 토대로 자동 생성된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육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얼빠진 것처럼 언제까지고 그 반나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아스나가 견디지 못하고 두 팔로 몸을 가리고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한 시간쯤은 그대로 있었을 거이다.

아스나는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키, 키리토도 빨리 벗어....나만, 차, 창피하잖아”

그 목소리에 나는 간신히 아스나가 취한 행동의 의도를 깨달았다.

즉, 그녀는- 내가 했던, 오늘밤 함께 있다고 싶다는, 그 말을 나보다도 한 단계 앞서나간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그것을 이해함과 동시에 나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패닉에 빠졌다. 그 결과 이제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아니, 그, 나는.....단지.....오늘밤에 가, 같은 방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것뿐인....생각으로.....”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