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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가”

크큿, 하고 비웃는다.

크라딜은 그 모든 존재를 무수한 유리파편으로 바꾸었다. 챙그랑! 하고 흩어져 날아가는 폴리곤 무리의 싸늘한 압력에 짓눌려, 나는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마비된 의식 속으로 한동안 필드에 부는 바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마침내 불규칙하게 모래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려보니 퀭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가녀린 모습이 보였다.

아스나는 몸을 움츠린 채 비틀비틀 몇 걸음 다가서더니 실 끊긴 인형처럼 내 곁에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을 살짝 내밀려 했지만 내게 닿기 전히 흠칫 거둔다.

“.....미안해....나....나 때문이구나....”

비통한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치고, 보석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며 차례로 굴러 떨어졌다. 나도 바짝 말라버린 목으로 어떻게든 짧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스나.....”

“미안해...... 나....이...이제....키리토와는...마....만나지 않.....”

간신히 감각이 돌아온 몸을 나는 필사적으로 일으켰다. 온 몸에 주어진 데미지 탓에 불쾌한 마비감이 남아 있긴 했으나, 오른팔과 잘려나간 왼팔까지 뻗어 아스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대로, 앵두빛의 아름다운 입술을 내 입술로 막았다.

“.....!”

아스나는 온몸을 굳히더니 두 팔로 나를 밀쳐내려 저항했으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틀림없이 해러스맨트 방지 코드에 저촉되는 행위다. 지금 아스나의 시야에는 코드 발동을 재촉하는 시스템 메세지가 표시되고 있을 것이며, 그녀가 OK 버튼을 누르면 나는 순식간에 흑철궁 감옥 에어리어로 전송되겠지.

하지만 나는 두 팔을 조금도 풀지 않은 채, 아스나의 입술에서 뺨을 훑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 목숨은 네 거야, 아스나. 그러니 너를 위해 쓰겠어. 최후의 순간까지”

3분간의 부위 손실 스테이터스가 부과된 왼팔로 한층 강하게 등을 끌어당기자, 아스나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나도. 나도 반드시 너를 지켜줄게. 이제부터 영원히 지켜낼 테니까. 그러니까.....”

그 다음은 말로 잇지 못했다. 굳게 서로를 포옹한 채, 나는 언제까지고 아스나의 오열을 듣고 있었다.

맞닿은 몸에서 전해져오는 온기가, 싸늘해진 몸을 조금씩, 조금씩 녹여주었다.

【16】

아스나는 그랜덤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위치를 줄곧 맵으로 모니터했다고 대답했다.

고드프리의 반응이 소실된 순간 도시를 달려 나왔다니, 우리가 한 시간 걸려서 걸어온 거리, 약 5킬로미터를 5분만에 주파한 셈이다. 민첩성 파라미터 보정의 한계를 넘어선 믿기 힘든 수치다. 그것을 지적하자 “사랑의 힘이야“ 하며 살짝 웃어보였다.

우리들은 길드 본부로 돌아가 히스클리프에게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고, 그대로 일시 퇴단을 신청했다. 아스나가 그 이유를, 길드에 대한 불신이라고 설명하자, 히스클리프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긴 끝에 퇴단을 허락해주었으나, 마지막으로 그 수수께끼의 미소를 지으며 “그러나 너희들은 곧 전장으로 돌아오게 되겠지” 라고 덧붙였다.

본부를 나오자 도시는 이미 저녁이었다. 우리들은 손을 잡고 전이광장을 향해 걸었다.

둘 모두 말이 없었다.

부유성 바깥에서 들어오는 오렌지색의 빛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을 그려내는 철탑 무리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나는 죽은 크라딜의 악의가 어디서 온 것일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즐겁게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적지 않다. 도둑질이며 강도질을 벌이는 자부터, 크라딜이나 옛날 《래핑 코핀》처럼 가차없이 사람을 죽이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범죄자 플레이어의 수는 이미 천을 넘었다고 한다. 그 존재는 이제 몬스터처럼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면 그것은 기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범죄자로서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 게임 클리어라는 최종목적에 대해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행위임은 누가 생각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나는 크라딜이라는 사내를 보고 그와 다른 것을 느꼈다. 놈의 사고는 게임 탈출을 지원하는 것도, 저지하는 것도 아닌, 말하자면 정지 상태였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멈춘 결과, 자신의 욕망만이 끝없이 비대해져 그러한 악의의 꽃을 피웠던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스스로가 진지하게 게임 클리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지 어떤지, 자신을 가지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저 타성적으로 경험치를 쌓아 매일 미궁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어울리지 않을까. 자신을 강화해 남보다 뛰어난 힘을 얻는 쾌감만으로 싸우고 있는 거라면 나도 본심으로는 이 세계의 끝을 바라지 않는 것일까-?

갑자기 발밑의 강철판이 힘없이 꺼져드는 것 같아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아스나의 손에 매달리듯 맞잡은 오른손을 굳게 쥐었다.

“......?”

고개를 갸웃하며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아스나에게 잠깐 시선을 향했다가 금세 고개를 숙이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나는 입을 열었다.

“....넌....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보내겠어....저 세계로.....”

“........”

이번에는 아스나가 손을 꼭 잡았다.

“돌아갈 때는 둘이 함께야”

생긋 웃는다.

어느새 전이광장 입구에 도달했다. 겨울이 오는 것을 감게 하는 싸늘한 바람 속에 몸을 옹송그린 몇몇 플레이어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아스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강인한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빛이 유일하게 나를 올바로 인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나....오늘밤은, 함께 있고 싶어....”

무의식중에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왔다.

그녀와 떨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