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소 (Si)는 산소를 제외하고 지각에 가장 풍부한 원소로, 다양한 형태의 산화물로 존재한다. 많이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SiO2는 체내 독성이 없어 음식 첨가제로도 사용된다. 현재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도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규산화물의 다양성은 규소 원자가 갖는 단 네 개의 결합에 기인하고 있는데, 많은 화학자들이 이 결합을 적절히 통제하여 인간사회에 유용한 소재를 합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MOF ('모프')라 불리는 금속-유기 골격체는 금속 이온과 유기 리간드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다공성 결정의 선구자 격인 규산화물 제올라이트와 비교해 화학적 조성의 공통점이 없는만큼 소재의 특성 또한 뚜렷한 장점과 단점을 갖는다. 그렇다면, MOF와 제올라이트의 빌딩블럭을 동시에 갖는 골격체를 합성할 경우 두 소재의 장점을 (또는 단점만을) 모두 갖는 신개념 소재가 가능하지 않을까?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규소 산화물을 빌딩블럭으로 갖는 MOF를 합성하고자 했으며, 상당한 기간 동안의 노력 끝에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합성법을 발견하였다. SiMOF라 이름 붙인 일련의 새로운 골격체들은 Si과 Zn 원자가 동수로 존재하며 카르복실 리간드로 연결되어 3차원 골격을 형성한다. 기존의 일반적인 MOF와 비교해 열적 안성성이 월등하고, 별도의 후처리 없이도 수증기를 배척하는 소수성을 나타낸다.
이 연구결과로 인해 MOF와 규산화물의 분자 수준 융합이 불가능하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분자고체 [Zr36] 거대고리의 동족체를 합성 및 규명하고 대기 중 수증기 포집 소재로서의 응용 가능성을 제올라이트와 비교평가한 논문이 BKCS 저널 2020-2021 최다 피인용 논문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Static and Dynamic Adsorptions of Water Vapor by Cyclic [Zr36] Clusters: Implications for Atmospheric Water Capture Using Molecular Solids
J. I. Choi, D. Moon, Hyungphil Chun
Bull. Korean Chem. Soc. 2021, 42, 294-302.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002/bkcs.12100
DMF 용매의 가수분해를 이용하는 매우 간단한 합성법에 따라 기존에 알려진 바 없는 [Zr6]6 형태의 육각 거대고리 분자 클러스터 2종을 합성하였다.
ZF라 이름 붙인 지르코늄-개미산 거대 클러스터는 합성에 사용한 무기산의 종류에 따라 2종류가 얻어지는데, 3회전 분자 대칭을 갖는 ZF-3는 [Zr6]6 거대고리 8개가 자기조립하여 제올라이트 구조와 유사한 슈퍼케이지를 형성한다. 이들의 고체 구조는 진공 배기 시 크게 수축하여 기체 흡착을 나타내지 않지만 섭씨 25-40도 범위에서 매우 높은 수증기 흡착 능력을 보이며, 특히 80% 이상의 높은 상대습도에서도 매우 높은 흡착량을 유지한다. 한정된 크기의 기공을 갖는 MOF와 달리 분자 고체 형태의 ZF-2는 클러스터 분자 간 팽창이 제한되지 않아 이론적으로는 용해가 일어나는 순간까지 무한대의 수증기 흡착능을 가질 수 있다.
4족 금속 (Ti, Zr, Hf)과 2,5-dobdc 리간드의 용매열 반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일련의 다공성 MOF를 합성하였다.
Ti-dobdc는 단결정을 얻는데 성공하여 고해상도 결정구조를 규명할 수 있었는데, 이로부터 기존에 다른 연구진이 발표한 결과에 오류가 있었음을 밝혔다. Zr- 및 Hf-dobdc는 옥소 클러스터를 갖지 않는 진귀한 형태의 새로운 MOF이다. 음이온성 골격구조는 기공 내 포켓 형태의 자리에 하이드로늄이온이 카르복실 산소와 수소결합하여 안정화된다. 또한 수용액에서도 가수분해되지 않고 골격구조가 그대로 유지되어 차후 양이온 교환 등의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의 큰 기공에도 불구하고 기공 입구가 양이온에 의해 한정되어 기체 분자의 크기에 따른 선택 흡착 거동을 나타낸다.
마곡사 대광보전에서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문살 문양과 그 문양을 정확히 닮은 두 다공성 MOF의 엑스선 결정구조
분자와 원자를 재조합하여 어떤 물질을 -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든, 실생활에 관련된 것이든 - 새로이 만들어 내는 습관은 화학자의 큰 미덕으로 여겨지며, 그 과정에서 화학자는 종종 뜻하지 않은 곳으로부터 암시와 영감을 얻곤 한다.
본 연구실에서는 똑같은 금속과 리간드가 동일한 비율로 자기조립하여 전혀 새로운 종류의 골격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동일한 화학식을 가지면서도 위상기하학적 구조가 '위상 이성질체 (topological isomers)'에 해당하는 MOF를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다. 합성 조건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두가지 물질을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중요한 발견이다. 이 방법이 일반화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한 종류의 시료로부터 중요한 기능을 하는 여러 종류의 다공성물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