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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불었다.

그는 도시락 꾸러미를 옆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었다.

“아이고-. 역시 여긴 시원~하구나~.”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저씨 같은 신음소리.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그는 꾸러미에서 도시락을 꺼내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구부정한 등을 더 구부리고 도시락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오-, 맛있겠다-!”

자기 손으로 도시락을 싸온 주제에 그런 말을 했다.

꽉꽉 눌러 담은 밥에 시금치 무침, 두툼한 달걀부침, 데친 소시지,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 구이.

간단해도 허기진 맹수를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아르바이트 하러 편의점에 가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또 뭔가 먹을 테고.

그는 여기로 오는 길에 산 팩에 든 차에 빨대를 꽂았다.

“잘 먹겠습니다!”

밥에서 반찬으로 반찬에서 밥으로 젓가락을 뻗어가며 순식간에 도시락을 해치웠다.

“잘 먹었슴돠!”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기가 싼 도시락이지만.

쭈르륵 하고 팩에 남아 있는 차를 마저 빨아 마셨다.

굉장히 진하고 감칠맛이 나서 좋았다.

점심시간을 교실에서 반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지내는 것도 괜찮지만 가끔은 이렇게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녀’가 ‘혼자’ 라는 부분에 미진함을 느끼고 우울함에 빠져 있는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내일은 같이 올까아.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녀를 소홀히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생각을 할 때면 언제나 그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난처했다.

그녀의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씩 빗나가는 바람에 그때마다 그녀를 당혹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요즈음 불안감으로 변해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물론-느긋하게 차를 홀짝이고 있는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깨닫고 있었다면 그녀를 혼자 내버려둘 리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찾아왔다.

시작은 언제나 갑작스러웠다.

#

-딸랑.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뭔가 굉장히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그리 옛날이 아닐 텐데.

뭔가 사무치게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방울 소리가 멀리, 하지만 귓속에서 울렸다.

“응?”

그리고 그것은 옥상의 문을 여는 묵직한 쇠 울림에 휘감겨 바로 사라졌다.

누군가가 옥상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별로 경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다만 그 자신은 젖혀두고 ‘이 더럽게 더운 날 옥상에 올라오다니 별 괴짜도 다 있구나아’ 하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가 드러누워 있는 장소는 옥상 입구에서 왼편 뒤쪽의 사각지대.

옥상 한가운데까지 걸어가서 왼쪽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거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 옥상에 찾아온 인물의 겅중겅중 걷는 뒷모습도 그가 먼저 포착하게 되었다.

“-와, 작다!”

그는 무심코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등학생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자그마하고 아담한 여자아이였다.

정품이지만 필시 규격 외가 분명한 교복에 어울리지 않는 거무칙칙한 긴 금발을 갖고 있었다.

노는 애?

일순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바로 ‘그러고 보니’ 하고 떠올렸다.

같은 1학년에 혼혈아가 있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금발과 커다란 푸른색 눈동자, 기다란 속눈썹. 하지만 초등학생처럼 아주 작은 체구의 소녀... 그것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

이름은-.

“뭐였더라?”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성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반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일치시키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린 그였다. 그런 그가 다른 반 학생의 이름을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응?”

살짝 곱슬거리는 소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몹시도 커다란 헤드폰이 보였다.

그 작은 체구에는 걸맞지 않아 보이는 너무 큰 헤드폰이었다.

게다가 헤드폰이 연결된 포터블 플레이어도 역시 컸다.

조그만 손으로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대중적인 색깔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시선을 손에 떨구고는 찰칵찰칵 누르고 있었다. 되감는 걸까. 빨리감기를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듣고 있는 걸까?

괜히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이 소녀는 한 달 전쯤 문화제 때 복도에서 스쳐지나갔을 때에도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소녀는 그때도 혼자 있었다.

그토록 눈에 띄는데도 복도를 지나가는 소녀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돌아본다고 해도 그 용모를 신기한 듯 먼발치에서 보며 뭔가 한두 마디 말하고는 자기들끼리 웃을 뿐 이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학교.

그런데 소녀는 혼자 옥상에 있었다.

이렇듯 아무도 없는 장소에 혼자.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옥상과 헤드폰. 그것만이 전부인 세계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똑같이 옥상에 와 있으면서 그는 자신은 젖혀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

소녀는 체감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