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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려져 팔다리를 덮고 있다. 그 때문에 여민 옷깃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가슴이 더욱 강조되며, 희미한 천을 통해 몸 전체의 곡선이 뚜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좀 전의 미니드레스 때처럼 다리를 다 드러내는 것보다도 훨씬 요염한 자태였다.

켈리 쪽은 윗도리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막 자려던 참이었으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방이 어질러져서 말야."

"어머, 너무해. 아직도 화나신 건가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물기 어린 눈망울로 켈리를 올려다본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했잖아요, 켈리. 전 당신에게 흥미가 있어요."

"헤에, 그거 영광인데. 대 여배우 진저가 나 따위에게?"

"그렇게 심술부리지 말아요. 저기, 부탁이에요. 아시겠죠? 이런 시간에 남자 방까지 찾아올 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지 않아요?"

마치 음악 같은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

그녀는 영화만이 아니라 연극에도 자주 출현한다. 무대에 선 모습만으로 관객을 매료시키고, 첫 대사에서 이미 관객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는ㅡ그 정도로 실력 있는 연기자인 것이다.

그녀의 눈망울도, 그 자태도 눈을 떼기 힘든 매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숨결마저 향긋했다.

이 유혹에 저항할 수 있을 만한 남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켈리는 부드럽게 쓴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거 곤란한 걸. 미스 브레드."

"진저라고 불러줘요."

"당신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이런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굉장히 한심하지만, 여기는 재스민 집이고 난 그 남편이야. 거기다 당신은 재스민의 친구라고 했지. 난 그렇게까지 바른생활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서 당신 가운 속을 보고 싶다고 말할 생각은 안 드는 걸."

"어머나, 그럼 보여드릴까요?"

새하얀 손가락이 검은 가운 자락을 쥐고, 절묘한 동작으로 천천히 옷깃을 펼쳤다.

풍만한 유방의 곡선도, 주름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의 윤기도 눈이 부실 정도였지만 켈리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만두라고, 진저. 그럴 생각이 안 드니까."

"그 사람이 무서워요?"

달콤한 유혹 속에 도발적인 울림이 섞여 있었다.

"괜찮아요. 알 리가 없는 걸. 그런 사람이에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요?"

켈리는 한숨을 쉬고 짙은 보랏빛 머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문에서 조금 물러났다.

"알았어. 들어와."

침실에는 여섯 명쯤이 나란히 누워도 여유가 있을 만한 크기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진저는 침대 가장자리에 우아하게 앉아서 유혹하는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 웃는 얼굴은 쇠를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켈리는 상의를 주워들며 윙크를 했다.

"그럼 편하게 쉬어. 난 딴 데 가서 잘 테니까."

보라색 눈이 놀라서 동그랗게 뜨였다. 연극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기가 막혀. 내가 잘못 봤나보네요. 생각 외로 담이 작잖아?"

"미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하지만 난 그런 당신이 좋아. 박력 있어서."

"어머나, 기뻐라. 그럼 미스터 쿠어, 도망가지 말고 이리 와주지 않겠어요? 이 침대, 저 혼자서 자기에는 너무 넓어요."

"나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기는 하지만 사양하지. 몸까지 내던질 각오로 덤벼드는 여자하고 싸워봤자 남자 쪽에는 승산이 전혀 없거든."

자수정빛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처음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인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알고 있으면 유혹하는 대로 따라와보는 게 어때요?"

"지금은 사양할게. 당신은 날 좋아하지도 않고 나도 마찬가지야. 미안하지만 굳이 그런 여자를 상대할 정도로 아쉬운 입장은 아니니까."

"기억해두죠."

진저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남자에게 교태를 보내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그 눈에는 도전적인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진저는 방을 나가려는 켈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은 말이죠, 나처럼 연기는 하지 않아요. 거짓말도 안 하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해 보라고요."

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은, 그럴 생각으로 결혼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선 그런 소리를 할 거면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뭐 하러 유혹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형태로 여자에게 수치를 안겨준 남자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여지 따위 없다. 하물며 항변할 권리는 더더욱 없었다.

켈리는 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어두운 복도로 걸어 나갔다.

방에 남겨진 진저는 아름답게 세공된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웠지만 갑자기 귓가에서 목소리가 났다.

"여어, 진저. 혼자 있어?"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았지만, 그것은 베개 옆에 놓여 있던 통신단말기에서 난 소리였다.

화면에는 약간 짙은 피부색의 젊은 남자가 비춰지고 있었다. 멋진 금빛 곱슬머리의 미남이었다. 싹싹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얼글 생김은 어딘지 기품이 있고 푸른 눈에는 깊은 지성이 엿보였다.

"당신, 누구?"

"그 방 주인의 파트너라고나 할까."

평상시 다이애나는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지만, 감응두뇌이므로 사실상 성별은 없다. 그저 켈리가 남자인 이상 그 파트너는 여자인 편이 나을 거라는 이유로 여자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명한 여배우가 홀로 외롭게 침대 위에 남겨져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미스터 아폴론이 등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켈리를 유혹하러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