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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서 말할께. 스고우는 지금 회사에 없는 것 같아. 그 틈에 서버를 빼앗고 사람들을 구해내야해. 가자."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스나를 현실로 돌려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유이를 안은 아스나의 손을 잡고 나는 문이 박살난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두 걸음, 세 걸음 나아가 창살을 지나기 위해 몸을 숙인, 바로 그 순간이었다.

ㅡ누군가가 보고 있다.

갑자기 나는 뒷덜미 부근에 오싹한 기척을 따끔따끔 느꼈다.

SAO 세계에서, 몬스터가 아니라 장애물 뒤에 몸을 숨긴 오렌지 컬러의 살인자에게 타깃당했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느낌이었다.

창졸간에 나는 아스나의 손을 놓고 등의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것을 뽑으려고 약간 팔을 움직인 그때였다.

느닷없이 새장이 물에 가라앉았다. 점도가 높고 색이 짙은 액체가 우리를 에워싼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숨은 쉴 수 있지만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워진 것이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끈적끈적한 점액 속에 있는 것처럼 매우 큰 저항이 느껴졌다. 몸이 무겁다. 서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세계에서 빛이 멀어져 갔다. 새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붉은 석양이 점차 깊은 어둠 속에 뒤덮여 갔다.

"ㅡ뭐, 뭐지?!"

아스나가 외쳤다. 그 목소리도 깊은 물밑에서 외친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터무니없이 불길한 전율을 느끼며, 돌아서서 아스나와 유이를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ㅡ몸을 움직일 수 없다. 끈적끈적한 공기가 의지가 있는 것처럼 나를 옭아냈다.

마침내 세상은 완전히 암흑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아니,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하얀 원피스 차림의 아스나와 유이는 뚜렸하게 보였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배경 전체가 짙은 검은색으로 뒤덮인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오른손을 움직였다. 바로 앞에 새장의 창살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붙잡고 몸을 이 공간에서 끄집어 내려 했으나ㅡ간신히 뻗은 손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외견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딘지도 모를 어둠의 세계의 내동댕이쳐진 모양이었다.

"유이ㅡ."

무슨 상황인지 알겠느냐고 물으려 했을 때, 아스나의 팔 안에서 갑자기 유이가 몸을 휘청 뒤로 젖히더니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엄마......, 아빠......, 조심해요! 무언가...... 좋지 못한 것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이의 조그마한 몸 표면을 보라색 뇌팡이 휩쓸더니 눈부시게 번뜩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아스나의 품은 텅 비고 말았다.

"유이?!"

"유이ㅡ?!"

나와 아스나는 동시에 외쳤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끈적끈적하고 짙은, 트루 블랙의 어둠 속에 나와 아스나만이 남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아스나의 몸을 끄러당기려 했다. 불안함에 눈을 크게 뜬 아스나도 이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닿기 직전, 무시무시한 중력이 우리를 덮쳤다.

마지 깊고 깊은 점액의 늪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아스나도 쓰러져, 보이지

않는 바닥에 두 손을 짚었다.

아스나가 내 눈읖 바라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키리......토......"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줄께ㅡ그렇게 대답하려 했던 그 순간이었다. 끈적거리는 웃음을 머금은 드높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여어. 어떤가, 이 마법이? 다음 업데이트에 도입될 예정이었는데 말이야. 효과가 지나치게 강하려나?"

억제되지 않은 조롱의 빛을 머금은 그 목소리는 분명 귀에 익은 것이었다. 잠든 아스나를 앞에 두고 나를 영웅이라 야유했던 그자의 목소리였다.

"ㅡ스고우!!"

나는 일어나려 발버둥 치면서 으르렁대듯 외쳤다.

"쯧쯧, 이 세계에서 그 이름은 삼가주었으면 좋겠는걸. 자네들의 왕을 경칭도 없이 마구 불러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ㅡ요정왕 오베론 페하라고 불러라!!"

목소리의 말미가 높이 치켜 올라가며 고함으로 바뀌고, 동시에 무언가가 내 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목을 움직이자, 어느 틈엔가 그곳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덕지덕지 자수로 장식된 부츠를 신고, 하얀 타이츠로 감싼 다리 한쪽을 내 머리에 얹은 채 좌우로 움직여대고 있었다.

시선을 들어보니 몸에는 독살스러운 녹색 토기를 걸치고, 그 위에 인공무러럼 단아한 얼굴이 얹혀 있다. 아니ㅡ실제로 인공물이다. 폴리곤으로 무(無)에서부터 구축한 미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기가 없는 모습. 오히려 추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새빨간 입술을 크게 일그러뜨린 채, 한때 본 적이 있는 빙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다.

설령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사내는 스고우다. 아스나의 영혼을 강탈하고, 이런 곳에 가두어 둔, 아무리 증오하고 증오해도 부족한 자.

"오베론, 아니, 스고우!"

바닥에 거의 달라붙을 정도로 쓰러져 있으면서도 꿋꿋하게 고개를 들고 아스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한 짓은 전부 내 눈으로 보았어!! 그렇게 지독한 짓을 하다니...... 용서하지 못해, 절대로!!"

"흐응? 누가 용서하지 못한다는 걸까? 네가? 아니면 이 친구가? 아니면 설마 신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이 세계에 신이란없어. 나를 제외한다면. 큭, 큭큭!"

귀에 거슬리듯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더니, 스고우는 한층 격하게 내 머리를 짓밟아댔다. 몸을 물든 중력에 저항하지 못한 채 나는 바닥에 엎드리고 말았다.

"그만두지 못해, 이 비겁자!!"

아스나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은 채 스고우는 몸을 구부리더니, 등의 칼집에서 내 칼을 뽑아들었다. 쭉 뻗은 검지 위에 거대한 검을 똑바로 세우고, 빙글빙글 수직으로 회전시킨다.

"ㅡ그건 그렇다 쳐도 키리가야 군. 아니...... 키리토 군이라 불러야 하려나? 설마 정말로 이런 곳까지 올 줄이야. 용감한건지, 우둔한 건지, 뭐, 지금 이렇게 뻗어 있는 걸 보면 후자가 맞겠지? 큭큭! 내 작은 새가 새상에서 도망쳤다고 하길래 이번에야말로 따끔하게 벌을 줘야겠다고 서둘러 들어왔는데, 놀랐지 뭐야! 새장 안에 바퀴벌레가 기어들어와 있잖아? ㅡ그러고보니, 또 무언가 이상한 프로그램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스고우는 말을 끊더니 왼손을 휘둘러 윈도우를 불러냈다.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한동안 푸르게 발광하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마침내 흥 코웃음을 치더니 창을 닫았다.

"......도망쳤구만, 그건 뭐지? 애초에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올라온 걸까나?"

적어도 유이가 삭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어렴풋이 안도하며 나는 말했다.

"날아왔다. 날개로."

"ㅡ흥, 뭐, 됐어. 네 머릿속 알맹이에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뭐야?"

"자네는 설마, 내가 취미로 이런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는 건가?"

스고우는 손끝으로 검을 통통 튕기며, 독이 뚝뚝 떨어진 것 처럼 씨익 웃었다.

"엣 SAO 플레이어 제군의 헌신적인 협력으로 사고 및 기억조작 기술의 기초 연구는 이미 80퍼센트 가량 끝났지. 과거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인간의 영혼을 직접 제어하는 신의 기술을, 나는 이제 곧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게다가 오늘은 기쁘게도 새 실험체까지 입수하게 되었으니까! 이거이거, 정말 기대되는걸!! 자네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바꿀 수 있다니 말이야!!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

"그런......일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말에 놀라면서 내가 중얼거리자, 스고우는 다시 오른발을 내 머리에 얹어 발끝을 톡톡 움직였다.

"자네. 아직도 혼이 덜 났는지 또 너브 기어로 접속했지? 그렇다면 입장은 다른 실험체 제군과 마찬가지라고. 역시 바보라니깐, 애들은. 개도 한 번 걷어차이면 해선 안 될 짓을 배우는데 말이지."

"그...... 그런 짓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스고우!!"

아스나가 핏기 사라진 얼굴로 외쳤다.

"키리토에게 손을 댔다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나의 작은 새여, 네 그 증오가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절대복종으로 바뀔 날도 머지않았단다."

도취된 표정으로 말하더니, 스고우는 내 검을 고쳐 쥐고는 왼손 손가락으로 검신을 스윽 쓰다듬었다.

"자, 그러면! 너희의 영혼을 개선하기 전에 즐거운 파티를 시작해볼까? 아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구나. 최고의 관객까지 납셔주다니, 꾹 참았던 보람이 있었지뭐야!!"

휘릭 몸을 돌리고 두 손을 넓게 펼친다.

"현재 이 공간의 모든 로그는 기록되고 있다! 부디 멋진 표정을 지어주기를!!"

"............"

아스나는 입술을 깨물더니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재빠르게 속삭였다.

"......키리토, 지금 당장 로그아웃해.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스고우의 음모를 밝히는 거야. 나는 괜찮아."

"아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