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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지불할게. 어디 보자……, GGO 톱 플레이어가 한 달에 번다는 금액이면 될까? ──이만큼."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이는 키쿠오카.

솔직히 옴찔했다. 그만한 돈이 있으면 최신 24코어급 CPU 로 새 컴퓨터툴 맞추고도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새삼스러운 의문도 들었다.

"......영 찜찜한데요, 키쿠오카 아저씨. 왜 이 일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죠? 이건 아무리 봐도 사건에다 나중에 갖다 붙인 소문이 분명해요. 온라인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괴담이라고요. 심장마비를 일으킨 두 사람이 게임에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날조되는 거죠."

딱 잘라 말하자 키쿠오카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의 위치를 고치면서 내게 표정을 감추었다. 어디까지 진실을 이야 기하고, 어디까지 감출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정말 방심 못할 사람이다.

"──사실은 말이지, 윗분들이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래."

말을 시작한 고급관료는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되찾았다.

"풀 다이브 기술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각 분야에서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어. 사회적, 문화적 영향도 물론 막대하지만 생물학적인 영향도 크재 논의되고 있지. 가상세계가 과연 인간의 양상을 어떻께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해. 만약 모종의 위험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다시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올테지. 사실은 SAO 사건 당시에도 법안이 제출 되기 직전까지 갔어. 하지만 난──아니, 가상과는 지금 흐름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VRMMO 게임을 즐기는 너희 신세대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니까 이번 사건이 이상한 곳에 착륙해서 규제추진파에게 이용당하기 전에 사실을 파악해 두고 싶은 거야. 단순한 헛소문이라면 그게 제일이지. 그런 확신이 필요해.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VR 게임 세대 젊은이들을 잘 이해하는 아저씨의 이념은 선의로 받아들이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운영업체에 직접 알아보면 될 거 아녜요? 로그를 해석해보면《젝시드》와《명란젓》을 쏜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텐데요? 설령 게임 안에 등록한 데이터가 엉터리라고 해도, IP 어드레스를 통해 회선 공급업자에게 문의하면 본명과 주소는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고."

"......아무리 내 발이 넓어도 태평양 건너까지는 닿지 않거든."

키쿠오카의 추레한 얼굴은 이번에야말로 거짓 없는 답답함을 드러내보였다.

"건 게일 온라인을 개발하고 운영하는《재스커》라는 기업......인지 뭔지도 모를 단체는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어. 게임 내부의 플레이어 서포트가 매우 충실한 것치고는，실제 회사의 주소는커녕 전화번호나 메일 어드레스조차 비공개야. 그 놈의《더 시드》가 공개된 후로 수상쩍은 VR 게임이 우후죽순 처럼 늘어나고 있다니까."

"......그렇군요"

나는 어께를 으쓱했을뿐이었다. VRMMO 개발 지원 패키지《더 시드》의 유래를 아는 것은 나와 에길뿐이다. 신생 알브헤임 온라인에 갑자기 나타난 부유성 아인크라드도, 이제는 사라진 렉토 프로그레스가 관리하던 옛 SAO 서버 내부에 남아 있던 데이터로 알려졌을 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진실의 꼬리를 쥐려 한다면 게임 안에서 직접 접촉올 시도할 수밖에 없는 거야. 물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최대한 안전조치는 취해 두겠어. 우리가 마련한 시설에서 다이브하면 어뮤스피어도 모니터링할 수 있겠지. 만약 어뮤스피어의 출력에 모종의 이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즉시 회선을 끊어줄게. 총에 맞아보라는 소리는 아니야. 네 눈으로 보고 판단해주면 돼. ──해줄 거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안 되겠다고는 못할 상황에 목까지 잠겨 있었다.

정말로 오지 말 걸 그랬다고 뼈저리게 후회하며, 나는 동시에 약간의 흥미도 느끼기 시작했다. 가상세계 안에서 현실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 만약 그런 것이 실존한다면 그것은 카야바 아키히코가 추구하던 세계 변용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3년 전 겨울에 시작된 그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내게는 이 사건이 어디로 흘러갈지 지켜볼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두 눈을 질끈감고 깊이 숨을 내쉰 후 말했다.

"....... 알았어요. 술수에 넘어간 게 아니꼽긴 하지만, 가긴 가겠어요. 하지만《사총》과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나도 장답못해요. 애초에 실존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우니까."

"아...... 그게 말이지."

키쿠오카는 사심 없는 눈으로 싱긋 웃었다.

"말하지 않았던가? 첫 총격사건 때,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 하나가 음성로그를 땃다고. 데이터를 압축해 가져왔지.《사총》의 목소리야. 한 번 들어봐."

내게 와이어리스 이어폰을 내미는 키쿠오카를, 이번에야말로 진짜 심장이 멎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노려보았다.

"......참 별걸 다 준비하셨네요."

받아든 이어폰을 귀에 꽂자, 키쿠오카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금새 나지막하게 사람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머릿 속에서지 재생되었다.

그리고 느닷없어 그 소음이 사라진다. 팽팽해진 침묵을 날카로운 선언이 가로질렀다.

『이것이 진정한 힘.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이 이름을 공포와 함께 똑똑히 새겨 두어라!』

『나와 이 총의 이름은《사총(死銃)》......《데스 건》이다!!』

어딘가 인간같지 않은 금속 같은 울림을 띤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외침 너머에 sa있는 현실의 플레이어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역활 연기가 아니라, 살육을 탐t하는 진정한 충동을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2】

치요다 선 오오테마치 역의 C10번 출구에서 지상으로 나와,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흘끔 쳐다본다.약속한 오후 3시까지는 아직 5분 이상 남았다. 유우키 아스나는 손을 내리려다가 문득 문자판에 조그맣게 새겨진 캘린더창에 눈길을 멈추었다.

3025년 12월 7일. 일요일.

딱히 별다른 기념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스나의 가슴에는 어떤 감회 같은 것이 어림풋하게 퍼져 갔다. 고개를 들고, 에 이타이 거리를 황거(皇居) 정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곧 1년이 지나는구나…….

그 말 앞에는『이 세계에 돌아온 지』라는 어구가 생략되어 있었다.

아스나가 강철의 부유성 아인크라드에서 나무 위의 새장을 거쳐 현실세계에 풀려난 것은 올해 1월 중순이었다. 가상세계의 기억은 서서히 추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이따금 자신이 이렇게 현실을 살아 간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넓은 인도에 질서정연하게 깔린 보도블록. 싸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가지. 코트 자락과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흐름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아스나 자신.이러한 모든 것들은 디지털 코드로 기술된 3D 오브젝트가 아니라，진짜 광물이고 식물이고 생물이었다.

그러나《진짜》란 어떤 것일까. 원자와 분자의 집합이라는 의미라면, 그것은 가상세계의 폴리곤 오브젝트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원래 서버 머신 내의 메모리 소자에 담긴 전자니까. 소립자의 종류가 다른 것에 불과하다.그렇다면 불변성의 문제일까?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생물과 비생물을 막론하고, 한 번 파괴되면 결코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가상세계의 오브젝트는 구성된 정보를 1바이트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똑같이 재생할 수 있다.

...................아니야.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세계──아인크라드에는 되찾을 수 없는 상실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 부유성에서 2년을 지내는 동안 아스나가 만지고, 느끼고, 얻고, 잃어버린 모든 것은 틀림없는《진짜》였다.

그렇다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차이란…… 대채 뭘까..........."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그 질문에──.

"정보량의 차이뿐이야."

바로 옆에서 대답이 돌아와 아스나는 폴짝 뛰어올랐다.

"으, 으아?!"

황급히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눈을 깜빡이는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살짝긴 앞머리 선이 가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용모. 검은색 니트에 검은 래더 재킷과 색이 바랜 블랙진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은과거 그가 사용하던 아바타와 너무나도 습사해 등 너머로 장검 자루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정도였다. 아스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 치미는 달콤하고도 에절한 아픔을 깊은 호흡흡으로 녹이며, 입술에 웃음을 지었다.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나타나다니. 텔레포트 크리스탈이라도 쓴거야?"

그러자 소년──키리가야 카즈토도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는 아닌데 .시간에 딱 맞춰 약속장소에 온거니까."

"뭐......?"

그 말에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쬐는 인도와 반짝반짝 흔들리는 해자의 수면. 약간 멀리 보이는 다리는 엄중히 경비되는 커다란 문으로 이어져 있다. 분명 카즈토가 지정한 황거 정문 앞이었다. 생각하면서 걷는 사이에 어느샌가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스나는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하하하, 나도 오토파일릿 상태였나 보네. 어...... 아무튼, 안녕 키티로 군."

"위험하게. 오프라인에는 네비게이션 기능도 없는데. ....... 안녕, 아스나."

인사를 나눈 후 카즈토는 문득 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스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갑자기 왜 그래?"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싶어 두 팔로 몸을 감싸고 물었다. 그러자 카즈토는 황급히 고게를 가로 젓더니 잠시 말을 우물거렸다.

"아, 아니，그게......, 어...... 그 옷, 자, 잘 어울린달까，옛날 생각이 난달까......"

"응..........?"

문득 자기 모습을 2초 정도 내려다본 후에야 아스나는 키리토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했다. 오늘은 이번 겨울 들어 처음으로 코트를 입고 나왔다. 하안 트위드였다. 그 아래에는 아이보리 색 니트와 붉은 아가일 체크무늬늬 스커트를 입었다. 다시 말해, 전체적인 색조가 지금은 사라진 길드《혈명기사단》 컬러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인크라드에서는 거의 매일 하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기사 차림을 하고 있었다. 카즈토는 그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살꽉 왼쪽 허리춤을 손끝으로 때만지며 아스나는 새삼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레어피어는 없지만. ──그러는 키리토 군도 오늘은 아주 시커먼걸."

그 말에 카즈토도 멋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