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부 한국어화 패치 제작 후기 (약 스포 주의)

안녕! 들려줘서 고마워! (2018년 9월 29일 작성)

두근두근 문예부!의 인기가 식은 지금 후기가 추가된 걸 발견하기까지는 꽤 걸릴 것 같아. 언제쯤 알려지려나 궁금하기도 하네.

인터넷에 공개되는 거니 나보다 나이 많고 대단하신 분들 많아서 존댓말로 써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나는 그냥 하고 싶은 말 나중에 나 보라고 일기 같은 느낌으로 써 놓은 거니까 반말로 써 놨다고 너무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느 정도 염치없는 말이라는 건 잘 알지만, 그런데도 무릅쓰고 이해 좀 부탁할게.


두근두근 문예부라는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별로 특별한 건 아니었어.

미연시에 전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친한 친구가 보내 준 누군가의 방송 집중조명을 단 3초만 거라 그냥 정신 나간 영상 편집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그 후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가, 어쩌다 다른 유명한 유튜버의 전체 플레이 영상을 보게 되면서 참 신기한 작품이란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매력에 사로잡혔지. 내가 생각하던 미연시 치고는 중간마다 넣어놓은 대사에 심오한 요소가 많이 있었거든.


특히 우울증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참 충격적이었어. 내 주변에도 그런 이유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하나 있거든.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본인이 몰랐던 사이에 이런저런 한이 맺혀서

자기가 특정한 상황에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정말 힘들어하는 걸 보아 왔기에

사요리의 행동을 볼 때 정말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식으로라도 사람들이 이런 증상은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생각만 했었어. 처음에는.


한국 개인 방송인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도 있었지만, 그건 둘째(로 떠오른) 이유였어.

영어권에서 자라온 인생이기에 게임 자체를 이해하기엔 전혀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모국어로 작품을 접하는 것과 외국어로 작품을 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거든.

그렇게 2017년 말, 난 한국어화 패치를 만들기로 하게 됐지.


여러 가지의 삽질 끝에 기초 작업을 끝낸 상태에서

수많은 과제와 시험 준비가 한창이었기에 혼자서는 벅찬 작업이었고

그 당시 맞춤법에 약했던 나는 다른 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한 분 연락을 드려 같이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


결과만 얘기하자면 재미는 있었지만 아쉬운 작업이었어.

나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최대한 좋은 질의 번역을 내고 싶었지만, 그분은 최대한 빨리 패치를 내고 싶어 했고

여러 가지 무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난 괜히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분이 말하는 대로 따라갔거든.

패치를 내고 나서 방송을 통해 두근두근 문예부!가 인기를 타고나서야 성급하게 패치를 낸 게 실수인 줄 알았지.

내 실수로 인해 게임 중간 중간에 버그를 만들어낸 것도 있었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오역도 몇 개 있었거든.

극단적인 예로, 도대체 어떻게 "jerk me up"을 "나를 일으켰다" 대신 "내 위에 올라탔다"로 번역한 건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한 가지 의심 가는 이유가 있긴 한데, 그걸 떠올린 나에게도 소름 돋고 설마 그건 아니겠지 싶어서 굳이 쓰지는 않을게.

원문과 패치 상 대사를 같이 공개한 상황에서 영어를 어느 정도 하시는 분은 내가 뭘 떠올렸는지 아실 수도 있겠다.

본인에게 직접 얘기하지 않고 이렇게 남들이 다 보는 공간에서 얘기하는 건 비겁하지 않냐, 그렇게 날 비판할 거라면, 난 할 말이 없어.

맞는 말이고, 비겁하게 보인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낸 한국어화 패치가 많이 아쉬웠다, 라는 점을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야.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도 이제는 식은 상태고, 이제 와서 수정한 패치를 내 봐야 누가 해주겠냐고 하는 생각에 사실상 손 놓고 있는 상태야.


참. 하나 좀 알아줬으면 하는거.

retruibution(응징) 이라는 말로 말장난 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요리가 이 단어를 기억하지 못해서(?) revolution(혁명)이라던지 restitution(배상 등)으로 말하는게 있거든.

그냥 그렇게 번역할 수는 없으니까 응징을 응보로 번역 후에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음보와 앙모라는 단어를 찾아온건데...... 반응 때문에 참 실망했어.


다시 패치 제작 얘기로 돌아와서, 패치 제작 후 세상에 작업물을 공개하기 전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었어.

이렇게 충격적인 묘사가 다분한 게임을, 정말로 난 세상에 소개해야 할까?

이 사이트 [PUBLISH]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작품을 감상하기엔 적절치 않은 관중에게 노출되는 것을 제어할 수가 없을텐데

이것 때문에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경고문을 수차례 수정해왔어.

만 13세 미만에서, 만 15세 미만으로. 플레이를 금하는 데서, 시청을 금하는것 까지로.

그렇게 경고하고, 경고하고, 경고하고. 제발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봤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공개를 했지.

무시하고 상처받은 사람도 여럿 있는 모양이야. 그런 분들껜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야.


마지막으로 미숙한 한국어화 패치를 즐겨주신 여러분과 많은 방송인께

이번 해 초 다양한 반응으로 즐거움을 선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더 좋은 작품도 많은데 이렇게 충격적인 작품을 소개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