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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하게 솟은 숲은 바둑판같은 수백 개의 에리어로 나뉘어, 한 에리어에 발을 들인 후 1분이 지나면 동서남북 사방에 위치한 인접 에리어의 연결통로가 랜덤하게 바뀌게 설정되어 있었다. 숲을 빠져나가려면 1분 이내에 차례차례 각 에리어를 돌파하거나, 주거구의 도구상에서 판매하는 값비싼 지도 아이템으로 사방의 연결상태를 확인하며 걸어가야만 한다.

지도를 가진 것은 리더인 방패검사뿐이었으며, 방황의 숲에서는 전이결정을 사용해도 마을로 날아가지 않고 랜덤으로 숲의 어딘가에 떨어지게 되어 있어, 시리카는 어쩔 수 없이 일직선으로 돌파를 시도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대한 나무뿌리를 이리저리 돌아가며 구불구불한 숲길을 뛰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똑바로 북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에리어 끝에 도착하기 직전에 1분이 경과해, 어딘지도 모를 장소로 워프되는 일을 몇 차례나 경험했다. 시리카는 지쳐서 늘어질 지경이었다. 노을빛은 점점 짙어지고, 스멀스멀 다가오는 어둠에 조바심을 낼수록 에리어 탈출은 더뎌지기만 했다.

마침내 시리카는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우연히 숲 끝의 에리어로 날아가기를 기대하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운은 좀처럼 찾아와주지 않았고-. 터덜터덜 걷는 동안에도, 용서없이 몬스터는 습격해왔다. 레벨에는 여유가 있다고 하나 주위가 어두워지자 발밑도 잘 보이지 않았다. 피나도 도와주었지만 모든 전투를 다치지 않고 헤쳐나오지는 못해, 마침내 남은 포션과 비상용 힐 크리스탈까지 다 쓰고 말았다.

시리카의 불안을 감지했는지, 어깨에 올라탄 피나가 꾸르르르, 하며 울면서 뺨에 머리를 비볐다. 파트너의 긴 목을 다독이듯 쓰다듬으며 시리카는 자신의 자만심과 성급함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을 후회했다.

걸어가며, 하나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반성할게요. 두 번 다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다음의 워프로 숲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워프 존으로 발을 들였다. 순간 현기증같은 감각에 휩싸인 후, 눈앞에 펼쳐진 것은-당연하게도 이제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깊은 숲이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자리잡은 나무들 너머로 초원이라고는 손바닥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실망하며 다시 걸어가려 했을 때-어깨 위에서 피나가 고개를 홱 쳐들더니 한층 예리한 목소리로 뀨르륵! 하고 울었다. 경계하라는 뜻이다. 시리카는 재빨리 허리에서 애용하는 단검을 뽑아들고 피나가 쳐다본 방향으로 겨누었다.

수 초 후, 이끼가 낀 거목의 그림자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집중하자, 노란 커서가 표시된다. 복수다. 둘……, 아니, 세 마리. 몬스터의 이름은 《드렁큰 에이프》. 방황의 숲에 출현하는 것들 중에서는 최고 레벨에 속하는 유인원이다. 시리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레벨적으로는, 그다지 위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리카와 같은 중층 클래스 플레이어가 필드에 나갈 때는 출현 몬스터에 대해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안전선을 잡아놓는 것이 상식이었다. 기준은 솔로로 다섯 마리의 몬스터에 포위당했을 때도 회복수단 없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왜냐하면, 최전선에서 게임 클리어를 목표로 싸우는 톱 검사들과는 달리, 중층 플레이어가 모험을 하는 이유는 첫째로 생활에 필요한 콜을 벌기 위해, 둘째로 중층 클래스로 머물기 위한 최저한도의 경험치를 벌기 위해, 셋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지루함을 때우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어느 것도, 현실의 죽음을 걸 만한 목적은 아니었다. 실제로 《시작의 마을》에는 죽음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을 기피한 플레이어들이 천 명도 넘게 남아있다.

하지만 먹을 만한 식사를 하고 여관 침대에서 잠을 자기 위해선 정기적인 수입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플레이어의 평균 레벨대에 속하지 못하면 불안해지는 것이 MMO플레이어의 숙명이라는 것도 있어서, 게임 개시로부터 1년 반 가까이 경과한 현재, 주류를 형성하는 플레이어들은 매우 넉넉한 안전선을 치고 필드에 나가며 나름대로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고로-.35층 최강 클래스인 드렁큰 에이프 3마리라 해도, 드래곤 마스터 시리카의 적은 아니다, 일 것이었다.

피로한 정신을 채찍질하며 시리카는 단검을 들었다. 피나도 어깨 위에서 떠올라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나무 뒤에서 나타난 것은 검붉은 모피를 가진 커다란 유인원들이었다. 오른손에 조잡한 곤봉을 쥐고, 왼손에는 끈이 묶인 표주박 같은 단지를 들고 있었다.

유인원이 곤봉을 치켜들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포효하는 동안, 선수를 치기 위해 시리카는 선두에 선 한 마리를 향해 땅을 박찼다. 단검 스킬의 중급 돌진기 《래피드 바이트》를 명중시켜 크게 HP를 깎아내고, 그대로 단검의 최고 장점인 고속 연속기로 몰아붙여 압도했다.

드렁큰 에이프가 사용하는 것은 저레벨의 메이스 스킬로, 일격의 위력은 그럭저럭 크다고 해도 공격 스피드도 연속기의 히트수도 별것 아니었다. 시리카는 정확한 연속공격을 퍼붓곤 재빨리 뒤로 빠져나가 적의 반격을 피한 후, 다시 뛰어드는 히트 앤 어웨이를 반복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마리의 HP바를 크게 줄여버렸다. 피나도 가끔씩 비눗방울 같은 브레스를 뿜어 적의 눈을 혼란시켰다.

네 번째 공격으로 연속기 《패드 에지》를 날려, 첫 번째의 유인원에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 순간.

한순간의 틈을 뚫고 목표의 오른쪽 뒤에서 새로운 적이 전위로 스위치했다. 시리카는 어쩔 수 없이 표적을 변경하고 두 번째 적을 공격했다. 처음의 유인원은 뒤로 물러나더니, 왼손으로 단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의 끝에서 첫 번째의 드렁큰 에이프의 HP바를 체크하던 시리카를 경악시키는 현상이 일어났다. HP가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 단지에는 모종의 회복제가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드렁큰 에이프는 예전에도 이곳 35층에서 전투해본 적이 있고, 그 때는 두 마리를 힘들이지 않고 물리쳤다. 스위치시킬 여유조차 없기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특수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은 몰랐다. 시리카는 이를 악물고 두 번째 적을 확실하고 해치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맹공 끝에 두 번째 적의 HP바를 레드 존까지 감소시키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거리를 둔 순간, 또다시 옆에서 다른 놈이 끼어들어왔다. 세 번째 드렁큰 에이프였다. 이미 첫 번째 적은 HP를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

이래서는 끝이 없다. 입 안이, 조바심으로 바짝 타들어갔다.

시리카는 애초에 솔로로 몬스터와 싸운 경험이 거의 없었다. 레벨이야 안전선을 치고 있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 플레이어 자신의 스킬은 별개의 문제였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맞아, 시리카의 마음속에서 싹튼 조바심은 서서히 혼란의 색을 띠기 시작했다. 조금씩 미스 어택이 증가했으며, 그것은 동시에 적의 반격을 허용했다.

세 번째 드렁큰 에이프의 HP바를 어찌어찌 반감시켰을 때, 연속기를 계속 날리기 위해 지나치게 깊이 파고든 시리카의 경직시간을 놓치지 않고 유인원이 일격을 날렸다. 그것이 마침내 크리티컬로 명중했다.

곤봉은 나무를 깎아 만든 조잡한 것이었으나, 중량으로 인한 기본 데미지와 드렁큰 에이프의 근력 보정이 더해져 시리카의 HP는 무려 30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 등에 서늘한 감촉이 내달렸다. 회복 포션이 떨어졌다는 것도 시리카의 동요를 더욱 부풀렸다. 피나가 힐 브레스로 회복시켜주는 HP는 10퍼센트 정도. 그나마 그리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를 계산에 넣는다 해도 앞으로 세 번만 같은 데미지를 받는다면-죽고 만다.

죽음. 그 가능성이 뇌리를 스친 순간 시리카는 얼어붙고 말았다. 팔이 올라가질 않았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이제까지 그녀에게 있어서의 전투란 스릴있긴 해도 현실적인 위험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연장선상에 진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포효하며 다시 한 번 곤봉을 높이 치켜든 드렁큰 에이프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굳은 채, 시리카는 처음으로 SAO의 대 몬스터 전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었다. 게임이되 놀이가 아니라는, 그 모순된 진실을.

공기를 가르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곤봉이 뻣뻣하게 서 있던 시리카를 강타했다. 강렬한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지면에 쓰러졌다. HP바가 확 줄어들며 노란색의 주의영역으로 돌입했다.

이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뛰어서 도망친다. 전이결정을 사용한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시리카는 멍하니 세 번째로 치켜올라간 곤봉을 바라보기만 했다.

조잡한 무기가 붉은색을 띠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려던 그 순간.

곤봉 앞의 공간으로 뛰어든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무겁고 오싹한 타격을. 라이트이펙트와 함께 하늘색 깃털이 확 흩어지더니, 동시에 얼마 안 되는 HP바가 왼쪽 끝까지 감소했다.

지면에 내동댕이쳐진 피나는 목을 치켜들어 동그랗고 파란 눈으로 시리카를 바라보았다. 조그만 소리로 「뀨르…」하고 울고는-직후, 반짝거리는 폴리곤의 파편을 흩뿌리며 박살났다. 긴 꼬리깃털 한 장이 하늘에서 팔랑 춤추고 지면으로 떨어졌다.

시리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온몸을 묶어놓았던 보이지 않는 실이 사라졌다. 슬픔보다도 먼저 분노를 느꼈다. 겨우 한 방 맞았다고 혼란에 빠져 움직이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이전에, 사소한 말다툼에 토라져서 단독으로 숲을 돌파하겠다고 잘난척했던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분노를.

시리카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뒤를 향해 물러나 몬스터의 추격타를 피하고는, 기합을 지르며 적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번뜩이는 오른손의 단검을 유인원의 몸에 차례차례 내질렀다.

동료의 HP가 줄어든 것을 보고 다시 스위치한 맨 처음 드렁큰 에이프의 곤봉을, 시리카는 피하지도 않고 왼손으로 받아냈다. 직격까지는 아니지만 HP바가 감소했다. 하지만 무시하고 어디까지나 세 번째 적, 피나를 죽인 놈만을 쫓았다.

조그마한 몸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