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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렸군. 게임 클리어 축하한다, 키리토 군, 아스나 군”

툭 내뱉은 그 말에 우리는 곁에 선 카야바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바람이 불더니, 그에 휩쓸려 지워지듯- 정신이 들고 보니 그 모습은 이미 아무 데도 없었다. 붉은 석양이 수정판을 투과해 조용히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단둘만 남았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현실세계로 돌아갔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의식을 자기 손으로 지워 어딘가에 있을 진짜 아인클라드로 떠난 것이다. 가상세계의 부유성은 이미 꼭짓점 부분만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보지 못한 76층 위쪽이 덧없이 무너져갔다. 세계를 에워싸며 지워나가는 빛의 장막도 드디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렁이는 오로라 같은 그 빛에 닿을 때마다 구름바다와 석양빛 하늘 그 자체가 미세한 파편을 흩뿌리며 무로 돌아갔다.

아인클라드의 최상층에는 화려한 첨탑을 가진 거대한 진홍색 궁전이 보였다. 게임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우리는 저곳에서 마왕 히스클리프와 검을 마주했을 터다.

주인 없는 궁전은 그 바닥이 되는 최상층이 무너졌어도 운명에 저항하듯 한동안 부유하고 있었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층 짙은 진홍색으로 빛나는 그 궁전은 마지막으로 남은 부유성의 심장처럼 보였다.

마침내 파괴의 파도가 가차없이 진홍의 궁전을 휘감았다. 바닥부터 서서히 무수한 붉은 구슬로 분해되어 구름 틈으로 떨어져간다. 한층 높은 첨탑이 사산되는 것과 빛의 장막이 그 공간을 삼켜버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거성 아인클라드는 완전히 소멸하고, 세계에는 몇몇 석양빛 구름의 무리와 작은 수정판, 그곳에 앉은 나와 아스나만이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마 카야바가 준 얼마 안 되는 유예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세계의 소멸과 동시에 너브기어의 최종 기능이 발동해 모든 것을 끝내리라.

나는 아스나의 뺨에 손을 가져다대고는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마지막 키스. 시간을 들여 그녀의 모든 존재를 영혼에 새기려 했다.

“.....작별이구나”

아스나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으응, 작별이 아니야. 우리는 하나가 되어 사라지는걸.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함께야”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 그녀는 내 팔 안에서 몸을 돌리고는 정면에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지었다.

“있지, 마지막으로 이름 가르쳐줘. 키리토의, 진짜 이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잠시 당황했으나, 2년 전에 작별을 고했던 저 세계의 이름을 말한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내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치 머나먼 세계의 일이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기억 속 밑바닥에서 떠오른 이름을, 신비한 감회에 사로잡힌 채 발음했다.

“키리가야...카즈토. 지난달에 아마 16이 됐을 거야”

그 순간, 멈춰있던 또 다른 나의 시간이 소리를 내며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검사 키리토의 내면에 파묻혀 있던 카즈토의 의식이 천천히 떠올랐다. 이 세계에서 몸에 걸쳤던 단단한 갑옷이 차례차례 떨어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키리가야...카즈토...”

한 음씩 곱씹어보듯 입에 담더니, 아스나는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연하였구나-. ....난 있지, 유우키...아스나. 17이야”

유우키...아스나. 유우키 아스나. 그 아름다운 여섯 음을 몇 번이고 가슴속에서 되뇌었다.

문득 두 눈에서 뜨겁게 넘쳐나는 것이 있었다.

영원한 황혼 속에서 정지했던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을 헤집는 듯한 격렬한 아픔. 이 세계에 사로잡힌 이래 처음으로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어린아이처럼 목이 메어 두 손을 꾹 쥐고 소리를 내며 울었다.

“미안...미안해.... 너를....저 세계에....돌려보낸다고....약속했는데...나는....”

말을 있지 못한다. 결국, 가장 소중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녀가 걸어가야 할 빛으로 넘쳐나는 길을, 힘이 부족해 닫아버리고 말았다는 회한이 눈물로 바뀌어 끊임없이 넘쳐났다.

“괜찮아...괜찮은걸....”

아스나도 울고 있었다. 일곱 색으로 빛나는 보석 같은 눈물이 잇달아 뺨을 타고 빛의 입자가 되어 증발했다.

“나, 행복했어. 카즈토와 만나서, 함께 지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는걸. 고마워...사랭해....”

세계의 종말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는 강철의 거성도, 무한한 구름바다도, 난무하는 광채 속으로 사라져 빛의 입자를 흩뿌리며 소멸해간다.

나와 아스나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백열하는 빛 속에서, 감정조차 승화되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는 이제 아스나에 대한 사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분해되어 증발하는 가운데, 나는 그저 그녀의 이름만을 부르고 있었다. 시야가 빛으로 채워져갔다. 모든 것이 순백색 베일에 휩싸여 가느다란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눈앞에서 그녀의 미소가 세계에 넘쳐나는 빛과 섞여간다.

-사랑...사랑해-

최후로 남은 의식 속에 달콤한 종소리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라는 존재, 그녀라는 존재를 이루었던 경계가 소멸하며 두 사람은 겹쳐졌다.

영혼이 녹아들고, 하나가 되어, 확산되었다.

사라져간다.

【25】

공기에 냄새가 있었다. 나의 의식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보다도, 우선 그 사실에 놀랐다.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공기에는 수많은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코를 자극하는 듯한 소독약 냄새, 잘 마른 천의 햇빛 냄새, 과일의 달콤한 냄새, 그리고 내 몸의 체취.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머릿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강렬한 햇빛을 느끼고 황급히 눈을 꽉 감았다.

주저하며 다시 한 번 천천히 눈을 떠본다. 수많은 색을 띤 빛의 난무. 눈에 대량의 액체가 고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눈을 깜빡여 그것을 흘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액체는 잇달아 넘쳐 나왔다. 이것은 눈물이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일까. 격렬하고 깊은 상실의 여운만이 가슴속에 애틋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던 소리가 귓가에 어렴풋이 메아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강한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어떻게든 눈물을 훔쳐냈다.

무언가 부드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