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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아스나에게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소리도 없이 내 팔 안으로 그녀가 허물어졌다.

아스나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HP바가- 소멸했다.

시간이 정지했다.

저녁 노을. 초원. 미풍. 쌀쌀하다.

둘이 나란히 언덕에 앉아 짙은 쪽빛 위에 노을의 금적색이 녹아드는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둥지로 돌아가는 새의 소리.

그녀가 살짝 손을 잡는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구름이 흘러간다. 하나, 둘,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세계를 물들인 색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둘이서 언제까지나 질리지도 않고 바라본다.

마침내 그녀가 말한다.

“조금, 졸려졌어. 무릎, 빌려도 돼?”

웃으며 대답한다.

“아아, 그래. 푹 자-”

내 팔 안으로 쓰러진 아스나는 그때와 똑같이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무한한 자애를 머금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확실한 무게도, 따뜻함도 지금은 없었다.

아스나의 온몸이 조금씩 금색 광채에 휩싸여간다. 빛의 입자가 무너지며 흩어지고 있다.

“거짓말이지....아스나....이런....이런 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무자비한 빛은 점점 광채를 더해가며-

아스나의 눈동자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져, 일순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입술이, 어렴풋하게, 천천히, 소리를 자아내듯 움직였다.

미 안 해

잘 있어

확-.

내 팔 안에서, 한층 눈부신 빛이 터지더니 무수한 금색 깃털이 흩날렸다.

그리고 그곳에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절규를 지르며, 나는 그 빛을 두 팔로 필사적으로 긁어모으려 했다. 그러나 금빛 깃털은 바람에 날아가듯 허공으로 솟으며, 퍼지고, 증발되었다. 사라진다.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일어나도 좋을 리가 없다. 그럴 리가. 그럴-

무너지듯 무릎을 꿇은 내 오른손에, 마지막 깃털이 살짝 닿고는 사라졌다.

【23】

카야바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연극적인 몸짓으로 두 팔을 크게 벌려 보였다.

“이건 놀랍군. stand alone RPG의 시나리오 같지 않나? 마비에서 회복할 수단은 없었을 텐데.....이런 일도 일어나는 건가”

그러나 그 목소리도 내 의식에는 닿지 않았다. 온갖 감정이 끝어올라 어둡고 깊은 절망의 늪으로 떨어져가는 감각만이 나를 에워쌌다.

이로써 무언가를 이룰 이유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 세계에서 싸우는 것도, 현실세계에 돌아가는 것도, 살아가는 것조차도 무의미하다. 이전, 내 무력함 탓에 길드 동료들을 모두 잃었을 때, 나도 목숨을 끊어야 했던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스나와 만날 일도, 그리고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일도 없었다.

아스나가 자살하지 않도록-라니, 무슨 어리석고, 얄팍한 소리를 했단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런-공허한 구멍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나는 바닥에서 빛나는 아스나의 세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너무나도 가볍고 가녀린 그 무기 안에서 그녀의 존재를 기록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가만히 응시했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표정하게 빛나는 그 표면에는 주인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오른손에 나의 검을, 왼손에 아스나의 세검을 쥔 채 비틀비틀 일어났다.

이젠 됐어. 그녀와 지냈던 얼마 안 되는 나날의 기억만을 품고 나도 같은 곳으로 가겠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오른손의 검을 치켜든 채, 나는 카야바에게 파고들었다. 두 걸음, 세 걸음, 꼴사납게 전진해 검을 내질렀다.

스킬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공격조차도 아닌 그 동작에 카야바는 연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방패로 어렵지도 않게 내 검을 튕겨내고는 오른손의 장검으로 가볍게 내 가슴을 꿰뚫었다.

나는 내 몸에 깊이 틀어박힌 금속의 광채를 아무런 감정도 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무색의 체념만이 있을 뿐이었다.

시야 오른쪽 끝에서 나의 HP바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지각의 가속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소멸해가는 한 도트 한 도트가 모두 보이는 것 같았다. 눈을 감는다. 의식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는 아스나의 미소를 떠올리고 싶었다.

시야가 어둠 속에 갇혀도 HP바는 사라지지 않는다. 덧없이, 붉게 발광하는 그 라인은 확실한 속도로 폭을 좁혀간다. 이제까지 나의 존재를 허락해주었던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신이 입맛을 다시며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기척을 느꼈다. 앞으로 10도트, 앞으로 5도트, 앞으로-.

그때, 문득 나는 이제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이놈이다. 아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