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문의주세요 ✔ 상가114


돌아보자, 아스나도 지면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나와 카야바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나는 검을 등에 꽂은 후 무릎을 꿇고 아스나의 윗몸을 안아 일으키며 그 손을 쥐었다. 그리고 카야바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삽입

“...어쩔 셈이지. 이 장소에서 모두를 죽여 은폐할 생각이냐...?”

“설마. 그런 부조리한 짓은 하지 않아”

붉은 옷의 남자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예정을 앞당겨서, 나는 최상층의 《홍옥궁(紅玉宮)》에서 자네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기로 하겠다. 90층 이상의 강력한 몬스터군에 대항하기 위한 힘으로 키웠던 혈맹기사단, 그리고 공략파 플레이어 제군들을 도중에 방치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뭘, 자네들의 힘이라면 분명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키리토 군, 자네에게는 내 정체를 간파한 보상을 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기회를 주겠다. 지금 이 장소에서 나와 1대 1로 싸울 기회를. 물론 불사속성은 해제한다. 내게 이긴다면 게임은 클리어되고, 모든 플레이어가 이 세계에서 로그아웃할 수 있다. ...어때?”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팔 안에서 아스나가 자유를 잃은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이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키리토...! 너를 배제할 생각이야....지금은....지금은 물러나자....!”

내 이성도, 그 의견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녀석은 시스템 그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관리자다. 입으로는 공정한 전투라고 해도 무슨 조작을 가할지 알 수 없다. 일단은 물러나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그러나.

녀석은 뭐라고 했지? 혈맹기사단을 키워왔다고? 분명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웃기지 마....”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녀석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1만 명의 정신을 유폐시켜놓고는 그중 무려 4천 명의 의식을 전자파로 소각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그린 시나리오대로 플레이어들이 어리석게, 가엾게 발버둥치는 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리다. 게임 마스터로서 이 이상의 쾌감은 없었으리라.

나는 22층에서 들었던 아스나의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게 매달려 울던 그녀의 눈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세계 창조의 쾌감을 위해 아스나의 마음을 몇 번이고 짓밟고, 피를 흘리게 했던 이 남자를 눈앞에 둔 채 어떻게 그냥 물러날 수 있을까.

“좋아. 결착을 짓자”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키리토....!”

아스나의 비통한 외침에, 팔 안의 그녀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가슴을 꿰뚫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웃음을 짓는 데 성공했다.

“미안해. 여기서 도망칠 수는....없어....”

아스나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대신 필사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물방울이 그 뺨을 타고 떨어졌다.

“죽을 생각인 것....아니지...?”

“아아.... 반드시 이긴다. 이겨서 이 세계를 끝내겠어”

“알았어. 믿을게”

설령 내가 패배해 소멸한다 해도, 너만은 살아줘-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대신 아스나의 오른손을 힘있게, 오랫동안 쥐고 있었다.

손을 놓고 아스나의 몸을 흑요석 바닥에 눕힌 후 일어났다.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는 카야바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양손으로 소리 높여 두 자루의 검을 뽑아들었다.

“키리토! 그만둬....!”

“키리토!”

목소리의 방향을 쳐다보니 에길과 클라인이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며 외치고 있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우선 에길에게 시선을 맞추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에길. 지금까지, 검사 클래스의 서포트, 고마웠어. 알고 있다고, 네가 번 돈의 거의 대부분을 중층 존의 플레이어의 육성에 쏟아붇고 있었다는 걸”

눈을 크게 뜬 거한에게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악취미한 반다나의 카타나 사용자는 덥수룩한 수염이 난 뺨을 떨며, 무언가 말을 고르는 듯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그 움푹 들어간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떻게 해도 자꾸만 목이 메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클라인. .....그 때, 너를....남겨둬서, 미안했어. 계속, 후회하고 있었어”

갈라진 목소리로, 그 말을 끝내자, 오랜 친구의 두 눈가에 작게 빛나는 것이 나타나더니 차례차례 방울져 떨어졌다.

그치지도 않는 눈물과 함께 클라인은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이...이 자식아! 키리토! 사과하는 게 아니야! 지금 사과하지 말라고!! 용서하지 않는다! 확실히 저쪽에서, 밥 한 끼정도 사주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끝까지 소리를 질러대려는 클라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약속할게. 다음은, 저쪽에서 말이지”

오른손을 들고, 척하고 엄지를 세운다.

그리고 나는, 2년간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말을 하게 해준 소녀를, 최후로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우는 미소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