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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와 듀얼을 했을 때, 그의 무시무시한 반응속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속도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 SAO의 시스템이 허용한 플레이어의 한계속도를 말이다.

계다가 그의 평소 태도, 최강 길드의 리더이면서도 스스로 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으며,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모든 일을 맡긴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것은 부하를 믿어서가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들은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제했던 것인가?

데스 게임의 룰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 그러나 NPC는 아니다. 단순한 프로그램이 저처럼 자비에 넘치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NPC도 아니고 일반 플레이어도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방법 따위는 없다.....무엇 하나도.

아니, 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만 가능한 방법이 단 하나 있다.

나는 히스클리프의 HP바를 쳐다보았다. 가혹한 전투를 거쳐 크게 감소되었다. 그러나 절반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블루 존에 머물러 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옐로우 존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방어력.

나와 듀얼했을 때, 히스클리프의 표정이 변했던 것은 HP가 반 이하로 줄어들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옐로우 표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아마도-.

나는 천천히 오른손의 검을 고쳐쥐었다. 극히 적은 움직임으로 서서히 오른발을 뒤로 뺐다. 허리를 살짝 낮추고 저공대시 준비자세를 취했다.히스클리프는 내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따뜻한 시선은 오로지 지친 길드 단원들만을 향해 있었다.

만약 예상이 완전히 빚나간다면 나는 범죄자 플레이어로 전락해 가차없는 재재를 받게 되겠지.

그때는...미안해.....

나는 옆에 주저앚은 아스나를 흘끔 보았다. 동시에 아스나도 고개를 들어 우리의 시선이 교차되었다.

“키리토....?”

아스나가 흠칫한 표정으로 말없이 입술만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내 오른발이 땅을 박차고 있었다.

나는 히스클리프와의 거리 10여 미터, 바닥에 닿을락말락한 높이를 전속력으로 순식간에 질주해 오른손의 검을 비틀며 찔러올렸다. 한손검 기본 돌진기 《레이지 스파이크》. 위력이 약한 스킬이니 이것이 명중한다 해도 히스클리프를 죽일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내 예상이 옳다면-.

창백한 푸른색 섬광을 끌며 왼쪽 측면으로부터 날아드는 검극. 히스클리프는 빠른 반응속도로 알아차리고 눈을 부릅뜬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즉시 왼손의 방패를 치켜들어 가드하려 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의 버릇을 나는 듀얼 때 몇 번이나 보며 기억하고 있었다. 한 줄기 광선이 된 나의 검이 공중에서 예각으로 각도를 바꾸며 방패 끝을 스쳐 히스클리프의 가슴에 날아들고-.

명중하기 직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격돌했다. 팔에 격렬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보라색 섬광이 작렬하며, 나와 녀석의 중간에 같은 보라색- 시스템 컬러 메세지가 표시되었다.

【Immortal Object】. 불사 존재. 연약한 유한의 존재인 우리 플레이어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속성. 듀얼 때 히스클리프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 초월적인 보호장치가 폭로되고 마는 것이었다.

“키리토, 무슨-”

내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려던 아스나가 메세지를 보고 우뚝 멈춰섰다. 나도, 히스클리프도, 클라인이나 주위의 플레이어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천천히 시스템 메세지가 소멸했다.

나는 검을 거두고 가볍게 뒤로 뛰어 히스클리프와 거리를 벌렸다. 몇 걸음 나선 아스나가 내 오른쪽 옆에 나란히 섰다.

“시스템적 불사...? ..라니..어떻게 된거죠...단장...?”

당황한 아스나의 목소리에, 히스클리프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양손에 검을 든 채 입을 열었다.

“이것이 전설의 정체야. 이 남자의 HP는 무슨 수를 서도 옐로우 존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던 거야. ....불사속성을 지닐 가능성이 있는 것은...NPC가 아니면 시스템 관리자 이외에는 있을 수 없지. 하지만 이 게임에는 관리자가 없어.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말을 끊고 상공을 흘끔 올려다보았다.

“...이 세계에 와서부터 계속 품어왔던 의문이 있었지....저녀석은 지금, 어디에서 우리들을 관찰하고, 세계를 조정하고 있을까, 하고 말야. 하지만 나는 단순한 진리를 잊고 있었어. 어떤 꼬마라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나는 붉은 옷의 성기사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남이 하는 RPG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다》. ....그렇지, 카야바 아키히코?”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히스클리프는 무표정을 버리지 않은 채 내게 시선을 향하고 있다. 주위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꼼짝도 못하는 것일까.

내 곁에서 아스나가 천천히 한 걸음 나섰다. 그 눈동자는 허무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듯 감정이 결여되어 있었다. 입술이 살짝 열리며 메마른 목소리가 세어나왔다.

“단장....사실...이에요....?”

히스클리프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깨달았는지 참고삼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최초로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지난 듀얼 때였지. 마지막 한순간만은, 당신은 너무나 빨랐어”

“역시 그런가. 그건 나에게 있어서도 상정 외였다. 네 움직임에 압도당해서 그만 시스템의 오버어시스트를 사용해버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처음으로 표정을 보였다. 입술 양끝을 일그러뜨리며 어렴풋한 쓴웃음을 짓는다.

“예정상으로는 공략이 95층에 달할 때까지 밝히지 않을 셈이었는데 말이지”

천천히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웃음의 색채를 초연한 것으로 바꾸더니, 붉은 성기사는 당당히 선언했다.

“-확실히 나는 카야바 아키히코다. 덧붙이자면, 최상층에서 자네들을 기다릴 게임의 최종보스이기도 하지”

옆에서 아스나가 살짝 비틀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아스나를 오른손으로 지탱했다.

“...취미가 좋다고는 못하겠는걸. 최강의 플레이어가 갑자기 최악의 라스트보스라니”

“제법 괜찮은 시나리오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겨우 4분의 3 지점에서 간파당하다니. ....자네는 이 세계에서 최대의 불확정인자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여기까지라곤”

이 게임의 개발자이자 1만 명의 정신을 포로로 삼은 사내, 카야바 아키히코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엷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성기사 히스클리프의 용모는 현실세계의 카야바와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 무기질적인, 금속과도 같은 기척은 2년 전 우리 위에 강림했던 무표정한 아바타와 공통된 무언가가 있었다.

카야바는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최종적으로 내 앞에 설 플레이어는 자네일 거라고 예상했지. 총 10종이 존재하는 유니크 스킬 중에서도 《이도류》 스킬은 모든 플레이어들 가운데 최고의 반응속도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고, 그에게 마왕에 대항할 용자의 역할을 맡길 예정이었다. 이기건 지건. 그러나 자네는 내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주었지. 공격속도도 그렇지만 통찰력 또한 말이지. 뭐...이런 생각지도 못한 전개 또한 온라인 RPG의 진수라고 해야 할려나....”

그때, 얼어붙은 듯 움직임을 멈추고 있던 플레이어 중 하나가 천천히 일어났다. 현맹기사단의 간부였다. 무뚝뚝해 보이는 그 가느다란 눈에 처참한 고뇌의 빛이 어려 있었다.

“네놈...네놈이....우리들의 충의- 희망을...잘도....잘도....”

거대한 핼버드를 치켜들더니,

“잘도-!!”

절규하며 땅을 박찼다. 말릴 새도 없이, 크게 치켜든 중장 무기를 카야바에게-.

그러나 카야바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그가 왼손을 휘둘러 출현한 윈도우를 재빨리 조작하자 간부 사내의 몸은 공중에서 정지하더니 바닥에 쿵 떨어졌다. HP바에 녹색 아웃라인이 깜빡이고 있다. 마비 상태다. 카야바는 그대로 손을 멈추지 않고 윈도우를 계속 조작했다.

“아....키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