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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차가 있는..... 여기서는 《저쪽》의 화제는 금기니까,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사람과 한 적은 없지만....키리토는 예외야. 나....나, 일생 키리토의 옆에 있고 싶어. 확실히 사귀고, 정말로 결혼해서, 함께 나이를 먹고 싶어. 그러니까....그러니까.....”

그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스나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참을 수 없는 오열을 터뜨렸다.

“그러니까....지금은 싸우지 않으면 안돼....”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스나가 꺾일 듯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지탱하며 운명을 열어주려 하는데, 내가 어떻게 주저앉을 수 있을까.

괜찮아- 분명 괜찮을 것이다. 둘이라면, 분명-.

가슴속에 치미는 오한을 떨쳐내듯, 나는 아스나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21】

75층 콜리니아 시의 광장에는, 이미 공략 팀으로 생각되는, 언뜻 봐도 고레벨인 것을 알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나와 아스나가 게이트에서 나와 다가가니, 모두 입을 딱 다물고 긴장된 표정으로 목례를 보내왔다. 개중에는 오른손으로 길드식 경례를 보내는 자들까지 있었다.

나는 크게 당황하면서 발을 멈추었으나, 곁의 아스나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답례하고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자, 키리토는 리더격이니까 제대로 인사하지 않으면 안돼!”

“뭐....”

뻣뻣한 동작으로 경례했다. 이제까지의 보스 공략전에서 집단에 소속된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어!”

누군가 있는 힘껏 어깨를 때리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보니 카타나 사용자 클라인이 악취미한 반다나 밑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옆에는 양손도끼로 무장한 에길의 거구까지 보였다.

“뭐야...너희까지 참가한 거냐”

“뭐야라는 건 아니잖아!”

에길이 분개하며 굵은 목소리를 냈다.

“이번엔 엄청 고전할 것 같다고 해서 가게도 내팽개치고 이렇게 온 거 아니냐. 이 무사무욕(無私無欲)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과장된 몸짓으로 말하는 에길의 팔을 툭 치며,

“무사(無私)의 정신은 잘 알겠어. 그럼 넌 전리품 분배에서 빼도 되겠지”

그리 말하자마자 이 거한은 맨들맨들한 머리를 긁으며 눈썹을 八자로 모았다.

“아니, 그, 그건 말이지...”

딱하게 말꼬리를 우물거리는 모습에 클라인과 아스나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겹쳐졌다. 웃음은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도 전염되어, 모두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려가는 것 같았다.

정확히 오후 1시가 되자 게이트에서 새로 몇 명이 출현했다. 긴 진홍의 옷에 거대한 십자방패를 든 히스클리프와 혈맹기사단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 플레이어들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맴돌았다.

단순한 레벨적 강함이라면 나와 아스나를 상회하는것은 히스클리프 본인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들의 결속력이 보여주는 박력은 굉장했다. 백적의 길드컬러를 제외하면 무장과 장비는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여기에서 풍겨나오는 집단으로서의 힘은 전에 보았던 군의 부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성기사와 부하 넷은 플레이어들의 집단을 둘로 가르며 곧바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위압되었는지 클라인과 에길이 몇 걸음 물러서는 가운데, 아스나만은 태연한 얼굴로 경례를 나누었다.

멈춰 선 히스클리프는 우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결원은 없는 모양이로군. 잘 모여주었다. 상황은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 혹독한 전투가 될 테지만, 제군의 힘이라면 헤쳐나갈 수 있으려라 믿는다. -해방의 날을 위하여!”

히스클리프의 힘찬 외침에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그의 자석과도 같은 카리스마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로 사회성이 결여되기 쉬운 코어 온라인 게이머 가운데에 용케도 이만큼 지도자의 그릇을 갖춘 인물이 있었다니, 혹은 이 세계가 그의 재능을 꽃피워준 것일까? 현실세계에서는 뭘 하던 사람이었을까....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히스클리프는 이쪽을 돌아보곤, 어렴풋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키리토 군, 오늘은 의지하고 있겠네. 《이도류》,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게”

낮고 부드러운 그 목소리에는 한 점의 부담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사투가 닥쳐왔는데도 이렇게 여유가 있다니, 과연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히스클리프는 다시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가볍게 한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면, 출발한다. 목표인 보스몬스터룸 직전의 장소까지 코리더(Corridor:회랑)을 연다”

말하며, 허리의 팩에서 남색 크리스탈 아이템을 꺼내자,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오오..”하는 술렁임이 새어나왔다.

원래 전이결정은 지정된 도시의 전이문까지 사용자 혼자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지금 히스클리프가 꺼낸 것은 《회랑결정(코리더 크리스탈)》이라는 아이템으로, 임의의 지점을 기록해 그곳으로 전이게이트를 열 수 있는 매우 편리한 물건이다.

그러나 그 편리성에 희소도도 비례해서, NPC샵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미궁구의 보물상자나 강력한 몬스터의 드롭 아이템으로만 출현하기 때문에 입수한다 해도 이를 쓰려는 플레이어는 별로 없다. 조금 전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던 것은 레어한 회랑결정을 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아낌없이 사용하겠다는 히스클리프에게 놀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그런 모두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 듯, 히스클리프는 크리스탈을 쥔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코리더·오픈”이라고 발성했다. 극히 비싼 크리스탈은 순식간에 깨져, 그의 정면 공간에 푸르게 일렁이는 빛의 소용돌이가 출현했다.

“그럼 모두들, 따라와라”

우리들을 휙 둘러보더니 히스클리프는 붉은 옷을 휘날리며 푸른빛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모습은 순식간에 빛나는 섬광에 휩싸여 소멸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KoB 멤버 네 명이 그 뒤를 따랐다.

어느새 전이광장 주위에는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었다. 보스 공략작전 이야기를 듣고 배웅을 나온 것이리라. 격려의 성원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검사들은 빛나는 통로로 차례차례 뛰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나와 아스나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맞잡고 동시에 빛의 소용돌이로 몸을 날렸다.

가벼운 현기증과 비슷한 전이감각 후에, 눈을 떠보니 그곳은 이미 미궁 안이었다. 넓은 복도였다. 벽에는 굵은 기둥이 줄지어 서 있었으며, 그 끝에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75층의 미궁구는 약간 투명감이 도는 흑요석 같은 소재로 쌓아올린 구조물이었다. 투박하고 거친 하부 층의 미궁괴는 달리, 거울처럼 잘 닦인 검은 돌이 직선으로 빈틈없이 쌓여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눅눅하며, 어렴풋한 안개가 천천히 바닥 위에 깔려 있었다.

내 곁에 서 있던 아스나가 한기를 느꼈는지 두 팔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뭔가....싫은 느낌이네.....”

“아아....”

나도 수긍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2년간, 우리들은 74개에 이르는 미궁구를 공략하고 보스를 쓰러뜨렸는데, 이만큼 경험이 쌓이면 소굴만 봐도 그 주인의 역량을 대략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주위에는 서른 명의 플레이어들이 삼삼오오 모여 메뉴 윈도우를 열고 장비며 아이템을 확인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딱딱했다.

나는 아스나를 데리고 한 기둥 뒤로 다가가 그 가녀린 몸에 살짝 팔을 감았다. 전투를 앞두니 억눌렸던 불안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몸이 떨렸다.

“...괜찮아”

아스나가 귓가에 속삭였다.

“키리토는, 내가 지킬게”

“...아니, 그게 아니라....”

“후후”

작게 웃음을 흘리며, 아스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키리토는 날 지켜줘”

“아아...반드시”

나는 살짝 팔에 힘을 준 후 포옹을 풀었다. 복도 한가운데에서 십자방패를 오브젝트화한 히스클리프가 철컹 장비를 울리며 말했다.

“모두, 준비는 되었나? 이번, 보스의 공격패턴에 관해서는 정보가 없다. 기본적으로는 KoB가 전위에서 공격을 막아낼 것이므로, 그사이에 가능한 한 패턴을 분석한 후 유연하게 반격해주기 바란다”

검사들이 말없이 끄덕였다.

“그럼- 갈까”

어디까지나 소프트한 음성으로 말하고, 히스클리프는 대담하게 흑요석의 대문에 다가가더니, 중앙에 오른손을 걸쳤다. 전원에게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나란히 선 에길과 클라인의 어깨를 배후에서 두드리고, 돌아본 그들에게 말했다.

“죽지 마라”

“헷, 너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