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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깜빡거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 나, 원래 저쪽에서는, 언제나 누군가의 뒤에 숨어있던 섬격이었는걸. 이 게임만 해도 스스로 산 건 아니야”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듯 쿡쿡 웃는다.

“오빠가 산 거였는데, 급한 출장이 생겨서, 내가 첫날만 가지고 놀기로 했는걸. 엄청 아쉬워했는데, 2년이나 독점했으니, 화가 났을 거야”

대신 이 세계에 붙들리고 만 아스나가 더 불운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돌아가서 사과해야겠네”

“응.....열심히 하지 않으면....”

하지만 내용과는 달리 말꼬리를 흐린 아스나는 불안한 듯 눈을 내리깔더니 몸을 바싹 붙였다.

“저기....키리토. 아까 말했던 것과 모순되지만....조금쯤, 전선에서 떠나면 안 될까”

“에.....?”

“어쩐지 무서워....이렇게, 드디어 너와 마음이 통했는데, 곧 전장에 나가면, 다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조금, 지친 걸지도 몰라”

아스나의 머리를 살짝 쓸어 넘겨주며 스스로도 의외라고 생각될 정도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네....나도, 지쳤어....”

설령 수치적인 파라미터가 변화하지 않는다 해도 하루하루 반복되는 전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모를 낳는다. 오늘처럼 극한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면 더더욱 마찬가지. 아무리 강한 활이라도 당기기만 한다면 마침내 부러지는 법이다. 휴식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나 자신을 전투로 내몰았던 위기감과도 비슷한 충동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이 소녀와의 유대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나는 아스나의 몸에 두 팔을 감고 비단실 같은 머리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22층의 남서쪽 에리어의, 숲과 호수가 많은 곳.....거기에 작은 마을이 있어. 몬스터도 나오지 않고, 좋은 장소야. 통나무집이 몇 채 팔리고 있었고......둘이서 그리 이사가자. 그리고....”

말이 막힌 나에게, 아스나가 반짝반짝 빛나는 큰 눈동자를 가만히 향했다.

“그리고.....?”

나는 굳어버린 혀를 간신히 움직여 그 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겨, 결혼하자”

아스나가 보여준 최상급의 미소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네”

살짝 끄덕인 그 볼에, 굵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17】

SAO에서 시스템으로 규정된 플레이어 간의 관계는 네 종류로 존재한다.

우선 첫 번째는 무관계한 타인. 두 번째가 프렌드다. 프렌드 리스트에 등록한 사람끼리는 어디에 있어도 간단한 문장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으며, 상대의 현재 위치를 맵에서 찾을 수도 있다.

세 번째는 길드 멤버. 위에서 말한 기능에 더해 전투시 멤버와 파티를 짜면 전투력에 약간이지만 보너스를 얻는다는 특전이 있다. 그 대가로 입수한 콜 중 일정한 비율로 길드에 상납금이 지불되지만.

그렇게 봤을 때 나와 아스나는 이제까지 프렌드와 길드라는 두 조건을 공유했던 셈인데, 둘 모두 길드에서는 일시 탈퇴하고, 대신 마지막 한 가지가 더해지게 되었다.

결혼-이라고 해봤자 수속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다. 어느 한쪽이 프러포즈 메세지를 보내고, 상대가 승낙하면 그걸로 끝난다. 하지만 그에 따라 주어지는 변화는 프렌드나 길드 멤버에 비견될 것이 아니다.

SAO에서 결혼이 의미하는 것은 간결하게 말하자면 모든 정보와 모든 아이템의 공유. 서로 상대의 스텟 화면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아이템 화면은 하나로 통합되고 만다. 말하자면 최대의 생명선을 상대에게 맡기는 행위이며, 배신이나 사기가 난무하는 아인클라드에서는 제아무리 사이가 좋은 커플이라 해도 결혼까지 이른 예는 극히 드물다. 남녀비율이 지극히 치우친 것도 물론 이유 중 하나이긴 했지만.

제 22층은, 아인클라드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곳 중 하나이다. 하위 플로어여서 면적은 넗지만 그 대부분은 상록수림과 무수히 흩어진 호수가 차지하고 있으며, 주거구역도 극히 작아 촌락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규모였다. 필드에 몬스터는 출현하지 않으며, 미궁구의 난이도도 낮아 겨우 사흘만에 공략되는 바람에 플레이어들의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았다.

나와 아스나는 그 22층의 숲속에 조그마한 통나무집을 구입해 그곳에서 살기로 했다. 작다고는 해도 SAO에서 단독주택을 사려면 웬만한 금액으로는 힘들다. 아스나는 살렘부르그의 집을 팔겠다고 했지만, 그 의견에는 내가 강경하게 반대해- 그렇게 훌륭하게 커스터마이즈된 집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까워도 보통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이 가진 레어 아이템을 에길의 협력을 얻어 모두 팔아치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에길은 아쉬운 표정으로 원한다면 2층을 써도 좋아 라고 했지만, 잡화점에 빌붙어 신방을 차리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기에, 게다가 초 유명 플레이어인 아스나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진다면 과연 무슨 소란이 일어날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사람이 없는 22층이라면 한동안은 조용한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와-, 좋은 경치네!”

침실, 이래봤자 방은 두 개뿐이지만, 그 남쪽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아스나는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분명 절경이긴 하다. 아인클라드 가장자리 부근이기 때문에 반짝이는 호수와 녹음에 물든 나무들 너머로 탁 트인 하늘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평소에는 머리 위 100미터에 얹힌 돌바닥 밑에서 생활하는 탓에, 코앞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주는 개방감이란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다.

“경치 좋다고 해서 너무 가장자리 근처로 가서 떨어지진 마”

나는 가재도구 아이템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뒤에서 아스나의 몸에 두 팔을 감았다. 이 여성은 이젠 내 아내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겨울의 햇볕 같은 따뜻함과 동시에 신비한 감회, 상당히 멀리까지 왔다는 놀라움과도 비슷한 감정 등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이 세계에 사로잡히기까지, 나는 목적도 없이 집과 학교를 오가는 나날을 보내기만 하던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현실세계는 까마득히 먼 과거가 되고 말았다.

만약- 만약 이 게임이 클리어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나나 아스나를 포함한 모든 플레이어의 희망이기도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솔직히 불안해진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스나를 끌어안은 팔에 강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아파, 키리토....왜 그래.....?”

“미....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