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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슬롯, 작은도서관 열람실에서 노트북 없이 적어 본 밤
클래식 슬롯, 작은도서관 열람실에서 노트북 없이 적어 본 밤
밤 열한 시였다. 집에서는 책상에 앉아도 십 분을 못 버틴다. 그래서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나갔는데, 동네 작은도서관 열람실 입구에 붙은 종이가 나를 막았다. 노트북 반입 금지. 이유는 안 적혀 있었다. 그냥 안 된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날 처음 알아본 게 클래식 슬롯이었는데, 하필 그날 노트북이 없었다. 폰 배터리는 마흔두 퍼센트.
열람실은 여섯 자리 정도였다. 나 말고 두 명. 한 분은 신문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코트를 걸치고 졸고 있었다. 천장 형광등이 두 줄이라 좀 눈다. 책 냄새가 났다. 오래된 종이가 내는 냄새는 정확히 뭐라고 하기 어렵다. 그냥 오래된 냄새다.
자리에 앉아서 스탠드를 켰다. 초록색 갓이 달린 놋쇠 스탠드였는데, 켜니까 손등에 그림자가 크게 졌다. 노트를 펴 놓고 폰을 옆에 뒀다. 충전선을 안 가져와서 벽 콘센트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배터리를 아끼려고 화면 밝기를 제일 낮췄다. 그렇게까지 해 놓고 클래식 슬롯, 이렇게 넣고 엔터를 쳤다.
자동완성이 먼저 떴다. 뜻, 후기, 그다음이 추천. 뒤에 붙는 말만 조금씩 달랐다. 눌러 보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자동완성은 대개 비슷한 데로 데려간다.
결과는 예상대로 고만고만했다. 제목이 다 비슷했고, 첫 문단도 비슷했다. 읽는 동안에는 아는 것 같다가 창을 닫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내 집중력 문제인가 싶어서 두 개는 다시 열어 봤다. 두 번째에도 똑같았다. 클래식 슬롯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글이 다 못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나한테는 그렇게 남았다.
왜 찾아봤냐면, 점심때 회사 후배가 클래식 슬롯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는 척을 했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 밤에 혼자 앉아 검색을 한 거다.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모르는 채로 넘긴 게 걸려서다. 사람은 그런 이유로도 한 시간을 쓴다.
카페 쪽도 조금 내려가 봤다. 검색어를 조금 바꿔서 세 번 더 넣어 봤는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거 물어보는 사람마다 답이 다르다"고 쓴 글에 댓글이 세 개 붙어 있었다. 하나는 반말이었고, 하나는 모르겠다는 말이었고, 하나는 작년에 쓴 답이었다. 세 개를 다 읽고 나서 왜 그렇게 짧게 썼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좀 웃겼다. 나는 댓글을 안 달았다. 달 만한 말이 없어서지, 참아서 그런 건 아니다.
「열한 시 사십오 분, 소등 십오 분 전」
열한 시 사십오 분쯤 사서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창문을 하나 열어 놓고 환기 좀 하고 닫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내 노트를 흘낏 보시더니 노트북은 왜 안 가져왔냐고 물으셨다. 안 된다고 붙어 있어서요, 했더니 본인이 붙인 거라고 하셨다. 소리가 나서, 라고. 그 말을 하면서도 창문 걸쇠를 계속 만지작거리셨다.
잠깐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기 자주 오냐고 물으셔서 몇 번 왔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오게 된다고도 하셨다. 사람이 없어서 좋다는 말은 안 하셨다. 나도 안 물었다.
노트에 뭘 적었는지 지금 보면 별거 없다. 열한 시 삼십 분, 창문 하나 열림. 열람실 안에 자판기 없음. 정도다. 열람실에 자판기가 없다는 걸 왜 적어 놨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때는 중요한 것 같았다.
창문 열린 틈으로 밖이 보였다. 도서관 앞 도로에 가로등이 서너 개 서 있고, 그 너머로 첫차 다니는 길이 있었다.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사월인데도 그랬다. 오 분쯤 그렇게 서 있다가 사서 선생님은 나가셨고, 다시 형광등 소리만 남았다.
폰 메모에 유형을 세 줄로 적었다. 네 번째 줄은 적다가 지웠다. 그건 내가 충분히 안 봐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 유형 | 특징 | 추천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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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후기 | 문장이 고르고 조건이 앞쪽에 몰려 있음, 편하게 읽히는데 남는 게 적음 | 처음이라 큰 틀부터 잡고 싶은 사람 |
| 짧은 영상 요약 | 설명 없이 화면만 지나감, 빠르지만 맥락이 잘려 있음 | 눈으로 먼저 확인하고 싶은 사람 |
| 카페 댓글 | 짧고 거칠고 서로 말이 다름, 절반은 걸러야 함 | 정리된 답보다 분위기를 보는 사람 |
손이 시려서 잠깐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사월 밤에 손이 시린 게 이상했다. 히터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표를 적고 나서도 답은 안 났다. 성격상 기준을 하나로 정해 두는 편이 마음이 편한데, 이번에는 그러면 자꾸 되돌아왔다. 시간이 없으면 두 번째 줄부터 훑는 게 낫다. 이십 분 안에 끝난다. 대신 그걸로 마음을 정하면 나중에 한 번 더 보게 된다. 궁금한 게 사람 쪽이면 세 번째 줄까지 가야 한다. 오래 걸리고 짜증도 나는데 남는 건 그쪽이 많았다. 클래식 슬롯을 알아보는 기준을 하나로 정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오래 걸린다는 게, 그날 내가 내린 답이었다. 답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랬다는 쪽에 가깝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열람실 문 옆에 대출 카드가 한 장 꽂혀 있었는데 뒷면에 볼펜으로 뭐라고 적혀 있었다. 흘려 쓴 글씨라 다는 못 읽었다. 앞부분만 겨우 읽었는데 다시 보지 말라는 말 같았다. 누가 뭘 두고 그렇게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괜히 한 번 더 봤다.
소등 십오 분 전 안내가 나왔다. 신문 보시던 분이 신문을 접어서 반납함 위에 올려 두고 나가셨다. 나도 노트를 접고 폰을 껐다. 스탠드 스위치를 내리니까 초록 갓이 바로 어두워졌다. 복도로 나가는데 뒤에서 형광등이 하나씩 꺼지는 소리가 났다. 계단참 자판기에서 물을 뽑았다. 오백 원짜리였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아까 창문으로 들어오던 그 바람이었다. 클래식 슬롯에 대해 안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날 밤에 대해 안 것은 좀 있다. 노트북 반입이 안 되는 도서관이 집보다 낫다는 것, 그리고 검색은 대개 비슷한 데로 데려간다는 것. 폰 배터리는 스물한 퍼센트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