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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고산 날

타이핑 by. 파란

테이블 위에는 과제로 나온 리포트용 자료가 아닌, 형형색색의 카탈로그가 몇 권이나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나와, 소라, 그리고 히나였다.

"으음..."

"음~~~~."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오는 나와 소라의 끙끙거림은 활짝 열린 창문으로 빨려들듯 사라져 갔다. 내 품안에서 히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 얼굴을 올려다본다.

11월로 접으덜즈 바깥 공기도 차가운 데다 오늘은 바람도 강해서 창물을 닫고 싶었지만, 오늘의 청소 당번인 미우가 직접 환기시키는 중이었다.

미우가 돌아올 때까지 열어 두라는 명령이 내려저 있었다.

그러나끙끙거리고 있는 건 추워서가 아니라….

“으음.... 난처하군.”

나는 카탈로그를 노려보며 한 번 더 끙끙댔다.

“삼춘，이고 에쁘다?.”

무릎 위에서 함께 카탈로그를 보고 있던 히나가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를 꼭 닮은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서 묶고 동글동글한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사랑스러운 미소녀…. 아니，꼬마 미소녀.

타카나시 히나. 좋아하는 토끼 인형을 안고 있는 이 세살짜리 는 언뜻 보면 나와는 전혀 닮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래봬도 핏줄이 이어진 조카다.

“오，히나는그게 마음에들었어？’

“응! 딸기 같애서 맛이쓰 꼬 같아?.”

"아니, 그런 이유로 고르는 게 아니라…"

아까부터 테이블 위를 점령하고 있던 건 렌탈 기모노 카탈로그 였다.

어째서 그런 물건을 보며 끙끙대고 있냐면，한마디로 말해 시치고산 때문이다. 게다가 기한은 임박했다.

시치고산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굳이 설명하자면，어린아이의 성장을 축하하며 신사에서 참배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남자애는 세살과 다섯 살，여자애는 세 살과 일곱 살이 되 는 해의 11월 15일에 행해지기 때문에 시치고산이다. 그리고 히나

는 만 세 살. 바로 올해가 첫 시치고산인 것이다.

역시 안 되겠어! 조금도 괜찮은 게 없어！”

탕!! 테이블을 두드리며 몸을 내민 건 또 다른 조카，타카나시 소라였다.

시치고산이잖아! 사진을 찍어 보긴 했지만，역시 빌리는 건 관두고 히나용 기모노를 제대로 맞춰 달라고 하자! 돈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밤색 머리카락에 리본을 머리띠처럼 묶은 소녀가 카탈로그를 두드리며 서슬 퍼렇게 주장했다. 왠지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한줄기가 안테나처럼 삐죽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나무랄데 없는 미소녀다.

소라의 말로는 그 안테나ㅡ아호게*라고 하는 모양이다ㅡ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헤어스타일이라고 했다. 중학생의 감성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 토록 활발한 소녀 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에서는 남자를 불편해 하는 소극적인 아이인데，신기하게도 내 앞에서는 강경했다. 역시 내가 한 집안의 기둥으로서 믿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인 걸까.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끼치긴 했지. 그런 생각에 한숨을 쉬지않을 수가 없는 신참 보호자로서는 걱정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 사마, 커다란 눈동자로 응시하는 소라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얼굴 이 빠개졌다."?어떻게 할 건데，오빠!”

*아호게 : 바보 털. 정수리에서 삐죽 솟아 있는 한 가닥 또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

그런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단을 재촉하는 소라의 발언 에는 일리가 있었다.

우리 집 공주님의 영광스러운 무대를 빌린 물건으로 해결해도 되는 걸까?

검소와 검약은 어른이 없는 우리들의 생활에 있어 소중한 금과 옥이지만, 히나의 시치고산은 뭐니 뭐니 해도 일생에 두 번밖에 없는 영광스러운 무대니까. 좀 야단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약간 분발해도 친벌을 받는 건 아니겠지?’

맞추는 건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무리겠지만，사는 거라면….

“그래! 반?드시! 히나가 입을 기모노는 하늘색이어야 해. 빌리 는 건 좀처럼 그런 색이 없거든! 히나한테 어울리는 기모노를 사 주는 거야!”

잠깐，소라. 지금 흘려버릴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히나한테，하늘색 기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