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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를 맡은 교사는 도립 중학교에서 교감을 정년까지 맡은 후, 이 급조 교육시설에 손을 들고 재취직한 사람이다. 이미 60대 후반이지만 학교 곳곳에 도입된 네트워크 디바이스를 능숙하게 다루며, 행동거지도 이지적이라 아스나는 호감을 품었다.

그런 분인 만큼 아마 거부반응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아스나는 다소 긴장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멋들어진 백발과 흰 수염을 기른 국어 선생님은 큰 찻잔을 한손에 들고 귀를 기 울이더니，이야기가 끝나자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좋다. 음, 자네는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네……，유우키ㅡㅡ콘노 유우키라고 합니다.』

실제로 프로브에서 곧장 대답이 들리자 역시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금세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콘노, 괜찮으면 앞으로도 수업에 나오렴. 오늘부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광차’ 를 할 텐데, 그건 끝까지 들어야 재미가 있거든.’’

『아……, 네! 고맙습니다!』

유우키에 이어 아스나도 감사 인사를 했을 때 예비종이 울렸다. 황급히 다시 한 번 꾸벅 고개를 숙이고 교무실에서 나온 직후, 두 사람은 후우 한숨을 쉬었다.

흘끔 시선을 나누며 웃은 후, 아스나는 젠 걸음으로 교실에 돌아갔다.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 위의 이상한 기계에 대해 급우들이 이것저것 질문공세를 퍼붓기는 했으나，유우키가 입원 중 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실제로 유우키가 말을 하니, 다들 금방 시스템을 이해했는지 잇달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그것이 일단락되었을 때 수업 종이 울리고 국어 선생님이 앞문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주번의 구령에 맞춰 인사를 마친 후ㅡㅡ프로브 안에서도 렌즈가 위잉위잉 오르내렸다ㅡㅡ교단 옆으로 나온 나이 지긋한 선생님은 턱수염을 한 차례 쓰다듬더니, 여느 때와 다를 바 없 는 모습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에~, 그러면 오늘부터 교과서 98페이지, 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광차'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아쿠타가와가 서른 살 때 쓴 작품으로ㅡㅡ."

교사의 해설이 이어지는 동안 아스나는 얇은 태블릿형 단말을 들어 교과서의 해당 페이지를 표시하고 유우키도 볼 수 있 도록 몸 앞으로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 직후 교사가 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태블릿을 떨어뜨릴 뻔했다.

“ㅡㅡ그럼 처음부터 읽어보도록 하지요. 콘노 유우키 양, 부탁해도 될까?"

"네?!”

『아, 넷!!』

아스나와 유우키는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교실 안이 한순간 술렁였다.

"힘들겠니?"

그렇게 묻는 교사에게 아스나가 무언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우키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읽을수 있습니다!』

프로브의 스피커에도 충분한 출력의 앰프가 내장된 듯，그 목소리는 교실 구석구석까지 쉽게 울려 퍼질 정도로 컸다. 아스나는 황급히 일어나 두 손으로 태블릿 단말을 렌즈 앞에 대주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을이며 속삭였다.

“유우키……, 이, 읽을 수 있어?"

『물론이지. 나 이래 봬도 독서광이라구!』

즉답한 후 잠시 뜸을 들이더니, 유우키는 씩씩하게 교과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오다와라와 아타미 사이에 경편 철도 부설 공사가 시작 된 것은……』

태블릿 단말을 든 채, 아스나는 살짝 눈을 감고 억양 풍부하게 문장을 읽는 유우키의 목소리에 의식을 집중했다.

마음속의 스크린에는 아스나의 옆자리에 서서 같은 교복을 입은 유우키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언젠가 반드시 이 광경이 현실로 이루어지리라 아스나는 강하게 확신했다. 의학은 해마다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분명 극히 짧은 미래에 HIV를 근절하는 약품이 개발되어 유우키가 현실세계로 귀환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야말로 정말 손에 손을 맞잡고 학교와 시내를 안내해줘야지. 돌아가는 길에는 패스트 푸드점에 들러서 햄버거를 한손에 들고 잡담을 나눠야지.

아스나는 유우키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쩍 왼손으로 눈초리를 홈쳤다. 유우키는 정감을 다해 지난 세기의 명문을 언제 까지고 읽고 또 읽었으며, 교사도 좀처럼 그것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오후의 교내는 조용했으며, 마치 전교생이 낭독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대로 6교시 수업까지 함께 듣고, 아스나는 약속대로 학교 안을 안내해주었다. 급우들이 열명도 넘게 따라와선 앞을 다투어 유우키에게 말을 걸어준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겨우 두 사람만이 남아 안뜰 벤치에 앉았을 때, 이미 하늘은 오렌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스나……，오늘은 정말 고마워. 정말 즐거웠어……, 나,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갑자기 유우키가 진지한 어조로 말해, 아스나는 반사적으로 밝은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선생님도 매일 와도 좋다고 했잖아. 내일 현대 국어는 3교시니까 지각하면 안 돼! 그보다 말이지……, 여기말고 또 보고 싶은데는 없어? 교장실 말고는 아무데나 다 좋아."

유우키는 후후 웃더니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윽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한 군데, 가봤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어디?"

『그거,학교 밖이라도 돼?』

“어……."

아스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생각에 잠겼지만, 프로브의 배터리는 아직 한동안 버틸 것이며 휴대단말이 네트워크에 접속될 수 있는 곳이라면 이동에 제한은 없을 것이다.

"응, 괜찮아. 안테나만 뜨는곳이라면 어디든!”

『정말?! 그럼 있지……，조금 멀긴 한데……, 요코하마 호도가야 구의 츠키미다이란 곳까지 가줄 수 있을까?』

학교가 있는 니시도쿄 시에서 츄오 선, 야마노테 선, 토요코 선으로 갈아타고, 아스나와 유우키는 요코하마 시의 호도가야 구로 향했다.

아무래도 전철 안에선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외의 노상에서는 주위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스나는 어깨의 쌍방향통신 프로브와 이야기를 나누었 다. 유우키가 입원한 3년 사이에 거리의 풍경도 나름 변했는지,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것에는 모두 근처까지 다가가 해설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인 호시카와 역에서 전철을 내렸을 때는， 이미 로터리 중앙에 선 대형 시계의 바늘이 5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짙은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바뀌어 가는 하늘을 우러러보며，아스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로 근처에 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는 구릉이 펼쳐진 탓인지 싸늘한 공기의 맛도 도쿄와는 매우 다른 것 같았다.

"아름다운곳이구나, 유우키. 하늘이 굉장히 넓어.”

밝은 어조로 말을 걸자, 유우키는 미안한 듯이 대답했다.

『응……, 미안해, 아스나. 내가 떼를 쓰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까지……. 부모님께 안 혼나?』

"괸찮아，괜찮아! 늦는 거야 늘 있는 일인걸.”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사실 아스나가 저녁 식사 제한 시간에 늦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또한 그럴 때는 어머니의 기분을 크게 상하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간 다음에 아무리 꾸지람을 듣더라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유우키가 원한다면 프로브의 배터리가 허용하는 한，아무리 먼 곳이라도 갈 생각이었다.

“잠깐 메일만 한 통 보낼게.”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하곤, 아스나는 휴대단말을 꺼냈다. 프로브와의 접속은 유지한 채 메일 프로그램을 기동해, 자택 홈 컴퓨터 앞으로 귀가가 늦어질 거라는 메시지를 날렸다. 아마 어머니는 귀가 시간을 무시한 것을 꾸짖는 메일을 보내고 이어서 직접 전화를 할 것이 분명하지만，단말을 계속 네트워크에 접속해놓으면 부재중 수신 서비스로 전송될 것이다.

"이제 됐어. 자，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