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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바보 천치야.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아스나의 눈앞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유우키가 보여준 눈물의 의미ㅡㅡ그것은…….

"하지만 현재 에이즈라는 병은,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아닙니다.”

멍하니 서 있던 아스나의 등 뒤에서 어디까지나 조용한 쿠라하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령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해도, 조기 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면 10년,2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에이즈의 발병을 억제할 수도 있지요. 약을 꾸준히 먹고,건강 관리를 철저히 해, 감염 이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보 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삐걱. 조그만 소리가 쿠라하시 의사가 콘솔 앞의 조그만 의자에 앉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신생아가 HIV에 감염되었을 때의 5년 생존율 이 성인에 비해 매우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우키 군의 어머님은 가족 전원의 감염이 판명된 후 다 함께 죽을 생각도 하셨다더군요. 하지만 어머님은 어릴 적부터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신앙의 힘과, 물론 아버님의 힘도 있어서 첫 위기를 넘어서고, 병과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 거지요."

"끝까지……, 싸운다……."

"예. 유우키 군은 갓 태어난 순간부터 살기 위해 바이러스와 싸웠습니다. 가장 위험한 시기를 벗어난 후로는, 몸은 작아도 씩씩하게 성장해 초등학교에도 들어갔습니다. ㅡㅡ많은 약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건 어린아이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역전사 효소저해제는 부작용도 많고요. 그래도 유우키 군은 언젠가 병이 나을 것이라 믿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학교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성적도 언제나 상위권이었다더군요. 친구도 많이 생겨서, 저도 당시의 동영상을 몇 편 봤는데, 언제나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간극. 의사가 살짝 한숨을 쉬는 것을 아스나는 놓치 지 않았다.

“ㅡㅡ유우키 군이 보균자라는 사실은 학교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그게 일반적입니다. 학교와 기업의 건강진단에선 혈액의 HIV 검사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 만……,그녀가 4학년으로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경로는 알 수 없지만, 유우키 군이 보균자라는 것이 같은 학년의 보호자 일부에게 전해지고 말았던 거예요. 소문은 금세 퍼졌습니다. ……HIV감염을 이유로 하는 그 어떤 차별도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사회는 선한 이념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까요…….그녀의 통학에 반대하는 민원이며, 전화나 편지를 통한 유형무형의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매우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가족은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으며, 유우키군도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

아스나는 이제 맞장구도 칠 수 없었다. 그저 등을 굳힌 채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유우키 군은 눈물 한 번 보이지 않고 새로운 학교에도 매일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잔혹하게도 그 무렵부터 면역력 저하의 지표가 되는 <CD4>라는 임파구의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에이즈가 발병했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계기가 된 것이 지난 학교에서 유우키 군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보호자나 교사들의 언행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조용하고 담담했다. 그러 나 아주 살짝 묻어나온 날카로운 숨소리만이 그의 심정을 드러내주었다.

“ㅡㅡ면역력이 떨어지니, 보통은 쉽게 격퇴할 수 있는 바이 러스나 세균에도 감염되고 압니다. 이를《기회감염》이라고 합니다. 유우키 군도 폐포자층 폐렴이라는 감염증을 일으켰습니다. 그게 3년하고도 반년 전이었지요. 병원에서도 유우키 군은 언제나 명랑했습니다. 언제나 방글방글 미소를 지었고, 절대 병에 지지 않겠다고 늘 말했습니다. 힘든 검사에도 우는 소리 한 번 하지 않고.하지만……."

말을 끊은 쿠라하시 의사가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병원 내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 자신의 체내에, 온갖 곳에 존재합니다. 한번 에이즈가 발병하면, 그 후로는 기회감염에 임시변통으로 대증요법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폐렴에 이어 유우키 군은 식도 칸디다증에도 감염됐습니다. ㅡㅡ마침 그 무렵이, 세상에서는 그 너브 기어 사건 때문에 시끄러을 때였습니다. 풀 다이브 기술의 봉인론까지 떠오르는 가운데,나라와 일부 메이커에 의해 연구개발이 이어졌던 의료용 너브기어……, 즉 메디큐보이드의 테스트 1호기가 완성되어 임상시험을 위해 이 병원에 반입되었지요. 하지만 테스트를 하려 해도 모델이 된 것이 너브기어인 데다, 몇 배의 밀도로 담긴 전자 펄스가 장기적으로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추측할 수 없었어요. 위험을 알고도 실험에 협조해주겠다는 환자는 좀처럼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걸 안 저는……,유우키 군과 가족에게 어떤 제안을 했지요……."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며, 아스나는 침대 위의 유우키와 그녀의 머리를 거의 대부분 집어삼킨 하얀 입방체를 가만히 바라 보았다.

머릿속이 마비된 것처럼 싸늘했다. 혼란에 빠진 의식 한구석에서, 눈앞에 떨어진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메디큐보이드는 개발된 시기를 봤을 때 어뮤스피어가 아니 라 너브기어의 발전형일 것이다. 아스나는 이미 어뮤스피어라는 기계에 완전히 적응했지만, 그래도 이따금 이제는 결에 없는 너브기어가 자아내던 가상세계의 깨끗함을 그립게 떠올릴 때가 있다. SAO 사건의 반성을 살려 어뮤스피어는 3중 4중의 안전장치를 설치했지만,그 때문에 생성된 세계의 퀄리티는 초대 기종보다 살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너브기어의 몇 배나 되는 펄스 발생소지를 장비하고, 온몸의 감각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으며, 여기에 어뮤스피어를 훨씬 웃도는 처리속도의 CPU를 가졌다는 메디큐보이드ㅡㅡ. 그렇 다면 알브헤임에서 유우키가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은 머신의 성능에서 유래된 것일까?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스나는 금세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우키의 날카로운 검기는 기계의 스펙 수준을 훨씬 넘어선 영역에 있었다. 전투 센스만 보더라도, 아마 키리토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 일것이 분명하다.

아스나가 아는 한 키리토의 실력은, 꼬박 2년에 걸친 SAO내의 포로 생활에서, 누구보다도 오랜 기간 최전선에서 싸웠 던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우키는 메디큐보이드가 자아내는 세계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 온 것일 까ㅡㅡ.

"보시다시피 메디큐보이드 테스트 기체는 매우 정밀하고 섬세한기계입니다.”

한동안 침묵하던 쿠라하시 의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기간 안정된 테스트를 하기 위해 무균실에 설치되었지요. 다시 말해,공기 속의 먼지 외에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배제된 환경에서 말입니다. 따라서 만약 피시험자가 되어 무균실에 들어가면,기회감염의 위험성도 대폭 줄어들 것입니다. 저는 유우키 군과 가족 분들께 그렇게 제안했습니다.”

"……."

“지금도 그것이 유우키 군에게 잘된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에이즈 치료에서는 <QOL>ㅡㅡ퀄리티 오브 라이프(Quallity of life)가 더 중시됩니다. 삶의 질이란 뜻이지요. 치료 중 생활의 질을 얼마나 높이고 충실하게 하는가 하는 관점입니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피시험자의 QOL은 결코 충족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균실에서 나올 수도,남들과 직접 접촉할 수도 없으니까요. 저의 제안에 부모님도 유우키 군도 매우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버추얼 월드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유우키 군의 등을 밀어준 것이 겠지요……, 그녀는 피시험자가 되기로 승낙하고 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 후로 유우키 군은 계속 메디큐보이드 안에서 살고있습니다."

"계속……, 이라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유우키 군이 현실세계에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이제는 이미 돌아올 수 없지요. 터미널 케어에서는 고통의 완화를 위해 모르핀 같은 약물을 쓰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그것을 메디큐보이드의 감각 차단 기능이 대신해주니까요……,하루에 몇 시간씩 치러지는 데이터 수집 실험 외에는 언제나 수많은 버추얼 월드를 여행하고 있습니 다. 제 면담도 물론 그쪽에서 하고요.”

"다시 말해……,24시간 다이브 상태란 말인가요……? 그걸 얼마나……."

“3년입니다."

의사의 간결한 대답에 아스나는 말을 잃었다.

이제까지 세계의 어뮤스피어 유저들 가운데 가장 긴 다이브 경험을 가진 것은 자신을 포함한 구 SAO 플레이어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눈앞의 침대에 누운 야윈 소녀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가상세계의 여행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유우키의 실력을 이루는 근간이었다.

ㅡㅡ너는 완전히 이쪽 세계의 주민이구나. 키리토는 유우키 에게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분명 짧은 전투를 통해 유우키에게서 자신과 가까운 것을 느꼈으리라.

아스나는 마음속에서 경건함과도 같은 감정이 퍼지는 것을 의식했다. 자신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 선 검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검을 바치는 기분으로, 눈을 감고 살짝 시선을 떨어뜨렸다.

한동안 침묵한 후, 아스나는 돌아서서 쿠라하시 의사를 보았 다.

“고맙습니다,유우키와 만나게 해 주셔서. ㅡㅡ유우키는 여기 있으면 괜찮은 거죠? 언제까지고, 그쪽 세상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아스나의 질문에 의사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콘솔 앞의 의자에 앉은 채 두 손을 무릎 위에서 깍지 끼고 조용한 눈빛으로 가만히 아스나를 보았다.

“ㅡㅡ설령 무균실에 들어갔다 해도, 원래 몸에 내재된 세균 이나 바이러스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면역계의 기능저하에 따라 그런 것들은 확실하게 세력을 늘려나가고 있지요. 유우키군은 현재 사이트메가로 바이러스 감염중과 비정형항산균증을 일으켰으며, 시력도 대부분 잃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HIV 그 자체가 원인이 되는 뇌증이 진행되고 있어요. 아마 이제는 자력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

HIV 감염으로부터 15년……, ADIS 발병으로부터 큰년 반. 유우키 군의 병상은 말기입니다. 그녀도 또렷한 의식으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어요. 유우키 군이 아스나 양에게서 모습을 감추려 했던 이유도 이젠 아시겠지요.”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아스나는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을 밀쳐낼 수는 없었다.

유우키는 아스나와 가까워지는 것을 언제나 주저했다. 그것 은 정말로 아스나를 걱정한 행동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작별에 아스나가 괴로워하지 않도록, 유우키는 그것만을 생각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니다. 시우네를 비롯한 슬리핑 나이츠 맴버들도 그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언제나 어딘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여야만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아스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유우키를 괴롭혔다. 흑철궁에서 로그아웃하기 전에 유우키가 보였던 눈물을, 아스나는 날카로운 아픔과 함께 떠올렸다.

그때 아스나는 어떤 사실에 생각이 미쳐 흠칫 고개를 들어 의사를 보았다.

"저어……, 선생님. 혹시 유우키에게는 언니가 있지 않았나

요……?"

하고 물어보자 의사는 한순간 놀란 듯이 눈썹을 추켜세우더 니,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ㅡㅡ유우키 군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드리지 않았습 니다만……, 예,맞습니다. 유우키 군은 쌍둥이였습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제왕절개도, 사실 그 때문에 했던 것입니다.”

기억을 더듬듯이 시선을 살짝 들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의 이름은 아이코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병원에 입원했지요. 별로 닮지 않은 쌍둥이였어요……, 씩씩하고 활발한 유우키 군을 언제나 조용히 웃으며 지켜보았답니다. 그러고 보니……,얼굴도 분위기도 어딘가 아스나 양을 닮았던 것 같군요……,"

왜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거냐고 가슴속으로 물으며,아스나는 의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음의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의사는 다시 한 번 살짝 끄덕였다.

"유우키 군의 부모님은 2년 전에……,언니는 1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 세계에서, 아스나는 사람의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자신도 죽음의 늪 바로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들여다본 경험이 몇 번이나 있다. 그 결과, 이해했다ㅡㅡ그렇 게 생각했다. 때가 오면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겨우 며칠 교류한 것에 불과한 유우키라는 소 녀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아스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눈 앞의 두꺼운 유리창에 몸을 기댔다. 현실이라는 말의 의미가 애매하게 녹아 흘러버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차가운 평면에 짓눌렀다.

자신은 이미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