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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입니다만,말하자면 어뮤스피어의 출력을 강화하고 펄스 발생 소자를 몇 배의 밀도로 늘리고 처리속도를 높인, 그리고 뇌에서 척추 전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침대와 일체화한 것이지요. 외견은 단순한 하얀 상자처럼 보이지 만……. 이게 실용화되어 보다 많은 병원에 배치된다면 의료는 극적으로 바뀔 겁니다. 마취는 거의 모든 수술에서 필요하지 않을 테고, 또한 현재《록트 인(Locked-in) 상태》진단을 받은 환자분들과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지 몰라요.”

"록트 인……?"

"감금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 뇌의 사고를 관장하는 부분은 정상인데, 몸을 제어하는 부분에 장애가 있어서 의사를 표현 하지 못하는 상태지요. 메디큐보이드는 뇌의 깊은 곳까지 링크할 수 있기 때문에, 설령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VR 월드 를 이용해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까지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다시 말해, VR 게임을 즐기기 위해 개발된 어뮤스피어보다도 훨씬 진짜 의미의……,말하자면 <꿈의 기 계>인 거네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별생각 없이 아스나는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그야말로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쿠라하시 의사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짓더니, 안경을 벗고 깊고 길게 탄식했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의사는 어딘가 슬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예, 그야말로 꿈의 기계지요. 하지만……,기계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메디큐보이드가 가장 기대를 받은 분야 중 하나……,그것은《터미널케어》입니다."

"터미널 케어……."

귀에 익지 않은 영어단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자, 쿠라하시는 살짝 낮춘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말로는……,《종말기 의료》라고합니다.”

그 말에 내재된 예감에, 아스나는 냉수를 뒤집어쓴 듯한 기분을 맛봤다. 입을 꽉 다물고 두 눈을 크게 뜨는 아스나에게, 안경을 고쳐 쓴 쿠라하시 의사는 어딘가 달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아스나 양은 나중에 이쯤에서 그만 들었어야 했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선택을 내리더라도 아무도 아스나 양을 책망하지 않을 겁니다. 유우키 군도, 그녀의 동료들도,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하니까요.”

하지만 아스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떤 현실과 만나게 되더 라도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리라 생각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는 확신도 있었다. 아스나는 고개를 들고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에요……,계속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저는 그러기 위해 여기온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쿠라하시 의사는 다시 미소를 짓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키 군에게는,아스나 양이 바란다면 모든 것을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유우키 군의 병실은 중앙병동 최상층입니다. 조금 머니,걸으면서 이야기하지요.”

라운지를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의사의 뒤를 따라 걸으며,아스나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종말기.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단순할 정도로 명백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그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렇게 직접적인 단어를 쓸 리가 없다고 부정하는 마음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부터 밝혀질 진실은 모두 정면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유우키는 아스나가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에 아스나가 발을 들이도록 허용했다.

중앙동 로비에 설치된 세 기의 엘리베이터 중 가장 오른쪽 문에는 <직원 전용>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곁의 패널에 의사가 목에서 벗은 카드를 대자, 금세 가벼운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 렸다.

하얀빛이 넘쳐나는 상자에 두 사람이 올라타자,작동음도 가속도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상승을 시작했다.

"<잠복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갑자기 쿠라하시 의사가 묻자, 아스나는 눈을 깜빡이며 기억 속의 목차를 뒤졌다.

"네……, 보건 시간에 배웠어요. 바이러스의……, 감염에 관한 말 아니었나요?"

"그렇습니다. 인간이 모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을까 의심할 때는 주로 혈액을 검사하지요. 검사 방법은 혈액 속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조사히는 <항원항체검사>, 그리고 보다 정밀한, 바이러스 자체의 DNA, RNA를 증폭해서 조사하는 <NAT 검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NAT 검사를 써도 감염 직후로부터 열흘 전후에는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가 없어요. 그 기간을 <잠복기>라고 부릅니다.”

쿠라하시 의사는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그직후어렴풋한 감속이 느껴지며 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최상층인 12층은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히 제한하는지, 내리자마자 정면에 거창한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의사가 다시 게이트 옆의 센서에 카드를 대고, 또한 손바닥을 패널에 대서 바이오매트릭스 인증을 거치자, 조그만 전자음이 들리며 금속 차단기가 열렸다. 쿠라하시의 손짓에 아스나는 재빨리 게이트를 지났다.

아래층과는 달리, 이 층에는 창문이 없는 것 같았다. 매끈한 하얀 패널로 뒤덮인 통로가 쪽 뻗어나가다 전방에서 좌우로 갈라진다.

다시 아스나의 앞에 서서 걷기 시작한 쿠라하시 의사는 통로의 왼쪽으로 꺾었다. 부드러운 흰빛에 가득 찬 무기질적인 길이 한없이 이어진다. 백의를 입은 간호사가 몇 명 지나다닐 뿐 바깥세상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ㅡㅡ바로 그 <잠복기>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의사가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것은 헌혈로 수집한 수혈용 혈액정제의 오염이지요. 물론 확률은 낮습니다. 한 번 수혈을 받아 모종의 바이러스에 감염 될 확률은 수십만 분의 1밖에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 숫자를 0으로 만드는 것은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해요.”

어렴풋한 한숨. 여기에 포함된 미미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유우키 군은 2011년 5월생입니다. 난산이어서 제왕절개를 했지요. 그때……,의료 차트로는 무슨 일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모종의 사고로 대량의 출혈이 있었고, 긴급 수혈이 실시 되었습니다. 그때 쓰인 혈액은 유감스럽게도 바이러스에 감염 된 것이었습니다.”

"……!"

아스나는 숨을 멈추었다. 한순간 흘끔 시선을 돌린 의사는 금세 눈을 내리깔더니 말을 이었다.

"이젠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유우키 군이 감염된 건 출산 때 아니면 그 직후였겠지요. 아버님은 그로부터 1개월 이내였을 테고요. 바이러스 감염이 판명된 것은 9월,어머님이 받은 수혈 후의 확인 혈액검사 때였습니다. 그 시점에서는……, 이미 가족 전원이……."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쿠라하시는 발을 멈추었다.

통로 오른쪽 벽에 슬라이드 도어가 있었으며, 벽에는 금속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에 박힌 플레이트에는【제1 특수 계측기기실】이라는 엄중한 문자가 적혀 있었다.

의사는 카드를 들더니 패널 아래쪽의 슬릿에 통과시켰다. 전자음이 들리고 푸슉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슴속을 꽉 조여대는 아픔을 느끼며, 아스나는 쿠라하시 의사의 뒤를 따라 문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안쪽이 깊고 묘하게 가늘고 긴 방이었다.

정면 벽에는 지금 지나온 것과 똑같이 생긴 문이, 문 오른쪽 에는 몇 개의 모니터를 갖춘 콘솔이 보였다. 문 왼쪽은 커다란 창문이었는데, 유리는 검게 물들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이 유리 너머는 에어 컨트롤이 된 무균실이라 들어갈 수 없 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더니, 의사는 검은 창에 다가가 아래쪽의 패널을 조작했다. 어렴풋한 진동음과 함께 창문의 색이 갑자기 흐려 지고, 금세 투명한 유리로 변해 반대편을 비춰주었다.

조그만 방이었다. 아니, 면적 자체는 꽤 넓다. 언뜻 보고 작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방안을 다양한 기계가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것, 낮은 것, 심플한 사각형, 복잡한 형태를 한 것이 섞여 있어서 방 한가운데에 있는 젤 베드를 알아보기까지는 조금시간이 걸렸다.

아스나는 유리에 한껏 얼굴을 가까이 대고 가만히 침대를 응시했다.

푸른 젤에 반쯤 파묻힌 것처럼 조그만 몸이 누워 있었다. 가슴께까지 하얀 시트가 덮여 있고, 그 위로 엿보이는 맨살 어깨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야위었다. 목덜미와 두 팔에는 수많은 튜브가 이어져 주위의 기계류로 뼏어나갔다.

침대에 누운 사람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머리 대부분을 집어삼킨 것처럼, 침대와 하나가 된 직방체가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거의 색깔이 없는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뿐이었다. 직방체의 이쪽 측면에는 모니터 패널이 박혀 있었는데, 다양한 색의 표시가 바쁘게 오르내렸다. 모니터 위에 간소한 로고로【Medicuboid】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유우키……?"

아스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침내 여기에ㅡㅡ현실의 유우키에게 이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몇 미터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두꺼운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의사에게 등을 돌린 채, 아스나는 말을 쥐어짜내듯이 물었 다.

“선생님……,유우키의 병은, 뭔가요……?"

대답은 짧았지만 한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ADIS입니다.”

ㅡㅡㅡㅡㅡ9ㅡㅡㅡㅡㅡ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이 커다란 병원을 본 순간부터 생각했다. 유우키는 모종의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역시 의사의 입으로 구체적인 병명을 듣자 숨이 막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스나는 침대에 누운 유우키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며 온몸을 굳힌 채 얼어붙었다.

이것이 정말 현실일까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어떤 순간에도 씩씩하던 유우키가, 무수한 기계의 틈바구니에 파묻힌 듯이 드러누운 광경을 사실로 인식하기를 이성도 감정도 거부하고 있었다.

ㅡㅡ나는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