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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큐보이드>를 쓰는 분일 텐 데……"

"환자 분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그때 카운터 안쪽에 있던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고개를 들더니 가만히 아스나의 얼굴을 보았다. 이어서 아스나를 상대하던 간호사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젊은 간호사는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더니, 다시 아스나를 쳐다보며 조금 전과는 살짝 달라진 어조로 말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어, 유우키 아스나라고 합니다.”

대답하면서 신청용지를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간호사는 용지를 받아보더니 안쪽에 있던 동료에게 건네주었다.

"신분증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어, 네.”

황급히 코트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뽑아 제시했다. 간호사는 학생증의 사진과 아스나의 얼굴을 자세히 비교한 후,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옆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내선으로 어딘가에 연락을 했는지, 두세 마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후 아스나를 다시 보았다.

"제2내과 쿠라하시 선생님이 나오실 거예요. 정면 엘리베이터로 4층에 올라가신 다음 오른쪽으로 쭉 가셔서, 접수대에 이걸 주세요.”

그녀가 내민 트레이에서 학생증과 은색 패스카드를 집어들며 아스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4충 접수대 앞 벤치에서 다시 10분 정도 기다린 후, 아스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하얀 가운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군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이상한 사과를 하며 고개를 꾸벅인 것은 몸집이 작고 살짝 통통한 남자 의사였다. 아마 30대 초반 정도일 것이다. 이마가 넓고 머리카락을 정확히 7대 3으로 가르마를 탔으며, 테가 굵은 안경을 꼈다.

아스나는 황급히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아니에요. 저야말로갑자기 실례를해서……, 얼마든지 기다려도 되는 걸요.”

"아닙니다. 오늘은 오후에 비번이라 마침 다행이었지요. 음, 유우키 아스나 양이라고 했나요?"

약간 늘어진 눈에 생글생글 웃음을 지으며, 남자 의사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저는 쿠라하시라고 합니다. 콘노 양의 주치의지요. 잘 와주었어요.”

"콘노……, 양?"

"네，풀 네임은 콘노 유우키라고 합니다. '유우키'는 한자로는 목면에 계절 계 자를 쓰지요. 저는 '유우키 군' 이라고 부르지만……，그녀는 요즘 매일 아스나 양의 이야기만 했답니다. 아, 죄송합니다. 유우키 군이 언제나 그렇게 부 르는바람에."

"아니에요, 그냥 아스나라고 불러주세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쿠라하시 의사도 멋쩍게 웃더니 오른손으로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서서 이야기하기도 뭣하니 위층 라운지로 가시지요.”

안내를 받아 간 널찍한 대합실 안쪽의 자리에 아스나와 쿠라하시는 마주 앉았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병원의 넓은 부지와 주위의 녹음을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거의 없었으며, 공조 설비가 어렴풋한 작동음을 내며 공기에 진동을 주고 있었다.

아스나는 마음속에 넘쳐나는 온갖 의문을 무엇부터 꺼내야 좋을지 망설였다. 그러나 쿠라하시 의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아스나 양은 유우키 군과 VR 월드에서 알게 됐다지요? 그녀가 이 병원에 대해 이야기했나요?"

“어’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호오, 그런데 용케도 이곳을 알아내셨군요. 다른 게 아니라 유우키 군이 어쩌면 아스나 양이 면회를 올지도 모르니 접수대에 그렇게 전해달라고 하기에, 병원에 대해 말했나 싶어 의아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이곳을 알 수는 없을거라고 저는 그랬는데, 조금 전 접수대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정말 놀랐지요.”

“저어……, 유우키가 선생님께 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요……?"

이번에는 아스나가 묻자, 쿠라하시는 두세 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최근 며칠 동안은 저와 면담을 할 때마다 아스나양 이야기만 하던걸요. 다만 유우키 군은 아스나 양의 이야기를 한 다음에는 꼭 울음을 터뜨려서 말입니다. 자기 일로는 절대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 아이인데도.”

"네……? 왜, 왜죠……?"

"더 친해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 마음은……，이해가 되지만……."

그때 쿠라하시 의사가 처음으로 살짝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 아스나는 깊이 심호흡을 한 다음, 마음을 굳게 먹고 물었다.

"유우키도, 그녀의 동료들도, VR 월드에서 헤어지기 전에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 왜죠? 왜 <만날 수 없다>는 건가요?"

메모에서 병원의 이름을 본 순간부터 조금씩 부풀어올랐던 한 가지 불안을 열심히 억누르며 아스나가 몸을 내밀자, 쿠라하시 의사는 한동안 말없이 테이블 위에 놓은 두 손으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었으나, 마침내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면, 우선 <메디큐보이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아스나 양은 물론 어뮤스피어의 유저겠지요?"

"아……，네, 맞아요.”

쿠라하시 의사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을 들더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아스나 양에게 이런 말을 드리기는 뭣하지만, 저는 풀 다이 브 기술이 애초에 오락 용도로 개발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네……？"

“그 테크놀로지는 정부에서 확실하게 투자해 처음부터 의료목적으로 연구했어야만 해요. 그랬더라면 현재의 상황이 지금 보다 1년, 아니, 2년은 더 발전했을 테니까요.”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당황하는 아스나에게, 의사는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뮤스피어가 제공하는 환경이 얼마나 의료현장에 유용하게 쓰일지를. 이를테면 시각이나 청각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 기계는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선천적으로 뇌에 기능장애가 있을 때는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겠지만，안구와 시신경에 이상이 있어도 어뮤스피어는 뇌에 직접 영상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청각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빛과 소리를 전혀 모르고 자란 사람들도, 이제는 그 기계를 쓰면 진짜 풍경이란 것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어조로 설명하는 쿠라하시 의사의 말에 아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뮤스피어가 그런 분야에 널리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 되었다. 언젠가 헤드기어가 더욱 작아지고 전용 렌즈와 맞물린다면, 시각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유용한 것은 신호전달기능만이 아닙니다. 어뮤스피어에는 체감각 차단기능도 있으니까요.”

의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덜미 부근을 두드렸다.

"여기에 전자 펄스를 보내 일시적으로 신경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전신마취와 똑같은 효과가 있지요. 이를테면 수술 때 어뮤스피어를 사용하면, 조금이라고는 해도 사고의 위험이 있는 마취약의 사용을 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느샌가 의사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간 아스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전문가 앞이라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작은 목소리로 의문을 제기해보았다.

“……저기, 그건 무리가 아닐까요? 어뮤스피어로 인터럽트 할 수 있는 감각 레벨은 아주 낮게 한정되어 있는 걸요. 몸에 메스를 대는 엄청난 아픔을 없애는 건 어뮤스피어라 해도, 심지어 초대 기종ㅡㅡ너브 기어라 해도 불가능할 거예요……. 설령 연수에서 캔슬한다 해도, 몸의 신경은 살아 있으니 척추반사는 남지 않나요……?"

“그……그렇습니다.”

쿠라하시 의사는 아스나의 말에 놀란 듯이 한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금세 득의양양하게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게다가 어뮤스피어는 전자 펄스의 출력도 약하고, CPU도 절전 타입이라 처리속도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요. VR 세계에 풀 다이브하는 정도라면 그래도 상관없지만, 렌즈와 조합해 실시간으로 현실 환경과 동기화하는, 다시 말 해 <AR(증강현실)>을 실현하려면 스펙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현재 나라에서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 세계 첫 의료용 풀 다이브 기기ㅡㅡ(메디큐보이>입니다.”

"메디큐……보이드.”

아마도 의료(medical)와 입방체(cuboid)를 조합한 것으로 보이는 낯선 단어를, 아스나는 살짝 입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의사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직은 코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