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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아스나의 말에 겨우 유우키도 생긋 미소를 보였다. 여섯 명이 비석 앞에 서자, 쥰은 <스크린샷 촬영 크리스탈> 팝업 윈도우를 조작해 타이머를 설정하고 손을 떼었다. 크리스탈은 그대로 공중에 정지했고,위쪽으로 카운트다운 표시가 빛났다.

쥰이 뛰어와 유우키와 텟치 사이에 끼어들고,모두 크게 웃음을 지은 순간, 찰칵 소리가 나며 크리스탈이 빛났다.

“오케이!”

쥰이 다시 뛰어가자, 아스나와 유우키는 다시 한 번 돌아서서<검사의 비>를올려다보았다.

"해냈구나,유우키.”

아스나는 손을 떼고 유우키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유우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랜 시간 동안 일곱 명의 이름을 가만히 바라보더니,이윽고 조용한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웅……,나, 마침내 해냈어, 언니.”

"후후후.”

그 말에 아스나는 결국 웃음을 흘렸다.

“유우키, 또 그랬어.”

“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유우키는 아스나를 쳐다보았 다.

"날 언니라고 그랬잖아. 보스방에서도 그러더니~. 아니, 난 기쁘지만………ㅡㅡ?!”

별 생각 없이 하던 말을 아스나는 중간에 집어삼키고 말았다.

유우키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커다란 자수정색 눈동자에서 점점 투명한 물방울이 솟아나더니, 뺨을 타고 잇달아 흘러내렸다.

"유……유우키……?!”

숨을 들이마시며 손을 뻗으려던 아스나에게서, 유우키는 두 세 걸음 물러났다. 입술이 움직이며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 왔다.

“아스나……, 나, 난………."

갑자기 유우키는 고개를 숙이더니, 넘쳐나는 눈물을 북북 닦고는 왼손을 휘둘렀다. 그렇게 나타난 원도우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금세 그 조그만 몸을 하얀 빛의 기둥이 에워 싸고ㅡㅡ.

그것을 마지막으로 불패의 초검사 <절검> 유우키는 아인크라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ㅡㅡㅡㅡㅡ8ㅡㅡㅡㅡㅡ

아스나는 손 안의 종이쪽지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손으로 적어놓은 문자열과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건축물의 벽면에 표시된 명칭이 동일한지를 확인했다.

카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츠즈키 구. 녹음이 짙은 언덕 틈에 에워싸인 것처럼 세워진 건물이다. 높이에 비해 양쪽 윙이 넓게 펼쳐진 설계나, 주위의 구릉이 보여주는 넉넉한 자태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이곳이 수도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아스나의 집이 있는 세타가야 구에서는 토큐 선을 타고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건물은 아직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으며, 겨을철의 낮은 햇빛을 받아 갈색 타일이 붙은 벽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잠들었던 곳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스나는 메모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여기있니,유우키……?”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나고 싶은 반면, 이곳에 그 소녀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살짝 망설인 후, 아스나는 교복 위에 걸친 코트 깃을 여미며 정면 출입구를 향해 젠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절검》유우키가 아인크라드에서 사라진 지 이미 사흘이 지났다.

마지막 순간, 검사의 비 앞에서 그녀가 보여준 눈물은 아직 아스나의 눈꺼풀에 새겨져 있다. 도저히 이대로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다시 한 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스나가 보낸 메시지는 모조리 <송신 상대가 로그인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자동 답장이 돌아왔으며, 그 후 메시지를 확인한 기척도 없었다. 슬리핑 나이츠 멤버들이라면 유우키가 있는 곳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틀 전 저녁에 그들의 본거지인 롬바르의 여관에서 혼자 아스나를 맞이한 시우네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살짝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도 그 후로 유우키와 연락이 되지 않아요. ALO만이 아니라 풀 다이브 자체를 하는 것 같지 않았고, 현실세계의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어요. 게다가……."

시우네는 여기서 말을 끊더니, 어딘가 마음을 쓰는 듯한 시 선으로아스나를 보았다.

"아스나 씨. 아마 유우키는 재회를 바라지 않을 거예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해."

아스나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몇 초가 지난 후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왜……,어째서? 아니……,어쩐지 유우키나 다른 사람들이 나와 필요 이상으로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어. 내가 무언가 폐를 끼쳤다면 이젠 따라다니지 않을게.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말은 수긍할 수가 없어.”

"폐라뇨……."

언제나 조용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던 시우네가 웬일로 표정을 일그러뜨리고는 거칠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당신과 만난 것을 정말로 기쁘게 생각해요.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그렇게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아스나 씨 덕분이에요. 보스 공락을 도와주신 것, 그리고 길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해준 건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정도예요. 유우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테고요. 하지만……,제발, 부탁이니, 이젠 우리를 잊어주세요.”

말을 끊고 시우네는 왼손을 휘둘러 원도우를 조작했다. 아스나의 앞에 조그만 트레이드 윈도우가 나타났다.

“예정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슬리핑 나이츠는 이제 해산할까 해요. 아스나 씨에게 주기로 했던 사례도 지금 청산하고 싶어요. 요전에 보스가 드롭한 것과 저희가 소지한 모든 아이템을……"

“피……필요없어. 안받을거야.”

아스나는 손가락을 내리치듯이 윈도우를 캔슬하고 시우네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정말로 이제 작별인 거야?……,유우키도 시우네도,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해. 길드는 해산해도 친구가 되어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던 거야……?"

이제까지의 아스나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았을 말이었다. 하지만 슬리핑 나이츠 멤버들과 행동을 함께 한 겨우 며칠 사이에, 아스나는 조금씩 자신이 변해갔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들과 헤어지기 싫었다. 하지만 시우네는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

다.

"미안해요……,미안해요. 하지만 이래야만 해요. 여기서 작별하는 편이……. 미안해요,아스나.”

그리고 그녀도 마치 도망치듯이 원도우를 열어 로그아웃 하고 말았다.

유우키만이 아니라 시우네와 쥰, 노리 같은 다른 멤버들도 그 후로 ALO에 로그인하지 않았다.

겨우 며칠 동안 함께 지냈을 뿐이다. 그 정도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아스나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리핑 나이츠 맴버들은 아스나의 마음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갔다. 이대로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이미 3학기가 시작됐지만, 오랜만에 현실세계에서 카즈토나 리카(리즈), 케이코(시리카)와 만나도 아스나의 마음은 어딘가 침울했다. 정신이 들고 보면 눈꺼풀 안쪽에서, 고막 안쪽에서 유우키의 웃음이 되살아났다. 유우키는 아스니를 '언니’ 라고 불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유우키는 눈물을 흘렸다. 그 이유를 어떻게든 알고 싶었다.

그리고 어제 점심시간. 아스나는 카즈토의 메일을 받았다.

【옥상에서 기다릴게.】

싸늘한 북풍이 스치고 지나가는 콘크리트 교사 옥상에는 다른 학생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카즈토는 공기 순환용 파이프에 기대 아스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세계의 그는 SAO에서 풀려난 지 이미 1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다지 체중이 늘지 않았다. 여동생인 스구하(리파)가 매일 든든히 먹이고 있을 테니 영양 면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섭취한 칼로리를 모조리 조깅이며 헬스로 소비하는 것일까. 어쩌면 가상세계에서 가혹한 전투를 겪은 탓에 육체의 에너지까지도 소모하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블레이저 앞단추를 풀고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긴 앞머리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 있는 그 모습은, 차림새는 다를 지언정 구 아인크라드 시절의 그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아스나는 빨려들어 가듯이 그에게 다가서고, 고개를 든 카즈토의 어깨에 살짝 이마를 부딪쳤다.

가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고 싶었으나, 아스나도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치밀어오를 것 같은 오열을 열심히 참고 있으려니, 카즈토의 손이 부드럽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동시 에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꼭 <절검>을만나고싶어?"

그 한마디는 아스나의 바람을 모조리 집약한 것이었다. 그렇다. 그저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왜냐하면 분명 유우키도 그것을 바라리라고 아스나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자 카즈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젠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 그랬다지? 그래도 만나 고싶어?"

그에게는 제27플로어 보스 공략전의 전말과 그 후의 생각지도 못한 이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시우네의 말을 모두 빠짐없이 전해놓았다. 카즈토도 나름 생각한 끝에 꺼낸 질문이리라. 그래도 아스나는 다시 한 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난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유우키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래야만해.”

“그렇구나.”

카즈토는 짧게 대답하고 아스나의 두 어깨에 손을 대며 살짝 몸을 떼더니, 블레이저 안주머니에서 꺼낸 조그만 메모를 내밀었다.

“여기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뭐……?"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야. ……하지만 난<절검>이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어……어떻게 키리토 군이 그걸 알아……?"

두 번 접어놓은 종이쪽지를 받아들면서, 아스나는 멍하니 물었다. 그러자 카즈토는 시선을 하늘로 조용히 돌리더니 중얼 거렸다.

"그곳이 일본에서 유일하게 <메디큐보이드> 임상시험을 하는 장소니까.”

"메디……큐보이드?"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단어를 되풀이하며 아스나는 종이 쪽지를 펼쳤다.

그곳에는【요코하마 코호쿠 종합병원】이라는 명칭과 주소가 조그만 글자로 적혀 있었다.

깔끔하게 닦아놓은 유리 이중문을 지나 채광이 잘 된 현관홀에 발을 들이자, 어쩐지 그리운 소독약 냄새가 어렴풋이 감돌았다.

조그만 아이를 안은 어머니, 전동 훨체어에 앉은 노인이 천천히 오가는 공간을 가로질러, 아스나는 면회 접수 카운터로 향했다.

창구 옆에 비치된 용지에 주소와 이름을 적고, 면회를 희망 하는 상대의 이름을 적는 칸에서 손이 멈추었다. 아스나가 아는 것이라곤 유우키라는 이름뿐이었으며, 그것조차 본명인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카즈토에게선 설령 그곳에 그녀가 있더 라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 없을지, 면회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체념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굳히고 용지를 든 채 창구로 향했다.

카운터 너머에서 단말을 조작하던 하얀 제복의 여성 간호사 는 아스나가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면회 오셨나요?"

미소와 질문에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를 빈칸으로 남겨놓은 신청용지를 내밀며 아스나는 말했다.

"저기……,면회를 하고 싶은데, 상대의 이름을 몰라요.”

"네?"

수상해하며 눈썹을 모으는 간호사에게 열심히 말을 고르며 대답했다.

"아마 열다섯 전후의 여자아이일 거예요. 어쩌면 이름은 <유우키>일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여기엔 입원하신 환자분이 많아서 그 정도로는 알 수 없어요.”

"어……,여기서 시험 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