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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싸우고 있는데도 기억영상의 분석이 끝나자마자 게이트를 향해 이동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지금은 부하들도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안전한 곳까지 도망치고 나면 대체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될 것인가. 그것을 상상하면 격한 분노와 굴욕감에 온몸이 타는 듯했다.

'마벨러스'의 승무원들 역시 죽고 싶지는 않으니 게이트로 이동하라는 지시에 기쁘게 따랐다.

하지만 일단 안전을 확보한 뒤 그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진다. '두목인 주제에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정도는 떠들 것이 분명하다. 반드시.

"이 빚은 반드시 열 배로 돌려주고 말겠다!"

시커먼 복수심과 이치에 맞지 않는 증오로 온몸을 달구는 길리어스를 태운 채 '마벨러스'가 달아난다.

그 뒤를 '팔라스 아테나'가 맹렬하게 쫓는다.

두 번의 도약 사이에 극적으로 거리를 좁혀 이제 양자의 거리는 17분 정도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리미터 1을 해제한 지 이미 한 시간 이상이 흘렀다. 거기에 적함을 격침할 때마다 리미터 2를 해제하고 있다.

켈리는 그동안 내내 격심한 중력가속도를 버티고 있었다.

의식을 잃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지만 켈리의 왼쪽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다이애나 역시 켈리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침묵하고 있다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룰렛'을 통과할 생각이야. 어디로 날려갈지도 모르면서. 배짱은 꽤 쓸 만하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까?"

켈리가 알고 있는 게이트에는 정식 명칭이 없다.

하지만 백 개 이상의 게이트를 구분하기 위해 별명은 붙여두었다. '미니욘의 룰렛'이 켈리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미니욘의 두 태양, 미니욘 a와 b는 굉장히 가까이 위치해 있는 근접연성이다.

공통중심점을 중심으로 공전주기는 겨우 15일. 고속공전에 의한 원심력으로 서로 떨어지려 하면서도 초근접거리에 의한 상호의 강력한 인력에 붙잡혀 미묘한 균형을 지키고 있었다. 그 결과, 두 개의 별은 서로에게 꿀려 들어가듯 가로로 길게 일그러진 형태였다. 즉 타원형의 태양이다.

이것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다.

켈리가 발견한 게이트는 이 두 태양이 공전하는 궤도에서 살짝 바깥쪽에 있었다.

언제나 격심한 복사열과 전자파에 노출되어 있는데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양쪽 태양 중 하나가 스치고 지나가는, 너무나 위험해서 스테이션 따위는 절대로 설치할 수 없는 게이트이다. 그 이전에 존재 자체를 믿기 어려운 게이트이기도 했다.

게이트라는 것은 우주의 한 점과 다른 점을 연결하는 일종의 터널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입구는 하나, 출구도 하나가 된다. 왕복형이냐 편도형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돌입장소가 한 군데라면 보통은 같은 곳으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 게이트는 입구가 하나인 데 비해 출구는 켈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것만 해도 여섯이었다. 이 여섯 군데 중에 어디로 나가게 될지는 돌입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실로 룰렛 같은(혹은 장난 같은) 게이트였다.

켈ㄹ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차이는 5분. 어때?"

계속해서 출구가 변하는 '룰렛'이라도 돌입하는 시간차가 5분이라면 같은 지점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지만 다이애나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확증은 없어. '룰렛'이 눈은 빠르면 2분 만에도 변하니까."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거기다가 더욱 안 좋은 상황은 이 '룰렛'이 편도형이라는 사실이다.

도약해버리면 이 태양계로 돌아올 수 없다. 게다가 현재 판명된 여섯 군데의 출구는 모두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여섯 군데를 직접 연결하는 루트도 없다.

하지만 켈리는 이대로 길리어스를 놔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벨러스'는 진로를 크게 왼쪽으로 틀고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 미니욘b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룰렛'은 미니욘b를 우회해 돌아가는 뒤쪽에 있다.

따라서 곧 '마벨러스'는 진로를 크게 오른쪽으로 돌리게 된다.

그렇다면 애기는 간단하다. 지름길로 가면 되는 것이다.

켈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신호하면 리미터3를 해제해. 10초면 충분하니까."

미니욘b와 a 사이를 질러 적의 앞으로 돌아가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룰렛'으로 가는 최단궤도를 잡으려면 b의 표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면서 날아가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내열 스크린의 한계에 도전하는 셈이지만 두 개의 태양 사이는 완전한 폭풍권 내부가 된다.

행성을 몇 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