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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어린애는! 어디 보자, 음……』

갑자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유우키가 말했다.

『있지, 아스나……. 나하고 결혼하지 않을래?』 “엑……."

『아! 하지만 그때는 아스나가 나한테 시집와야 해! 안 그러면 내 이름이《유우키 유우키》가 되니까.』 유우키가 하하하 웃는 동안에도 아스나는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일본에서도 미국을 따라 동성간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있다는 것은 매년 매스컴에서도 화제로 다루지만 좀처럼 법안이 제출되지는 않고 있다ㅡㅡ는 사실을 순간 적으로 떠올리면서 아스나가 당황하고 있으려니,유우키가 다시 유쾌하게 말했다.

『미안미안, 농담이야. 아스나에겐 이미 소중한 사람이 있으 니까. 그 사람이지? 이 카메라를 조정해준……』

"어……, 그게……, 응, 뭐……."

『조심하는 게 좋을걸~.』

"응……?"

『그 사람도 나하고 다른 의미로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으니까.』

"……"

유우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서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뺨을 살짝 문지르는 아스나의 옆얼굴로 홀끔 렌즈를 돌리더니, 유우키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마워, 아스나. 이 집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던것만 으로도 난 굉장히 만족스러워. 설령 집이 없어진다 해도 추억은 여기 있으니까. 엄마와 아빠, 언니랑 지낸 즐거웠던 시절의 기억은 계속 여기 있으니까……』

여기란 것이 집이 있는 토지가 아니라 유우키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임을, 아스나는 깨달았다.

이 집의 다정하고 따뜻한 자태는 자신의 가슴속에도 새겨졌다. 그런 마음을 담아 아스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키의 말이 이어졌다.

『……나랑 언니가 약을 먹는 게 힘들다고 울면, 엄마는 언제나 성경 이야기를 들려줬어. 하느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내려주시지 않는다고. 그런데 언니와 엄마와 함께 기도를 하면서도 난 조금 불만이었어. 사실은 성경이 아니라 엄마가 생각한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줄곧 생각했어 …….』

약간의 침묵. 완전히 짙은 쪽빛으로 바뀐 하늘에 커다란 붉은별 하나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이야, 지금이 집을 다시 한 번 보고 깨달았어. 엄마는 계속 내게 이야기해줬던 거야. 말이 아니라…,마음으로 감싸줬던 거야. 내가 끝까지 똑바로 앞을 보며 걸어갈 수 있도록, 늘 기도해줬어……, 그걸 이제야 겨우 깨달았어』

아스나의 눈에도 하얀 집의 창가에 무를을 꿇고 앉아, 밤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와 두 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유우키의 조용한 목소리에 이끌리듯, 아스나는 어느새 아주 옛날부터 미음속에 응어리졌던 감정을 말에 실었다.

"나도 있지……,나도……,계속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도 마음이 들리지 않는 거야. 내 말도 전해지지 않고. 유우키, 전에 그랬지? 부딪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다고. 어떻게 하면 유우키처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유우키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이미 부모님을 잃은 유우키에게는 배려가 없는 말일지도 모 튼다. 적어도 평소의 아스나였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꺼내지 않았을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은 어깨의 프로브를 통해 전해지는 유우키의 강인함과 자상함이 아스나의 마음을 덮은 벽을 녹여주고 있었다. 아스나의 물음에 유우키는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강하지 않아, 하나도.』

“그렇지 않아. 나는 남들 눈치만 살피고, 겁먹고, 뒷걸음질을 치는데……,유우키는 그러는 게 전혀 없는걸. 아주……,아주 자연스러워 보여.”

『으음……하지만 말이지,나도 옛날에 아직 현실세계에서 지냈을 때는 언제나 내가 아닌 나를 연기했던 것 같아. 아빠도 엄마도, 나와 언니를 낳은 걸 마음속으로 미안하게 여긴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빠와 엄마를 위해 난 언제나 씩씩하게 행동해야 한다고,병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메디큐보이드에 들어간 후에도 그렇 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몰라. 진짜 나는 주위의 모든 것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매일 울며 소리를 지르는 애일지도 몰라.』

“……유우키…….”

『하지만말이야, 난그렇게 생각해. 연기라도좋다고……, 강한 척하는 것뿐이라도, 그래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상관없다고 말이야. 너도 알지만, 난 별로 시간이 없잖아……. 남들하고 접할 때, 점잔빼고 멀리서 마음 끄트머리만 찔러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 그럴 거면 처음부터 콱 부딪쳐 보자 싶었어. 만약 상대에게 미움을 사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그 사람의 마음 바로 곁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선 변함이 없으니까.』

”……그렇구나……. 유우키가 그렇게 해준 덕에 우린 겨우 며칠 만에 이렇게 친해졌던 거였어…."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야. 내가 도망쳐도 아스나가 열심히 쫓아와준 덕이야. ㅡㅡ어제 모니터 룸에 있는 아스나를 보고 목소리를 들었더니,금방 아스나의 마음이 전해져 오더라.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아도,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서,정말로……,정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어.』

한순간 목멘 소리를 내더니 유우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하고도 그때처럼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마음이란 전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괜찮아, 아스나는 나보다도 훨씬 강한걸. 정말이야. 부딪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아스나가 콱 부딪쳐준 덕에,나는 이 사람에게는 내 모든 걸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한거니까.』

“……고마워. 고마워, 유우키.”

간신히 그 말만을 하고,아스나는 눈 꼬리에 배어나온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늘을 보았다. 해가 져도 완전히는 어두워지지 않는 수도권의 밤 하늘에도 인공의 빛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빛나는 별들을 많이 헤아릴 수 있었다.

역에 돌아왔을 때쯤 프로브의 배터리 잔량 알람이 울렸다. 아스나는 유우키와 내일 다시 함께 수업을 받기로 약속하고 휴대단말의 접속을 끊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세타가야의 자택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지났다.

싸늘한 공기를 머금은 현관홀에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어렴풋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아스나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오른쪽 어깨에는 아직도 유우키의 무게가 살짝 남아 있다. 그 온기를 왼손으로 한 번 쓰다듬은 후, 신발을 벗고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갔다.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즉시 복도로 나왔다. 아스나가 향한 곳은 같은 2층에 위치한 오빠 코이치로의 방이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거의 집에 있는 일이 없는 코이치로는,당연히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노크를 했지만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랑곳 않고 과거 SAO의 서비스 개시 첫 날에 그러했듯, 마음대로 문을 열었다.

세간이 별로 없는 휑뎅그렁한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비즈니스용 책상이 있다. 그 왼쪽 옆에 원하던 것이 보였다. 코이치로가 가상공간 회의에서 사용하는 어뮤스피어였다.

아스나의 것보다도 훨씬 새것 같은 헤드기어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측면의 카드 슬롯에 ALO의 클라이언트가 인스톨된 메모리 카드를 삽입했다. 침대에 늘자마자 코이치로의 어뮤스피어를 자신의 머리 사이즈에 조절해 뒤집어썼다.

전원을 켜자 금세 접속 시퀀스가 개시되고,이어서 ALO의 로그인 공간으로 전송되었다. 그러나 아스나는 언제나 시용하는 메인 어카운트가 아니라, 타인이 되고 싶을 때 이따금 사용하는 서브 계정으로 요정 나라에 다이브했다.

출현한 곳은 제22플로어 숲속 집의 거실이었다. 몸은 친숙한 운디네《아스나》가 아니라,《에리카》라는 이름의 실프 종족 캐릭터였다. 복장을 체크하고, 허리에 찬 두 자루의 단검을 풀어 상자에 집어넣었다. 즉시 메뉴를 열고 일시 로그아웃 커맨드를 실행했다.

겨우 수십 초의 다이브에서, 아스나는 즉시 현실의 자기 방으로 복귀했다. 머리에서 어뮤스피어를 벗었지만 푸른 통신 인디케이터는 점멸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VR 월드와의 접속이 대기 상태라는 표시이며, 다시 머리에 장착하고 파워 스위치를 켜면 로그인 과정을 생략하고 게임에 복귀할 수 있다.

오빠의 어뮤스피어를 손에 든 채 아스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출력 라우터와 무선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집안이라면 거의 구석에서 구석까지 희선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문을 열고 다시 복도로 나와, 이번에는 조금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1충 거실, 식당을 엿봤지만 역시 테이블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채 어머니의 모습은 없었다. 그대로 안쪽으로 향해 복도를 한 번 꺾자,막 다른 곳의 문 아래쪽에서 뿌옇게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의 서재였다.

문 앞에 멈춰 서서 노크를 하려고 오른손을 든 후에도 몇 번인가 망설였다.

언제부터 어머니의 방을 찾는 것이 이렇게나 부담이 되었을까. 아스나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마 반 이상은 아스나에게 원인이 있을 것이다.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전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우키 덕에 깨달았다.

오른쪽 어깨를 조그만 손이 눌러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목소리.

ㅡㅡ괜찮아,아스나라면 할 수 있어…….

아스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소리 높여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손잡이를 돌려 열린 틈으로 몸을 미끄러뜨리고 손을 뒤로 해서 문을 닫았다.

어머니 쿄코는 중후한 티크 목재 책상에 앉아 거치형 PC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한동안 그대로 소리 높여 타이핑을 계속하다가, 한번 강하게 엔터키를 누르곤 겨우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안경을 밀어올리며 아스나 쪽을 향한 시선은 여느 때보다도 짜증이 섞인 것 같았다.

“……늦었구나.”

그 말만을 입에 담은 어머니에게 아스나는 사과했다.

"미안해.”

"밥상은 이미 다 치웠다. 뭔가 먹을 거면 냉장고 안에 있는 걸로 알아서 챙겨 먹어. 전에 이야기한 편입 신청서 기한은 내일까지니까 아침까지 가져오고.”

이야기는 다 끝났다는 듯이 키보드로 손을 되돌리려는 어머니에게, 아스나는 미리 준비했던 말을 입에 담았다.

"그 이야기 말인데……,할 말이 있어, 엄마.”

"말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