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대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회지에 싣게 될 글을 처음 부탁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저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결국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니, 어떤 마음으로 수학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사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제목은 반어법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당시 컬러 액정 폴더 휴대폰의 16화음 벨소리를 듣고 '세상이 이렇게까지 발전하다니!'하며 충격에 빠졌었으니, 어느덧 상당한 시간이 지났네요.
교수님의 대학생 시절 이야기라고 하면 노력파 대학생의 고난 극복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여러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상의 많은 작은 일들로 울고 웃었고, 시험도 여러 번 망쳤고, 그러다가도 사소한 성취 하나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나간 시간은 미화되기 마련이라 되돌아보면 꽤 훌륭한 학생이었던 것 같지만, 당시는 항상 멍청한 짓을 반복해서 저지르는 불쌍한 청춘이었습니다.
제가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때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였습니다. 복학 첫 학기에 해석학과 집합론을 들으며 느꼈던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증명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이 안 되는 명제들을 교수님은 너무나 우아한 방법으로 증명해주었으니까요. 그렇게 정신없이 교수님의 설명을 듣다보면 어느새 수업이 끝나 있었고, 수학자들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이런 멋진 구조를 만들었을까 상상하며 행복했던 학기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수학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는가’가 계산 자체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다른 전공도 다양하게 배웠고, 각자의 학문에 녹아있는 고유한 사고방식을 익히기 위해 애썼습니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수학과에 왔지만, 노력하는 만큼 더 애정이 생긴다는 옛말은 정말 틀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숙제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위해 참고도서 찾으러 도서관에 가던 길, 한밤중이었지만 정말 하나도 귀찮지 않고 가벼웠던 발걸음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씁쓸함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제가 언제나 정신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복학생들은 욕심이 너무 많은 법입니다. 잘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당연하지만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사실 단 하나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우울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더구나 제 멘탈은 사소한 일에도 너무 쉽게 흔들렸고, 그럴 때면 아까운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땐 나이 많은 선배들의 삶에 대한 균형 감각이 부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간다고 느낄 땐, 릴케의 편지 한 구절을 외우고는 하였습니다.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네게 해답을 가져다 줄 거야.”
돌이켜보면, 삶은 바쁘게 사는 것 자체보다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게 중요했습니다. 당시의 모든 노력이 언제나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실 ‘정확한 방향성을 가진 노력’만이 보상이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이상과 현실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방향이 정확하면 언젠가 자신이 생각했던 장소 근방에는 도착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공부 분야에서는 아래의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면,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다짐은 사실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갔지만, 그 아까운 시간 동안 내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멍하게 책만 보다가 돌아오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지금의 내게 맞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고민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기초가 없으면 시간을 올바르게 투자하는 방법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엔 아마도 매일 수업 시간의 필기를 나만의 노트에 다시 정리해보는 일이 시작이 될 것입니다. 교과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꼭 그 구성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우선은 본인이 스스로 구성한 내용만 충실하게 이해하면 됩니다. 그 이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다른 공부 방법이 고민된다면, 이미 충분히 공부를 잘하고 있는 학생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할까’하는 고민은 항상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포기한 것들이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다보면, 처음 생각했던 만큼 그리 많이 잃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 대학원 TA 시절, 학생 하나가 찾아와 선형대수학의 부분 공간 문제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닌지라 개념을 잘 잡아주었는데, 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조교 형은, 문제를 보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그게 어떻게 한 번에 딱 보이시나요. 이제 수학을 시작했는데 너무 막막해요.” 이는 제가 대학생 때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제게 똑같은 말을 하니 무척 신선했습니다. 저도 학생 때 Green-Stokes 정리를 잘 이해 못하고 외웠었는데, 그때의 대학생이었던 저와 수학자인 지금의 제가 전혀 다른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눈앞의 벽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며 사람이 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가 인생의 큰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수학교육과에 온지 벌써 두 학기 째인데, 사실 교수님 호칭이 아직 어색합니다. 수학을 좋아해서 공부했고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으니 이 직업이 딱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교수님이라는 무시무시한 호칭으로 불려도 되는가는 여전히 적응이 잘 되지 않습니다. 복도에서 만났을 때 우리 학생들의 공손한 인사가 혼자 민망하여 친근하게 받아주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제가 수학을 공부해오며 느낀 설렘이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대학 생활이 항상 보람 있고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2017.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