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이리가 깊은 숲속에서만 살 수 있듯이.

Post date: Mar 13, 2015 9:02:45 AM

(발췌)

나와 오자와 씨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의 질량이라든지 업적의 수준, 기량의 크기, 유명한 정도 같은 요소는 일단 빼고 그저 '살아가는 방식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첫째는 우리 둘 다 일하는 것에 한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는 점이다. 음악과 문학, 영역은 달라도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자기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그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 일을 통해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느냐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을 잊고 그 일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상이다.

둘째는 헝그리정신이라고 할지 지금도 젊었을 때처럼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더 깊이 추구하고 싶다. 좀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는 게 일하는 데 있어, 또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모티프다. 오자와씨의 언동을 보고 있노라면 좋은 의미에서(라고 할지) 탐욕스러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납득은 한다. 자부심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족하지는 않는다. 좀더 훌륭한, 좀더 심오한 것을 할 수 있을 터다 하는 감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시간이며 체력 같은 제약과 싸우며, 이뤄내겠다는 결의가 있다.

셋째는 ........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끈기가 있고, 터프하고, 그리고 고집스럽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한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좋지 않는 결과가 닥쳐도, 설령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미움 받는 한이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 오자와씨는 원래부터 꾸밈없는 성격에 늘 농담을 입에 달고 살고, 그런 한편으로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분이지만, 그런 우선순위는 매우 확고하다. 일관되고, 흔들림이 없다. 적어도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경우에 따라 어느 정도 깊이 사귀기도 했지만, 이 세 가지 점에서 이 정도로 '그래, 정말 그렇지'하고 자연스레 공감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자와씨는 내게 귀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분명히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지 마음이 놓인다.

가령 악보를 깊이 파고들어 읽는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지, 진지하게 악보를 읽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세세한 데까지는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오자와씨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조에 귀를 기울이고 표정을 보다 보면, 그게 오자와씨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행위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오자와씨에게는 악보를 읽는 작업없이 음악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이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철저하게 추구해야하는 부분이다. 이차원의 종이에 인쇄된 복잡한 기호들의 집적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자아내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그게 오자와시의 음악 생활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몇 시간씩 집중해서 악보를 읽는다. 까다로운 암호 같은, 과거에서 보낸 메시지를 해독한다.

나도 새벽 4시쯤 일어나 홀로 집중해서 일한다. 겨울이면 주위가 아직 캄캄하다. 여명의 조짐조차 없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 시각에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책상 앞에 앉아 오로지 글을 쓴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무심히 키보드를 친다. 그런 생활을 이미 사반세기 이상 계속하고 있다. 오자와씨가 집중해서 악보를 읽는 것과 같은 시간에 나는 집중해서 글을 쓴다. 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집중의 깊이는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속으로 상상한다.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그런 집중력 없이는 나라는 인간의 생활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집중력이 상실된다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니다. 그에 관해서는 오자와씨도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고령에 식도암 수술을 받고도 왕성한 지휘,지도활동으로 체력적으로 소모된 것에 관해서)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절감한 게 있었다. 이 사람은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가 말린다 해도, 친구들이 말린다 해도, 가족이 말린다 해도 이사람은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오자와씨에게는 음악이 바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연료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 사람은 체내에 신선한 음악을 정기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면 생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다. 자기 손으로 음악을 엮어내 그것이 힘차게 고동치게 하는 것, 그것을 사람들 앞에 '자'하며 내미는 것, 그런 행위를 통해-아마도 그런 행위를 통해서만- 이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진정으로 실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 사람은 그런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초월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야생 이리가 깊은 숲속에서만 살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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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 한 단어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