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date: 04-Dec-2011 03:03:18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와 이념의 대립으로 매우 혼돈한 사회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여러가지 사상과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전성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주 로켓의 선구자 허만 줄리어스 오베르트(Hermann Julius Oberth) 박사는이와 같은 발전의 소용돌이 시대인 1894년 6월 25일 지금은 헝가리에 속해있는 트란실베니아지방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베르트 박사는 11세에 프랑스의 과학공상 소설가인 쥘 베른(Jules Verne)의 소설인 지구에서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의 소설을 읽고우주여행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 소설은 당시 우주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봤을 만한 필독서와도 같은 책이었다. 그 역시도 이 소설을 암기할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통해 키운 우주 여행에 대한 관심은 그가 평생토록 우주 여행에 관심을 갖도록 하게 한다. 그는 이 책에서 쥘 베른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보인 계산들이 결코 터무니 없거나 그 당시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간주하듯이 그냥 기상천외한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베르트박사는 14살이 되던 해에 이미 액체 연료를 사용하여 반작용에 의해 추진력을 얻어 비행하는 로켓을 구상하였다. 그 역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옮길만한 경제적인 여력이나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책을 탐독하며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며 자신의 이론을 고치고 발전시켜 나갔다. 청년 오버스는 연료의 양이 로켓에서 차지하는 무게 비율이 크면 클 수록 로켓이 빨리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켓이 날아가면서 연료를 소비할수록 연료 대비 로켓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져서 불필요한 무게 즉 연료를 담고 있던 로켓 몸체를 계속 달고 비행을 해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로켓을 단(stage)으로 만들어 연료를 소비하고 빈 껍데기가 되는 로켓 부분을 날아가는 로켓 몸체에서 떨어뜨리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이는 러시아(소련)의 치올코브스키가 고안한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다. 오베르트는 큰 로켓과 작은 로켓이 같은 속도로 비행하다가 큰 로켓이 떨어져나간 후 작은 로켓이 다시 불을 붙여 속도를 내면 속도가 더해지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즉 이런 방법으로 로켓의 비행속도가 더해진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1912년에 오베르트박사는 로켓과 관련된 공학이 아닌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뮌헨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곧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학업을계속 진행할 수 가 없게 된다. 전쟁에 위생병으로 참전하게 되면서 이 때 자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오베르트박사는 뮌헨대학으로 돌아오지만 이때는 의학이 아니라 물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1922년에 오베르트박사는 로켓공학에 관한 박사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하지만 내용이 너무 진보적이고 단지 물리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위 수여를거절당한다. 추후에 그는 이 때 다시 학위 논문을 작성할 까 생각했지만 학위 없이도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박사 학위가 거부되고 난 바로 그 다음해인 1923년에 그는 세계적으로 과학적인 중요도를 인정받게 되는 논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논문의 제목이바로 “행성세계로의 로켓(Die Rakete zu den Planetenraumen, The Rocket into Planetary Space)이다.
Professor, Hermann Obe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