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진보 진영은 뭐가 잘못 됐나? The diplomat (September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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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은 취약하지만, 한국의 진보 야당도 그리 신뢰를 심어주지 못한다. 왜?

8월 18일은 한국의 제8대 대통령 김대중 서거 5주년 기념일이다. 그는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라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거국적인 투쟁에 앞장선 핵심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재건에 기여한 김대중의 공로는 그의 정치적 유산을 규정하며 오늘날 진보 운동의 모습을 만든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김대중의 계승자는 2003년 그가 퇴임한 이래로 단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해왔다.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열 상태이며, 두 차례 연달아 대선에서 패했다. 또한, 2008년 이래로 국회 원내 다수당이 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 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란 둥지 아래 모인 노쇠한 진보 연합은 진보 진영의 텃밭인 전라도 남부 중 한 지역구를 비롯해 자웅을 겨뤘던 15개 지역구 중에 11곳에서 패했다. 이러한 결과는 정경 유착과 내각 인선 스켄들이 연이어 터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고려할 때 더더욱 충격적이다.

이념보다는 정책

그렇다면 왜 진보 진영은 최근 수년 간 대중의 신뢰를 규합할 수 없었나?

결코 보수 진영은 정치적으로 진보 진영을 뛰어 넘는 성공 가도에 있지 않다. 박근혜의 지지율 하락에 짓눌려 있는 새누리당은 올해 지방 선거와 보궐 선거를 앞두고 명백해진 내분과 분열을 피하는데 급급하였다. 새누리당 대표 자리를 다툰 후보 2명은 집권당이 청와대와 어떻게 협력할지 정반대의 의견을 내는 등 당내 갈등이 불거졌다. 그러나 "반박" 김무성 후보 승리는 어떤 형태로든 새누리당 평 의원들 사이 봉기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 보수 정당은 통합된 정당이 보여주는 일관성을 보여 주었다.

진보 진영을 논하자면 그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한국의 진보 운동의 포스트 민주화 역사는 투쟁, 분열, 분당 중 하나로 정의된다. 직선제로 선출한 6개 정부 중 첫 번째로 독재자 전두환이 직접 고른 후계자였던 노태우는 오랜 야당 지도자인 김영삼과 김대중에 맞서 자유롭고 치열하게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야당 표심이 갈리면서 노태우는 득표율 36.6%로 당선되었다. 야당 내부 분열은 1990년대 "3당 합당"으로 더욱 가중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김종필과 김영삼이 당시 현임 노태우와 더불어 "보수 대 연합"에 합세하였다.

1997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과 뒤이어 2002년 노무현이 당선되었지만, 진보 진영은 여전히 통합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새천년 민주당 소속 내부 의원들의 부진한 지원을 언급하며 노무현에 충직한 의원들은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 라이벌 진보당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이는 득이 되지 않은 분당이었다. 신 야당 연합은 새천년 민주당에 의한 노무현의 탄핵을 앞당겼다. 새천년 민주당은 노무현의 당선을 밀어준 당이다. 노무현 탄핵은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폐기되었지만, 그로 인한 정치적 손상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진보 정당 내부 서로 다른 계파 간의 갈등은 오늘 날도 계속되고 있다.

성 마른 새정연은 끊임 없는 내분의 결과로 박근혜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에 맞서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을 수 없었다. 정부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비롯한 보수 정권이 직면한 산더미 같은 스캔들이 있지만, 진보 진영은 박 정권에 대한 잘 짜여진 정치 공세를 동원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대신 진보 정당은 1980년대와 민중 운동을 떠오르게 하는 "투쟁"이란 말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상 보수 정당이 경제 성장이란 유물을 제도화한 마당에 좌파 진영은 "폭압 정권에 맞서 함께 투쟁하자"라는 메시지에 첨착해왔다. 이는 남한의 포스트 권위주의 시대에는 아주 부적절한 메시지이다. 진보 진영의 텃밭인 전라 남도 출신 한 시민은 "이제는 '민주주의 투쟁' 시대나 김대중의 시대가 아니다. 요즘은 지역 경제를 중시해야만 한다"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 한 관측통은 이렇게 말한다. "남한의 포스트 햇볕 시대 남한은 냉정하고 실용적이며 불만이 섞여 있다." 이는 "진보" 정책과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대부분 남한의 젊은 세대에도 들어 맞는다. 최근 여론 조사 남한 젊은이들이 현실주의자라고 나타났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은 대체로 친미 성향에 중국에 대해선 양면적인 견해를 보이며 통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 햇볕 정책을 지지할 공산은 갈수록 줄고 있다. 우리가 남한에서 목도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 유권자 기반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흥미로운 연구 거리가 될 것이다. 남한은 후기 산업 국가가 지닌 가치와 이해관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후기 산업 단계에 놓인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정치 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주창한 "포스트 물질주의"와 같은 사회는 정치적으로 고유한 가치 신드롬이 나타나 훨씬 진보적이다: 그들은 대인 관계에 높은 신뢰를 부여하며 외부 집단에 대한 용인도 확대되며, 정치·경제적 안정보다는 자기 표현과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정책을 선호하되 기존 국가 기관에 대해 존중심은 덜하며 정치적으로 더욱 활발한 성향을 보인다. 물론 이러한 가치 중 일부는 번성하고 있지만, 한국은 타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한국은 부분적으로 포스트 물질주의 변화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권에 드리운 긴 그림자

일정 부분 1987년 체제 이전 권위주의 정권은 포스트 민주화 정치 환경에서 어떤 메시지가 그들의 장기간 집권을 보장해 줄지 판단하는 과정은 매우 영악했다. 노태우와 민주정의당은 정권을 잃은 게 아니라 재집권이란 목표와 함께 1987년 민주화 분위기에 양보하는 전략적인 결단을 내린다. 정치 학자 조셉 웡과 댄 슬레이터는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의 한계를 인식하고는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집권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관계로 특히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집권당이 권위주의를 유지하도록 도왔던 바로 그 힘으로 권위주의를 끝내자는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경제 성장과 개발이란 유산을 적극 활용했지만, 내부적으로 분열된 야당은 공감대가 형성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대 이외에는 함께 뭉치지 못했고, 민주정의당은 신생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영구적인 집권도 가능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정당이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했을 당시에 민주주의 개혁을 시작하면서 길게 봐서 내부 분열이나 외부세력에 의한 축출을 모면했을 공산이 크다. 이것이 윙과 슬레이터가 말하는 "양보의 힘"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표를 보장해주었던 성장과 개발의 유물에 기댈 수는 없다. 후기 산업 시대의 남한은 (동아시아 국가 대다수도 유사) 그간 한층 종합적인 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커져 왔다. "평생 고용"이 더욱 확산되는 당시는 생활 비용은 한층 감당할 만하고 경제는 여전히 "발전"하고 있고, 강력한 복지 국가 수요가 없었다. 즉 고용주와 가족 단위가 필요한 복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런 세월은 변했고 한국의 복지 모델은 더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더 많이 원하고 국가로부터 더 종합적인 복지 정책을 원한다.

이런 복지 수요에도 그간 진전은 거의 없었다. 박원순 현 시장은 서울시 공립 학교 학생들에게 무상 급식을 제공하며 지지세를 규합하였다. 그러나 음식의 질이 형편 없고 서울시 예산에 부담이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빈곤 노인의 숫자가 증가하자 정부는 지원의 손길을 재촉했지만, 예산상의 제약을 깨닫고는 원래 주기로 한 금액을 철회하였다.

한국의 사회 정책이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그 결과 국가가 사회 현실과 세계화된 경제 수요 등과 괴리 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다. 사회는 경제 자유화와 연계된 소외 계층이란 부담과 생활비 부담을 경감해줄 무능력한 국가의 지배를 받으며 신음하고 있다. 높은 자살율과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과 낮은 노동 생산성 등이 사회·경제적 결과의 산물 중 일부분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려할 때 남한의 사회 정책 개선은 앞으로 대표적인 선거 이슈가 될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점을 파악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기적으로 남한의 복지 정책 개발과 혁신을 육성하고, 창조 경제를 통한 성장 등의 필요성를 강조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실제로 수사를 뛰어 넘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근혜 정부 2년은 확실히 맥이 빠져 있다. 만일 박근혜와 집권당이 다음 몇 년 동안 그 무엇도 완수할 능력을 못 보여주면 유권자들은 친절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좌파 진영이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내부 이견이 통제 불능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도록 할 능력에 달려 있다. 1987년 이래로 한국 역사는 거의 신뢰감을 불어 넣지 못했다.

국내 변수와 국제 상수

비록 국내 이슈에 대한 보수와 진보 정부 사이 다양한 정치 메시지의 차이가 클 것으로 사람들은 기대하겠지만, 남한의 외교 정책과 관련해선 그와 같은 생각은 적용될 수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은 좌측 깜박이를 켰다가 우측 깜박이를 켰다"와 같은 말을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도 아마도 적용될 수 있다. 두 사람은 국가 주도의 한국 경제를 근본부터 구조 개혁하는 일을 감독했다: 김대중의 임기 중에 한국은 기본적으로 개발 국가 이미지를 탈피하였다. 세계화, 다른 말로 한국의 글로벌화는 시작되었다. 이런 흐름을 저지할 진보 정부를 찾아보기는 흔치 않다. 기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였다.

정치 학자 피터 카첸슈타인은 세계화의 힘은 "약소" 국가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더 큰 나라들과는 다르게 남한은 거대 국가들보다도 대외 무역의 구조와 관련되거나 경제 정책을 입안할 때 훨씬 적은 재량권을 보유한다.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국내 경제가 장악되어 있는 수출 중심의 경제는 (재량권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그 압박의 강도가 오히려 거세지게 된다. 남한 지도자들은 세계화 압력을 상당 부분 포용하여 한국의 경쟁력 이익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실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과 (유럽연합과 미국)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이다. 최근 시진핑을 따라 서울을 방문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중 FTA 의제가 핵심 현안 중에 하나였으며 양국 지도자들은 FTA를 조만간 체결하길 원한다. 남한의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한·중 FTA는 (보수 혹은 진보) 어떤 정부가 되었건 핵심 의제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 정부는 가장 열광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지지하는 국가 중 단연 선두로 올라섰으며 많은 이들은 분통을 터트리겠지만, 선거에 충격을 미칠 만큼의 의제가 되기에도 아마 충분치 않다.

지금까지 군사 협력에 관한 한 노무현은 박근혜 (혹은 이명박) 보다는 미국과 협력적인 동료는 아니였다. 그러나 미국의 비판적인 기조를 떠 받쳐온 일종의 반미 감정은 지금으로선 적어도 자취를 감추는 듯 보인다. 한국의 미래 정부가 보수건 진보건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협력 관계를 모색할 공산이 크다. 한미 협력 관계가 나라에 가장 이익이 되며 한국 지도자들은 좀처럼 국가 이익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는다. 현재 선진국들이 수출 중심의 글로벌화 된 세계 경제 속에서 강력한 기득권과 신자유적인 세계 질서 체계 속에서 경제 강국으로 성숙해가는 새로운 표준으로 남한을 염두에 둘 가치가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여건이 어떤 유의미한 방법으로 보수 진영 정당과 차별성을 부각할 수 없는 진보 진영에게는 혜택이 될 공산은 크지 않다.

박근혜의 5년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그녀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해 많은 기대가 있을 것이다. 유권자의 기대를 충족할 능력 부재는 진보 진영 후보에게 유의미한 도전을 펼칠 무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기실 언론 매체 JTBC는 현 진보 박원순 시장이 2017년 대선에 출마할 선호 후보이다.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그는 대선 출사표를 던질 유리한 입장에 있다(이명박도 그랬었다). 그러나 진보 정당이 계속해서 내분으로 타격을 입는다면 그런 진보 기반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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