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배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개발을 시작한 인터넷은 반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세계인의 삶을 혁신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2010년 인터넷 사용인구는 전 세계 70억 인구 중 20억 명으로 추산되어 기술적인 티핑포인트를 넘어섰다. 앞으로 10년 후 인터넷 사용인구는 50억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이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모든 인류가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터넷의 개발에는 다음 5가지 철학이 내재되어 있었다.
1. 공유와 개방
이렇게 인류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터넷이 한국에서 처음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이었다. 보통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검증된 기술이 도입되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한국 인터넷 개발은 10여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인터넷의 원조인 ARPANET도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인터넷 구축을 위한 핵심 기술의 일부를 직접 개발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만 했다.
초기 컴퓨터 네트워크는 네트워크 자체를 연구하는 연구개발망이었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구축하고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각자의 연구 내용을 공유하고 공동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고 협력했다. 기술적 결함은 상호기여의 원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 네트워크 운용을 위한 표준도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결정되었다. 특히, 한국은 경험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에 이러한 공유/개방 풍토가 절실했다.
2. 최고수준의 연구 및 개발 환경
연구 자료가 공유되었다고 해도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컴퓨터 네트워크를 직접 개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 최고의 연구자들과 동일한 환경에서 연구 및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었다.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던 한국은 1970년대 해외 과학자 유치정책부터 최첨단 연구시설의 건설을 통해 향후 최첨단 기술 개발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
3. 세계화와 국제적 기여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1982년 5월,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인터넷(TCP/IP 네트워크) 구축에 성공한다. 한국의 인터넷 개발은 초기부터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한국이 참여하기 전까지 인터넷은 북미와 유럽 일부의 네트워크였다. 이에 한국이 가세함으로써 인터넷과 관련된 국제적 조율에 비로소 아시아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은 아시아 각국에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제안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인터넷 연구 및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1985년, 서울에서 열린 PCCS는 이러한 노력이 잘 나타난 행사로서 북미와 유럽 뿐 아니라, 아시아와 남미까지 아우르는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 최초의 국제 학술대회 중 하나였다. PCCS는 이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관장하는 여러 기구로 발전되었다.
인터넷 표준을 정하는 IETF의 논의기구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으며, 상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전 세계 인터넷 컨텐츠의 가능성을 선보인 인터넷 엑스포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4. 굶주림(Hungriness) ??
1980년대, 선진적인 인터넷 개발의 시작부터 1990년대 중반 인터넷 벤처의 출현, 1990년대 말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개시까지 한국이 거침없이 혁신적인 발걸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뛰어난 인재가 많았거나 상대적으로 뛰어난 환경이 제공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굶주림이 주요한 힘이었다. 결핍이 만들어낸 욕구가 역동적인 연구 개발 환경을 구축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개발의 중심에는 20-30대 연구자들이 있었다. 한국의 젊은 인터넷 연구자들도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차례로 벤처를 설립해 현재까지 한국 인터넷 분야를 이끌고 있다.
5. Outreach ??
[Editorial: 추후 추가]
이 책은 위와 같은 철학 위에서 발달해 온 한국 인터넷의 역사 중 1981년부터 2000년까지의 20년 동안을 다루고 있으며, 각 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서술할 것이다.
1장 컴퓨터와 컴퓨터의 네트워크: TCP/IP 연구제안서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1982년 5월, 구미의 전자기술연구소(KIET)와 서울대학교 사이에 국내 최초의 TCP/IP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과정을 다룬다.
2장 사람과 사람의 네트워크: 국내 교육연구망의 시초인 SDN의 확산과정을 살피고, 컴퓨터 네트워크 분야 최초의 국제학술대회의 하나였던 PCCS를 통해 연구자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3장 전 세계를 네트워킹하다: 미국 및 유럽과의 네트워크와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 구축과정을 둘러보고, 국제 인터넷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살필 것이다.
4장 국가기간전산망: 인터넷 연구와 동시에 추진된 정부의 국가기간전산망 구축사업을 들여다본다. 한국 정보통신 분야는 초창기부터 정부와 산,학,연의 협동이 긴밀하게 이루어졌는데, 당시 인터넷 연구가 국가기간전산망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5장 연구자들의 네트워킹: 국내 컴퓨터 네트워크 연구자들의 조직한 학술대회와 연구, 개발 및 운영을 위해 조직한 기구들을 살펴볼 것이다.
6장 모두의 인터넷: WWW와 웹 브라우저의 등장 이후 상용인터넷접속서비스를 통해 대학과 연구소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인터넷이 일반 사용자에게 확산되는 과정을 살필 것이다.
7장 인터넷 EXPO: 웹을 기반으로 인터넷 기술과 컨텐츠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향후 인터넷 벤처가 자리잡는데 공헌한 인터넷 세계 EXPO의 조직 및 운영을 다룬다.
8장 온라인 게임: 국내 최초의 게임 사용자과 이들이 만든 최초의 온라인 게임들이 무엇이었는지 살피고, 네트워크 기술을 바탕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만든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과 게임 벤처 기업을 다룬다.
9장 인터넷 벤처: 인터넷을 연구하던 20-30대 연구자들이 창업한 벤처들을 다룬다. 세계적으로 처음 시도된 서비스들과 현재 인터넷 서비스의대부분을 포함하는 포탈 서비스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추적한다.
10장 상업화의 시작: 상용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인터넷에 뛰어든 분야는 인터넷 금융과 상거래, 인터넷 언론이었다. 상업 서비스의 발달은 궁극적으로 일상생활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당시 이들이 바라본 인터넷의 전망과 인터넷을 통한 상업서비스 방식의 변천을 살펴볼 것이다.
11장 초고속인터넷: 정부와 산, 학, 연의 협동으로 추진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의 목표와 추진과정을 추적한다. 또한, 이 계획이 수행되는 도중, 인프라 사업자의 광케이블망을 사용해 국내 최초로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개신 두루넷의 비전도 살핀다.
12장 인터넷 조율: 초기 인터넷의 운용을 위한 조율은 당시의 인터넷 사용자였던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기구에서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시작된 국내 인터넷 조율기구의 변천과정, 인터넷 조율의 핵심인 IP주소와 도메인네임을 할당하는 NIC 업무의 담당변화, 국내 인터넷 표준의 제정 등을 다룬다.
13장 인터넷 보안: ??
[Editorial: 인터넷 보안 인터뷰 후 추가]
14장 사회적 측면: 인터넷은 새로운 매체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뒤바꾸어놓은 사회적 현상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인터넷의 대중화를 경험한 나라였던 까닭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과 그 대응의 역사를 살핀다.
맺음말: "인터넷 선도국가를 향하여": 30년간의 한국 인터넷을 반추하고, 한국 인터넷 각 분야가 고루 발전해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는다.
위에서 설명된 각 장은 출판될 책에 포함되는 내용이며, 이는 한국인터넷역사프로젝트 웹사이트인 http://인터넷역사.한국 을 통해서도 제공될 것이다.
[Editorial: 부록에 대한 설명 추가]
2013.1.7
문의: sec at InternetHisto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