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매주 금요예배 및 주일 설교말씀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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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May 20, 2019, 6:07 AM by Hye Jin Kim   [ updated May 20, 2019, 6:08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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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May 20, 2019, 6:07 AM by Hye Jin Kim   [ updated May 20, 2019, 6:09 AM ]


5/19/2019 (주일예배)

posted May 20, 2019, 6:06 AM by Hye Jin Kim

제목: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본문: 요한복음 15:12, 시편112:1-2, 고린도전서 7:14
말씀: 이근상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부부간,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세상이 잘못되기 마련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이들이 가정을 소홀히 여깁니다.
가정은 천국이 될수도 있고 지옥 될수도 있습니다.
시편 본문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게 되며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가족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싸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참고 바라고 기다리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많은 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합니다.

원수마귀는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힘씁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의 모범을 보이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사람은 공부를 통해서 배우지 않고 삶을 통해 배웁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몸소 사랑을 보여주셨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개개인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회개가 있는 삶, 남은 생애 가정이 아름다워져서 후회없는 삶,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살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금요예배 (4/26/19)

posted Apr 28, 2019, 7:36 PM by Jihwan Kim

본문: 사도행전 15: 1-11, 22-29
말씀: 권태동 선생님

공식적으로 이방안들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고 이방인들이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의 첫 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세워졌고 바울과 바나바를 성령께서 따로 세우시고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 주 예수를 전하면서 복음이 참 인것을 성령께서 확인해주시는 것이 전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는 이방인들의 율법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서 부터 율법을 배워 알고있었지만 율법을 모르던 이방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사들은 물론 바리새파 사람들까지도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는 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이 이방인에게 전한 복음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율법을 전한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나의 의지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에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복음을, 십자가를 무력화시키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아닌 당신을 믿는 자를 그의 의로여기신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서 의롭다, 옳게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 
따라서 잘못살게된다면 불의하며 정죄받아 마땅하다는 세계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그리스도는 당신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의인이라 칭하십니다.
삶에서 비천하고 눌리고 어려운 사람에게 이는 놀라운 생명의 빛입니다.
우리가 돌아오면 기뻐 뛰며 잔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복음이 아닌 다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무엇을 해서 의인이 되는 쪽으로 교회가 돌아선다면 
이는 바울사도의 전도와 복음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의 싸움에 목숨을 건 바울과 바나바였습니다.

너희가 보고 배운대로 행라고 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보고 배운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육신을 입고 나타나사 친히 우리 가운데 다니시며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사랑하시며 우리를 구원해내신 것, 이것이 전수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의인이 되는 그것이 복음입니다.

2000년전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영원히 샘솟든 솟아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의해서 시간에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
그 하나님께 언제든지 돌아오면 언제든지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다시 출발하게 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언제든시 다시 출발하는 우리 청년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예배 (4/21/2019)

posted Apr 21, 2019, 7:57 PM by Jihwan Kim   [ updated Apr 21, 2019, 8:04 PM ]

본문: 마태복음 28:18-20, 마가복음 16:20, 사도행전 1:8
제목: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느니
말씀: 이근상 목사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심을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는 살리셨는데 정작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한 당신이 다시 살지 못했다면, 
주님을 비난하는 강도는 물론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택해 무덤을 옮기셨고 우리로 하여금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영생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한줌의 재가 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부활과 영생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계시다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육신으로 계셨고 
이제는 영으로 우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이 이제는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니 
 주님에 대한 신앙이 육신의 어려움과 세상 어떠한 고난도 이기게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영이 우리안에 계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계신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거할때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확신을 어떤것도 막을 수가 없고 
어려움이 있어도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를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전하는 자로 생이 바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전할때 주의 영이 우리 움직이사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받은 사람까지도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또 돌을 맞아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는 우리 청년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영이 우리를 움직이기를 기도합니다.

주일예배 (4/14/2019)

posted Apr 14, 2019, 11:24 AM by Hye Jin Kim

본문: 마태복음 6:9-15; 18:21-35, 누가복음 7:47, 창세기 50:18-21, 누가복음 23:34
제목: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치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치 않으시리라"
말씀: 임채남 목사님


우리 마음 속 불신앙의 돌을 옮겨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계속해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주 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더 가까이 해주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데이비드 시몬스라는 사람은 우리에게 용서할 대상이 있다는 것을 몇몇 물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우리가 마음에 원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할 대상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보고 누군가가 연상된다면, 예를 들어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면 아버지가 용서의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고 그 사랑은 우리가 이웃을 용서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허물, 죄, 상처, 모든 연약함때문에 조롱당하고 채찍질당하셨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에 빚진 자가 더이상 아닙니다.
오직 복음과 사랑에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께 그 사랑을 돌리고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또한 나눠야 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온전히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용서하기를 선택하는 청년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금요예배(4/12/2019)

posted Apr 13, 2019, 6:31 PM by Jihwan Kim   [ updated Apr 13, 2019, 6:34 PM ]

본문: 사도행전 14:1-3, 8-9
말씀: 임채남 목사님

우리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시리아 안디옥으로부터 출발하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시작됩니다. 
그 여정을 살펴보니 바울이 직접 계획한 것이 없이 오직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이동하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다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을 받으며 도망을 가는 와중에도 
슬퍼하면서 겁을 먹는게 아니라 영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행13:52 
이렇게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계획하고 움직인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바 되어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본문 1절에 비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났더니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하나님을 믿게됩니다. 
믿음은 내가 믿어서 믿는것이 아니라 주님이 믿게 하셔서 믿는것입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분의 은혜로 시작 되어 믿게 되었고 그래서 구원이 우리에게 있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이고니온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게 되었는데 그 말씀은 우리가 말하는 말과 다른 말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달되어 하나님의 영의 일하심으로 그 말씀이 복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2절에는 같은 말씀을 들었지만 믿기를 거절하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그들은 다른사람들까지 선동하고 자극하여 그들까지도 악한감정을 품게 하고 복음을 대적하게 합니다. 
심지어는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달려듭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해지기를, 흔들리지 않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믿음이 커지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가야합니다. 
그분을 듣는 것에 대해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고 듣는 자리를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사모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10:17 

믿음이 어느때는 나의 현실 때문에, 걱정과 근심 때문에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식하지 못할때도 있고 주님이 가까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평안이 없을때도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다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을까요?
말씀, 예배, 기도가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늘 주님이 함께하는 것을 의식하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순종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근원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육신으로는 불완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완전하실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을 보내셨던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틍스러운 순간에도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오늘 본문의 바울과 바나바역시 순종해서 나아갔습니다. 고난이 있었지만 기쁨으로 성령 충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이고니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니 능력도 나타나고 그를 통해 다른사람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믿음이 약해져있는 사람, 하나님과 가까이 있지 못한 사람을 가까이 있게 하는 일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며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영적인 능력들을 공급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어떤 형제자매들의 아픔을 위해 섬기며 그들이 다시 새로워저 같은 동역의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는 청년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받아들일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십니다

금요예배 (4/5/2019)

posted Apr 13, 2019, 5:38 PM by Jihwan Kim

본문: 사도행전 13:2-3, 14:26-27 로마서 11:29
말씀: 김진갑 선생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2가지 부르심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셨고 죄인에서 의인이 되게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게됩니다.
우리를 부르시면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실 때 우리가 응답하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선물을 결코 빼앗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부르신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로마서 11:29

두번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지시하십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2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주를 섬겨 금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지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 지시하신 것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의에서 인도하시며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리는, 놀라우신 신실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우리 청년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안에 땀과 수고와 희생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며 우리를 보살펴 나가십니다.

주일예배 (4/7/2019)

posted Apr 8, 2019, 5:37 AM by Hye Jin Kim

본문: 누가복음 10:38-42, 요한복음 12:1-8
제목: "마리아는 이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으리라"
말씀: 이근상 목사님


우리 마음 속의 불신앙의 돌을 옮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어떤 불신앙의 돌이 있는지 오늘도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가는 도중에 베다니라는 마을의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의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기만 합니다. 
마르다는 마음이 어려워졌습니다.
자신은 주님을 대접할 일로 바쁜데 마리아는 가만히 앉아 주님의 말씀만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를 시켜 자신을 도와달라는 간구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들로 인해서 염려를 하는데 한두가지만해도 좋다"며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했기 때문에 잃지 않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위의 상황을 잘못 적용하여 어떤 이들은 신앙생활만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님을 믿는 자들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 또한 성실히 감당해 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 상황의 참된 의미는 이런 것일 겁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언가 많은 것을 해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아니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과의 참 된 교제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가운데 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마음과 목숨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또한 주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풍성한 사랑을 주님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죽어가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한사람 한사람을 주를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며 선교하며 아무리 많은 일을 할지라도 영혼을 긍휼히 여길줄 모르면 그가 하는 일은 헛된 것입니다.
이론과 교리에 빠삭하고 성경구절을 많이 암기한다해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주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며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안한 것 같았던 마리아는 주님과의 교제를 소중히 여겼고 결국 향유 옥합을 깼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은 마리아였습니다. 

주님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며 또한 영혼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섬기는 청년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일예배 (3/31/2019)

posted Apr 3, 2019, 4:15 AM by Hye Jin Kim

본문: 고린도후서 5:7; 5:14-17, 요한복음 5:19-20; 5:30; 16:13
제목: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말씀: 이근상 목사님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는 것, 보이는 사실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많은 거짓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하물며 그것이 사실이라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죄된 마음의 눈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정과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만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여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예수님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1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5:30)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며 아버지의 뜻만을 순종하며 따랐던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또한 에베소서에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우리 마음눈을 밝히어 부르심의 소망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을 알게 되기를 간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엡 1:17-19).

나의 지혜가 아닌 말씀의 지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따라서 사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많은 문제들은 나의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결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여주시는 것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것을 종의 자세로 순종하며 살아가시는 청년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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