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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겨울 <기본소득 X 여성>

BIYN 기본소득 세미나 2017 <여성과 기본소득>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다섯 번째 기본소득 세미나가 열립니다.

올해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이해해봅니다. 기본소득의 의미를 풍부하게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다섯가지 특징인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 지속성, 현금성의 철학적 의미와 현실에 적용될 때의 가치를 스스로/함께 공부하고, 마지막 시간에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특징들을 재정의 해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지금, 가장 절실하고 정의로운 기본소득을 그려보는 과정에 함께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 일시: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2시
• 장소: 책방 만일
• 참가비: 총 5회 10,000원(*대관료+다과비 / 첫 날 현금으로 걷습니다.)
• 신청: jennybe0117@gmail.com(*마무리 워크숍은 꼭 참여해야 하고 나머지 4회 중 3회 이상 참여하실 분들에 한해 신청받습니다.)


✓ 세미나 일정 및 자료

0. 2/12 -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 2/19 - 기본소득 살펴보기
- 바티스트 밀롱도 <조건없이 기본소득> 1장, 2장

2. 2/26 - 남성중심적으로 형성된 생산과 분배의 이분법
- 제임스 퍼거슨 <분배정치의 시대> 서론, 1장

3. 3/5 - 누가, 어떻게 개인이 되었는가
- 캐롤 페이트만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1장, 3장

4. 3/12 - 마무리 워크숍
- 김보화 <패러다임 전환으로써 기본소득과 여성에 관한 시론> (2010년 여성의 날 토론회 자료집)

✓ 매 주 한 사람 이상 1-2 페이지의 쪽글을 준비하여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눕니다. 신청 시 원하는 주차를 적어 위의 메일로 보내주세요.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2017 세미나 <여성X기본소득> 3. <남과 여, 은폐된 성적계약> 1장, 3장

게시자: 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 2017. 4. 12. 오후 5:29   [ 2017. 4. 12. 오후 5:57에 업데이트됨 ]



3/12/2017
4주차. 캐롤 페이트만 저. 이층훈 외 역, <남과 여, 은폐된 성적계약> 1장 및 3장

속기: 한주연
정리: 김신아, 한주연
1. 대담내용


사회계약의 숨어있는 이야기, 근대적 가부장제의 형성


K

8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다. 당시만 해도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부분에 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나름대로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버틀러가 이 책의 영향을 받고 이후 <젠더 트러블>을 집필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근대시민사회로부터 자유가 확대되었고 중세와 비교해보면 신에서 벗어나 개인이 중심이 된 사회라고 이야기된다. 정치적 결사체를 만드는 개인은 고립된 개인으로 전제되지만 이러저러한 특징이 부여된다. 페이트만의 경우 자유로운 근대시민사회가 출현을 설명하는 ‘계약론’에 숨어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봤고 그게 성적 계약의 이야기다. 성적계약을 통해 남성은 남편이 되고, 남편이 됨으로써 시민사회의 계약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는 여성, 아내라는 존재에 의존해서 그 사람들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희원  

생활속에서 체감한 이야기들을 사회계약이라는, 근대시민사회 태동시 형성된 구조로 돌아가 설명해주니까 잘 이해됐다. 예를 들어 자유권 다음에 사회권이 등장할 때도 여전히 남성 노동자 중심이었기에, 지난 책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남성-정규직-노동자 중심으로만 사회권, 분배계약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계약이라는 단어로 생각해온 것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돈을 동반한 계약이란 것의 힘은 정말 크다. 그것 없이 여성에게도 ‘시민'이라는 말로 퉁치면서 너희도 똑같은 시민이고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실제로는 기만이라 볼 수 있다. 돈을 벌 권리든 돈을 배당받을 권리든 마찬가지다.



지원

칸트의 이야기(p72)에서 계약이란 “단지 하나의 이성의 관념"일 뿐이다- 라고 하는 게 와닿았다. 모두가 평등한 개인이라는 관념이 인간 사회의 역사와 무슨 관련인지 보기위해 계약이야기를 본다면, 사회와 계약의 기원에 관한 가설을 읽을때의 의문과 이상함이 해소된다. 여기서 의문이란 계속해서 ‘자연상태’라는 걸 이야기 하는데 그게 대체 뭔가?라는 거다. 자연이라고 하면 여기서는 기술력이 낮은 부족사회 처럼 선형적 역사관에서 뒤떨어진 사회를 연상하게 만드는데, 실제로 부족사회는 그렇지 않았을 수 있다. 고전적인 사회계약론의 불편한 지점이다.


하지만 어떤 시대의 특수한 사고방식을 알기 위해 이 고적적인 사회계약론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3장에서는 노예제에 관한 논의에서 신체의 소유, 장기 매매에 관해 다룬다. 왜 개인이 자기 몸을 소유하는 데 내 걸 마음대로 못 팔게 하는지. ‘개인'은 나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런 의문들에 대해서, 나 자신과 나의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 공부해 볼 필요는 있다.


신아

근대적 가부장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파악한다는 의미로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거 같다. 가부장제의 형성을 역사에서, 종교적 상징에서, 친족관계와 여성 교환의 구조에서 찾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이 텍스트의 고유함은 근대의 출발을 제공했던 이야기, 우리의 관념을 형성했던 정치철학적인 이론들로부터 가부장제를 설명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어떻게 공적영역이라는 것이 근대적 가부장제를 통해 만들어져 있는지를 파헤친다. 가부장제의 문제가 여성의 영역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거다.




공허한 구호로서의 여성 시민권


주연  

여성은 계약할 능력이 없다면서도 혼인 계약에는 반드시 들어온다는 모순을 짚어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희원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자는 이야기가 실재하는 경제적, 성적 격차를 무화하는 단어로 쓰이곤 한다.


K

여성 시민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부양자 피부양자가 존재하는 4인가족에 맞춰 설정해 둔 임금, 사회적 혜택, 사회복지 문제에서 여성은 차별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구조적/제도적 체감을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이 텍스트는 유효하다.


남성이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페이트만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계약 자체를 비판하는 것 같다. 사회 계약과 성적 계약으로 만들어진 자유와 예속의 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소득과 같이 이야기 해야 한다.


경아

경제적 주체가 되어야지만 배제되지 않기에 여성들도 개인 1인이 되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등가교환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이 복잡하게 설계된 계약이구나 싶다.




“개인/시민/공동체 라는 말 모두 여성인 나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주연

기청넷에서 말하는 ‘개인’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희원

일종의 선언, 구호로써의 개인이다. 시민사회에서 공동체주의가 더 강조되고 있고, 연대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너무 언어가 안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구호로써 더 먼저 나온 맥락이 있다. 또, 기본소득을 구성하는 요건 중에 개인성이 가장 이야기가 안되더라.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살고 싶은 삶의 양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는 개인성과 현금성이 중요한 요소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이 키워드를 통해 1인가구의 입장에서의 기본소득이라든지, 그런 새로운 이야기를 좀 더 꺼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개인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써야할 지 너무 어렵다. 어떨 때는 책임을 퉁치기 위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고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사적인 일들을 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개인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필요를 생각한다.



지원

페미니즘에서 개인을 강조할때, 그 개념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관념이 녹아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을 포기할 수는 없다.



희원

나의 개별적인 경험에 대한 정당성을 얻는 데에도 개인으로서의 권리 같은 게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아

경제적으로는 1인가구를 많이 이용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한 개인의 삶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소비할 수 있는 1인가구는 환영받지만 정치적 의견이나 의지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1인가구는  거부한다. 1인가구를 정책적으로 소외시키려는 의지가 강해보인다.



희원

개인을 단순히 ‘원자화된 개인들', 분리되어 있고 공동체를 이룰 역량이 없는 청년들이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일본처럼 문제가 될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분위기에 휘말려서 4인가구를 만들고 싶진 않다.


정치가 공적 영역으로만 치부되는 건 문제다. 가정의 일, 가정의 문제도 정치다-라면서 육아공동체가 회복되고, 어머니들의 과거의 공동체같은 호혜적 공동체를 방법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는 전근대로 돌아가는 것도 싫다.


K  

원자화된 개인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게 공동체로 어물쩡 넘어가면 안된다. ‘소유적 개인', ‘근대적 개인'은 폐기되어야 한다. 가부장제가 되었든 시민개념이 되었든 한국은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혼종적인 측면이 있다.


어떤 단체든 조직이든 규모가 커지면 파쇼적이 된다는 걸 느낀다. 제도정치권이나 지식인들 보면 여전히 가망없다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느슨하게 치고 빠지고 연대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유일무이한 운동이 아닌가.


희원

저번 시간에 다뤘던 <분배정치의 시대>의 “나는 집을 가질 권리가 아니라 집을 원한다”라는 구절과 이번 텍스트의 “ 그들은 자신들이 노예라고 답해야만 할 때, 단지 가난(불평등)하다고만 대답한다.” 가 서로 겹치면서 대치된다.


주연

개인/시민/공동체 라는 말 모두 여성인 나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여성인 나를 설명하는 말은 정말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 시민권에 대해 요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와 닿았다. 기존의 '개인' 관념은 남성시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시민권을 이야기 할 때 새로운 개인에 대해 생각해보고, 기존의 시민 관념에 도전해야 한다.


신아

전에는 개인이라는 말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저번 텍스트에서도 이번 텍스트에서도 요즘은 ‘의존'이라는 말에 더 관심이 간다. 저번에 사람구실을 하기 위해선 ‘의존'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의존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 사이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관계지향적인 면, 돌봄의 가치를 찾아내고 재가치화하는데 그게 너무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돌봄과 친밀성에 능한 것이 저 자신에게 또 다른 강요가 되기도 하며, 돌봄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그치만 여성들간의 관계가 삶을 지속하는 데 되게 많은 힘을 주고 있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의존성이라는 말, 돌봄이라는 말을 요즘 세미나 하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경아

의존에 대한 개념이 바뀌는 것은 기본소득의 맥락과도 겹치는 것 같다. 의존하면 내가 수동적인 존재, 시혜받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도움을 안받을 수 없는 것이다. 도움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K

시민, 돌봄, 개인 같은 용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뮬레이션 하고 안맞아보이면 뭐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 고립된 채 아무것도 안하는 채로 살아질 수는 없다. 그 사람들이 의존성을 거부하는 건 아니지 않나. 용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거 같다.


희원

나는 사람들이 단어를 사용할때 단어가 가진 이야기를 유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공동체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유통시키는 게 중요할 것 같다.



2017 세미나 <여성X기본소득> 2. <분배정치의 시대> 서론 및 1장

게시자: 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 2017. 4. 6. 오후 8:10   [ 2017. 4. 8. 오후 9:16에 업데이트됨 ]



2/26/2017
3주차. 제임스 퍼거슨 저. 조문영 역, <분배정치의 시대> 서론 및 1장

속기: 김신아
정리: 김신아, 한주연

1.발제내용



발제 1 - 김지원



<여성과 기본소득> 세미나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세미나의 목적 중 하나로 소개된 ‘기본소득의 의미를 풍부하게 확장하기’였다. 나는 지난주에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읽기 전에 (바로 저자인 밀롱도가 비판했던 것처럼) 시혜의 차원에서만 기본소득을 생각했다. 최저시급의 개념과 별다른 구분 없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읽으면서 기본소득이 제도의 도입 뿐만 아니라 여러 맥락에서 기존의 개념들을 새롭게 정의하기를 요청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는 돈, 가치, 개인, 시민(권), 일 등의 개념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고, 기본소득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검토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건 없이 기본소득』 1, 2장을 읽으면서 그러한 문제의식은 갖게 되었지만 사실 여러 개념들의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한 구체적인 논의가 어떻게 가능할지 좀 모호하다는, 혹은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비해 이번주의 『분배정치의 시대』는 여러모로 나의 생각을 자극했다. 저자는 사회과학의 굵직한 지적 계보, 특히 (경제)인류학의 공헌을 토대로 (혹은 그것들에 도전하여) 새로운 제도의 실행과 동시에 새로운 사유의 방식들을 탐구한다.


퍼거슨의 기본소득 논의의 지역적인 무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1994년 정권을 잡은 남아공의 ANC(아프리카민족회의)는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정치적 평등은 얻었지만 경제적으로 배제된 흑인 빈민 계층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다. ANC는 이들을 위하여 (명목 상 조건은 있을 지언정 실질적인) 보편적 현금지급 기본소득을 시행했고, 남아공 인근 국가들도 이 추세를 따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글로벌 남반구 복지국가모델은 기존의 북반구 복지국가모델과는 매우 다르다(사실 각 모델이 구상된 배경이었던 (각 국가들이 놓인) 조건부터가 달랐다.) 우선 모두에게 지급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남성 생계부양자와 여성, 아이, 노인 피부양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는 마르크스 이후 계속되어온 생산-노동-독립-남성 대 분배-소비-의존-여성이라는 아주 오래된 이분법적, 위계적 사고에 대한 도전이자, ‘권리’를 ‘소유’하며 ‘노동’하는 ‘독립적인’ ‘성인 남성’으로 상상되는 근대적 개인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이는 곧 “북반구 복지국가 시스템에 오랫동안 뿌리 박힌 가정생활 구조를 통치, 감시하려는 야심과 결별(63쪽)”을 의미한다.


경제인류학과 여성주의 인류학에서 발전된 논의들은 이러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적 자원을 제공했다. 예컨대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증여와 답례 체계를 바탕으로 부유하게 살았던 멜라네시아 부족들은 추상화된 법, 경제적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개인과 집단을 분리하지 않고 혼동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부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필요의식으로 증여를 생활화하게 되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부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성질에 대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증여는 답례를 전제로 하며 관계의 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증여론』의 골자처럼, 개인과 개인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관계의 의존적인 혹은 독립적인 측면만 강조될 수 없다. 또한 증여 체계를 통해 멜라네시아 부족들이 지킬 수 있었던 자유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부로 인해 지배당하고 구속당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다. 우리는 ‘의존’을 열등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해왔지만 사실 의존하지 않는 삶이란 불가능하며, 의존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소유’에 근거한 근대적 인간관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때 ‘소유’는 단순히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 개념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유’는 ‘개인이 사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하고 (대개 이는 사유재산을 자연(토지)에 대한 인간의 투자와 노동(성과)으로 정의하는 것과 직결되고, 따라서 생산으로서 규정된 노동에 대한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 그 역사가 홉스와 로크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으로 서구 근대 사회의 특수한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에 기반한다. 퍼거슨이 인용한 크로포트킨(Kropotkin)의 “과거든 현재든, 어떤 사상이든 발명이든 공유재산이 아닌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 광활한 전체에서 한 조각이라도 떼어가려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권리로 이게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너의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119쪽) 하는 문제제기는 인류학자들이 비서구사회에서 발견한 ‘소유하지 않으며 존재하고 관계 맺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한편 저자는 공적/사적 영역의 위계적 구분에 대한 상징분석을 통해 여성의 종속적인 위치를 문화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며 인류학계에 여성주의적 시각을 처음 도입한 미셸 로잘도를 인용하며 분배-소비-의존에 대한 평가절하가 여성에 대한 폄하와 쉽게 연결된다는 점을 주장했다. ‘건강한 성인 남성’에게 “노동교환이 아닌, "물고기를 줘라"라는 식의 분배라는 유령은 바람직하지 않은 수동성과 여성성, 즉 개발과 사회적 지원에 관한 정책 담론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의존성'을 환기(101쪽)”시키며 젠더 공포상태를 유발한다. 이와 같은 논리가 쉽게 납득이 되면서도, 한국의 상황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의 가부장은 제대로 가부장적이지도 않다’는 농담 아닌 농담처럼) 서구의 가부장적 생산주의와 동아시아, 혹은 한국의 그것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논의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나는 예컨대 군대를 둘러싼 논의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성들은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군대라는) 의무를 먼저 수행하라”는 식의 주장들이 한국의 가부장주의, 한국의 남성성이 무엇인지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한국의 젠더 정치를 고려했을 때 저자가 제공하는 여러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변형, 활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토론거리>


  1. 저자는 글로벌 북반구/남반구의 복지 모델을 비교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복지 모델, 대한민국의 복지 모델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남성성 등은 글로벌 북반구/남반구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르고 그것이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1. “집을 가진 권리가 아닌 집을 원한다.” 나는 이해가 갈 듯 하면서도, 구체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물질적인 것을 제공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 “…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노동을 누구도 원하지 않게 된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권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 권력이란 가난해지고 역사적으로 배제된 일련의 '빈자' 대중(masses of the 'poor')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적 지배체제 내의 정치적 권리를 말한다.”(56쪽) – 남아공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 저자는 이것이 세계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한국도 그러한가? 다수가 빈자임에도 불구하고, '받는 자'에대한 혐오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며, 마치 여성혐오가 그렇게 작동하듯, 빈자들 자신조차도 그 혐오를 내면화한다. 의존성, ‘받는 자’에 대한 혐오는 어떻게 극복 가능한가?



발제 2 - 이용상



남아공의 경우, 최슨의 한 평가가 지적하듯 “사회급여가 빈곤을 완화하는데 정말로 성공적이었다”는 합의가 폭넒게 형성되었다. (48p)


  • 기존의 노동자로서 권리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오늘날 구조조정을 거친 자본주의는 이주노동 시스템이 만들어낸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들을 더는 충분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내일 최소 1,000만명이 갑자기 죽는다 해도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에서는 잔물결조차 일지 않으리란 건 사실입니다. (55p)


노동이나 재생산 개념이 아니라 시민권과 정치적 압력 같은 것을 토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일련의 재화와 서비스를 ‘전달할’ 필요를 느껴왔다.


  • 제1세계 복지 시스템과의 다른 부분

유럽 복지국가의 설계자들은 사회부조 프로그램들이 ‘발전된’ 산업경제와 적어도 최소한 남성 ‘가장’의 완전고용 달성을 전제로 한다고 가정했다. … 식민지 세계에서 태동한 ‘복지’ 제도들은 주로 백인들과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다. … 북반구에서 이루어진 급여의 핵심 개념은 종종 남성 ‘가장’으로 당연시되는 ‘생계부양자’와 그의 ‘피부양자들’에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안전망’이었다.


남아프리카 제도는 일반 국고에서 자금이 나오고 수혜자들의 사전 ‘기여’를 참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각출적이다. 그러한 급여제는 개개인의 고용이력을 참조하지 않으며, 대신에 일례로 연금의 경우 절대 연령, 육아보조금의 경우 자녀수와 같이 노동과 무관한 기준들을 토대로 한다. 게다가 보조금에 의존하게 된 인구가 절대 다수라는 점은 비정상적 상황을다루기 위한 예외적 조치로서의 ‘안전망’ 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다


  • 각종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 지점들

여기서 가난한 여성들이 단지 소득을 얻기 위해서 아이 출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별로 탄탄하지 않다.여러 연구가 육아보조금이 도입된 이후 출생률은 실제로 떨어졌거나 안정화 추세임을 밝힌 바 있다.


현금지급이 노동시장 참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많은 연구가 현금지급이 구직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해주거나 곤궁한 지역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고용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새로운 현금지급 프로그램이 북반구 복지국가 시스템에 오랫동안 뿌리박힌 가정생활 구조를 통치, 감시하려는 야심과 결별했다는 것이다. … 실제로 보조금을 받는 ‘주요 돌봄제공자’ 는 아이의 부모일 필요도, 심지어 친척일 필요도 없다. 사회복지사의 성가신 개입을 통해 도덕적인 가족규범을 적용하려는 것으로 악명 높은 전통적 북반구 제도와 달리, ‘진짜 부모’를 가려내거나 친부의 책임을 부과하록, ‘올바른’ 행동이나 가족형태를 강제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젠더, 연령, 고용상태나 가족구성을 전혀 기준으로 참조하지 않고 사회급여가 이루어지며, ‘건강한’ 노동연령대의 남성들도 수급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임금을 벌어들이는 능력을 통해 사회적 권력을 행사했던 젊은 남성들의 지위가 약화되고 불안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미미했던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연금생활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점 또한 명백하다.


Q. 한국 사회구조에서 기본소득을 설득할 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2. 대담내용




한국, 여성, 기본소득


용상

한국은 북반구와도 남반구와도 사회경제시스템이 다른데 (그와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기본소득을 설득할 수 있을까.


주연

책에서 ‘복지모델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갖지 말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유모국가’나 ‘복지의 여왕’이라는 프레이밍을 할 만한 시스템을 사실 우리 사회는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지원

그래서 신선했다. 복지모델에 대한 논의를 보통 그렇듯 북유럽 국가 사례에서 시작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남반구의 사례들로 이루어져 있다.


주연

첫번째 발제의 토론거리에 대해 - 저자는 글로벌 북반구/남반구의 복지 모델을 비교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복지 모델, 대한민국의 복지 모델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남성성 등은 글로벌 북반구/남반구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르고 그것이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지원

저자는 의존적인 것, 돈을 받는 것이 남성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의 의존을 정당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용상

이 책에서 의존에 수치심을 느끼는 남성성은 여성에게 “내가 돈벌어올게, 너는 집에만 있어” 라고 한다면, 한국의 남성성/가부장은 여성에게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해”라고 하는 식이다.(웃음)


지원

그런 차이 때문에 서구에서 여자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쉬운 반면, 한국에서는 좀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다.



주연

동아시아의 근대성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과 국가를 가정처럼 보는 가족이데올로기가 뒤섞여있다. 대만, 홍콩, 일본 등의 국가들은 강한 가족국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남성부양자모델을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민은 산업역군이고, 그 국민의 기본값은 남성이며 여성은 그 남성을 돌보고 뒷바라지 하도록 전제되어 있다.  


K

서구는 이른바 근대적 가부장제라면 한국은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겠다. 서양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갈 때 마초, 기사도 정신이 이어져오면서 남성성이 만들어졌는데, 한국의 남성성은 그런 문화로부터 탄생한 게 아니지 않은가. 풍요로운 시대에는 몰랐다가 경제가 악화되면서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는게 지금의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연

그래서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해서는 서구와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원

한국적인 가부장주의, 가족주의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가정생활을 통치하려는 국가의 의지와 결별하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제도가 어떠한지는 모르지만 건강보험제도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구성원들이 가족 단위의 책무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런 조건들이 변하지 않으면 기본소득이 실패하게 될 것 같다.  


경아

시기는 현대인데 우리는 현대적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이 힘든 점이다.


주연

기본소득을 매개로 다양한 논의가 나온다면 가족제도의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 한편에서는 파트너등록법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을 기본소득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주연

어제인가 트위터에서 분노의 타임라인이이 형성됐다. 고소득 고학력 여성은 결혼시장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스펙’을 적당히 만들고 결혼해야 한다는 공공기관의 연구 보고서 때문이었다.


소득과 학력에 상관없이 결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 젊은 2-30대 여성들, 다른 형태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 운동과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완전히 벗어나 있는 국가. 이것이 기본소득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희원

요즘 대선정책으로 기본소득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사실상 사회수당이 기본소득의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 복지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수당(학생수당, 아동수당 등) 등의 현금지급정책이 한국에서는 전무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면서 말이다. 이런 논의들보다 앞서서 가장 진보적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본소득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들이 나와야하지 않나 생각이 들고, 그 주체가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은 자기가 만든 아젠다로써 기본소득을 얘기하고, 그것이 화제가 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을 부각시키는 것 같다. 이재명시장의 연100만원 주겠다는 정책이 별로이든, 당선후 정책이 실패작이 되든, 그것은 기본소득의 본질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띄우는데 급급한 실정에서 여성은 덜 부각되고 있는 것 같고. 개인에게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준다는 그 부분에서 자유로운 정책이라는 것이 논의가 되어야 한다.




빈자대중의 형성과 의존에 대한 혐오



주연

한국에서 일련의 빈자대중이 정치적 기반이 된다는 게 가능한가.


지원

민주주의하에서 빈자대중이 보편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 정치적 기반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우파를 지지하는 경향도 있다. 혹은 특수하게 극단화되면 진보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또, 의존에 대한 혐오는 여성혐오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의 전환을 전제로 기본소득이 ‘받는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까?

희원

제가 만나 본 개별적인 케이스로 보면 기본소득을 쉽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프리랜서나 예술가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충분하게 보상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자기검열이 낮다는 느낌이 있다.


기본소득을 얘기할때 공동체주의적인 지향이 있는 분들은 ‘다같이 사람답게 살자’고 말한다. 한국에서 빈자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동체가 있어 가시화되었는데 흩여졌고 쫒겨나서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가시화되지 않으면 정책대상이 되기도 어렵다. 내가 느끼는 것은 빈곤이 특정한 빈자주체의 상황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다들 가난하고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지 않고 당당하게 이것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인 것 같다. 이 문제를 직면하는게 나을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파트너법 같은 것으로 연결시키는게 좋을지.


주연

전자의 방식이 가능하려면 대중적인 홍보와 설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원

파트너법 이야기만이 아니라 자기이야기를 하면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주연

그렇다. 다양한 욕망들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K

정책입안하는 사람들은 가난이 뭔지 정말로 몰라서 그런 정책을 세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원

기본소득을 원하는 시민으로서 관료들의 무능함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은 현장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그것을 겪은 관료들이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현장에서 ‘우리만 죽어나는 상황’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너무 무능하니까 차라리 개인에게 주자고 주장할 수 있겠다. 정책만드는 사람들은 성과안나면 어떡하지 고민하지만 사실 돈을 주는 것 자체가 곧 성과인 것이다.


지원

개발의 혜택이 사회적이나 정치적이 이유로 빈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성과는 중시하는데 돈은 안가는 예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희원

현재의 복지정책은 부정수급/중복수급 막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현재와 다른 정책을 먼저 시행해서 효과를 경험을 하게 하고 시스템을 무효하는 방향을 제안할 수 있다.


용상

성남시 청년수당 경험해본 사람들이 이것을 받았더니 좋다고 이야기 하지 않나. 소득을 받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을 국가레벨이 아니더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경아

한국은 시간적 여유없이 정책을 시행하는 것 같다. 정책이 뿌리내리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씨뿌리자마자 추수하기를 원하다보니 그렇다. 일단 주고 좋은 것을 느끼게 하려면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조급한 행정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지원

조급하게 성과를 바라다보니 가시적인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집을 가진 권리가 아닌 집을 원한다.”



지원

토론거리에 썼듯이 “집을 가진 권리가 아닌 집을 원한다” 라는 말이 이해가 갈듯 하면서도 구체적인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


주연

‘너는 ~할 권리가 있다’는 말에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상황들을 고려하게 하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희원

여자들이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다고 하면, 남자들이 ‘그래 그렇게 해’ 라고 하는 것과 유사하게 이해된다.


지원

분배정치는 노동중심, 생산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분배중심의 패러다임으로 가는 걸 말한다. 여자들이 어떤 자리에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자리 그 자체를 갖는 것이라고 본다.  


희원

분배와 정치를 결합시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구의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보면,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나온 뒤에 민주주의가 나오기도 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민주주의가 좀 더 활기를 얻을 수도 있다.


주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일종의 ‘기반’을 느껴보는 경험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디서 받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내가 딛고 설 ‘기반’이 물적으로도 비물질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은 채 30대 40대까지 기반을 구축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게 된다. 나에게 돌아올 몫은 과연 어떻게,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 개인들을 계속 괴롭힌다.


지원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족주의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내가 이렇게 받아도 되는건가, 국가가 이것을 왜 나에게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의문들로 나타난다.


희원

국가대신 사회를 상상하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가는 실체가 뚜렷한 시스템이다. 미국에서의 논의를 참조하면, 시장이 망하지 않으려면 중산층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일자리가 그만큼 안나오기 때문에 이런 제도를 통해서 중산층을 유지해야한다는 논리로 기본소득이 이야기된다.


기본소득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빈자를 위한 기본소득은 레토릭으로 잘 안먹힐 것 같다. 왜 줘야하냐는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과 함께 갈 수 있는 제도들이 뭐가 있을까. (파트너등록법, 한부모지원법, 돌봄제도 마련)


2017 세미나 <여성X기본소득> 1. <조건없이 기본소득> 1, 2장

게시자: 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 2017. 3. 28. 오전 7:07   [ 2017. 4. 8. 오후 9:23에 업데이트됨 ]


2/19/2017
1주차. 바티스트 밀롱도, <조건없이 기본소득>

속기: 한주연
정리: 김신아, 한주연

1. 발제 내용
























첫 번째 발제자 - 경아


나누고 싶은 질문과 발췌 내용

Q. 기본소득 실현가능한가?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하지 않을까?


A. 기본소득은 반성장, 반생산, 반소비 근간을 둔다. 모든 사람(부자,빈자,사회적 소외계층)이 조건없이 받을 수 있는 현금소득이며, 가난을 증명할 필요도 없이, 존재만으로 사회적인 부의 형성에 기여하므로 받을 권리가 있다.


[경제학자 베르나르 프리오의 평생월급(사회적인 부 창출에 기여계급에 따른 차등지급)과는 차이점을 가진다. 그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의 예비 타이어라고 비판하며 평생월급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비용이 아니며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투자이다 과거 서구에서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에서 변형된 기본소득 실험(음의 소득세,시민소득)이 있었으며 신뢰와 연대를 기반으로 현실적인 사회대안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또, 기본소득은 사회 분열이 아닌 의견 분열의 길을 연다.


좌우파, 성향 노선(자우경제주의,반자본주의)을 떠나 기본소득이 가져올 사회 변혁의 규모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기본소득이 사회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생활 안정, 부의 재분배 등의 목표를 더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어야 한다. -53쪽


만일 우리가 실제로 소비와 일, 소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고통도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일을 덜할 것이다. 소비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고 휠씬 덜 일하려 할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벌기를 원하진 않는다. 살던 방식 그대로 살고자 하며, 그렇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벌기를 원한다” - 134쪽


때로 사람들이 기본소득에 회의감을 품고 있고 이 제도를 깊이 불신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부와 일이 새로이 분배되는 신사회 모델을 탄생시킬 것이고, 오늘날 패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승자로 만들 것이란 점을 잊어선 안된다. 정치 판도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오늘날의 '패자'들은 정치에 거의 관여할 힘이 없지만,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아래에서부터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187쪽


기본소득이 도입 안되는 이유는 기본소득이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기득권자들, 가진 자들의 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기본소득은 개인들이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자유가 바로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슈퍼부자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호주머니에 지금 당장 기본소득이라는 돈이 들어 있는데 누가 그들을 섬기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일과, 또한 일에 늘 따라붙는 일의 가치는 훌륭한 사회적 통제 수단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을 착취하고 노예처럼 부릴 수 있었다. 아무런 조건도 붙이지 않고 일정한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 이는 사람들을 조종할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 쟁취해야 할 것이다. - 189쪽


현재 진행중인 기본소득 논의 중 흥미로운 부분


프랑스: 월평균 생활비 1840유로 (287만원): 최저 생활비 1500유로 (183만원)

프랑스에서는 한국처럼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정치인이 대선후보로 등장했다. 집권 사회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브누아 아몽(50) 전 교육부 장관은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600~750유로(약 73만~92만원)를 주겠다는 공약을 했다. - 중앙일보 2016.2.7일자


한국: 최저 생활비 166만원 4인 가족 (*한국현실 한번에 이해하기: 실업율,행복지수,인구밀도 등)

2014년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 설계도 > 인구5천명 기준 1인 월 30만원 기본소득지급 기준: 세금 소득세. 생태세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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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제자 - G


<하고싶은 것 <도> 하는 삶을 위하여>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월요병 없는 직장인되기”다. 참 모순적인 문장이다. 월요병을 없애려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직장인이 될 수 없다. 적성에 ‘1’도 안 맞는 일을 하는 1년 동안, 나는 일과 노동, 자유라는 개념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살림살이가 나아지니 생각이 깊어진 것일지도?) 그러다 우연처럼 만난 ‘기본소득’이란 개념이 나에겐 해답 같았다.


#. 기본소득은 개인을 사회, 물질적으로 자유롭게 해 준다. 생존의 문제에서 놓여나고, 고역 같은 일에서 해방시킨다. 시민 각자가 자신이 선택한 일에 몰두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 각자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사회적인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고 인정한다. 이러한 인정은 사람들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에 대해 보상을 해 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더 쉽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려도 한다. 기본소득 자체가 사회 참여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27년간 사회가 밀린 체불임금까지 받아내야지!!) 이는 사회가 주는 월급이다. 여기에는 베르나르 프리오가 말한, 일을 꼭 일자리로만 축소해서 말할 수 없다는 정당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퇴직자들도 일을 하고 자원봉사자, 대학생들도 일을 한다.(103p)


‘일’에 대한 개념이 확장된다면, (이를테면 가사노동, 봉사활동, 잉여생활까지도 ‘일’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기본소득으로 더 큰 자유를 얻는 대상은 여성이 아닐까? 내가 입사하고 들은 가장 모욕적인 말, “너는 이제 회사 못 그만둬, 27살 여자 신입을 누가 뽑냐? 넌 이제 빼박이야.” 말을 세게 하긴 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2016년 입사동기 50명 중 남자동기 6명이 나가는 동안, 여자 동기들은 대동단결 버텼다. 퇴사한 여자동기는 한 명도 없다. 동일 조건의 대졸자라도, 대기업의 문은 여성에게 더 좁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주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가 생긴다면, 남성중심적으로 짜인 대기업에 혹은 제도권 근로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급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에서 고착된 이런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다. 이미 소득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처음 잡히는 아무 일에나 매달릴 필요가 없고, 착취당하는 임금노동자 생활을 체념하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의 반자본주의적 측면이 엿보인다. 기본소득이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47p)


#. 기본소득은 이윤극대화라는 자본주의 욕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장’ 이라는 미친 경주의 트랙에서 구출하고, 물질적 구속에서 놓여나게 한다. (36p)


여전히 기본소득 앞에 놓인 숙제가 많지만, (이를테면 충분한 액수, 지급방식에 대한 논의, 그에 앞선 많은 오해에 대한 해명(?) 등) 기본소득이 가진 전제들이 사회구성원들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하다.

-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

1. 당신은 무엇을 ‘일’ 이라고 생각하나요?

2.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일’을 안 할 건가요?



2. 대담: "최대화된 최소의 세계를 넘어"


들어가며


G


"가사노동도 일의 범주에 들어갈 뿐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아


"(책 속에서) 사람들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걸 가정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G


"‘히키코모리도 일을 한다’라고 하는 부분도 있다."


지원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공감은 갔지만,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회적 부, 사회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사회적인 가치의 창출에 기여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기여, 유용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가'로서의 기본소득의 의미에 집중하기 보다는, 존재함으로 인해서 받아야 하는 걸 강조하는 게 좀 더 공격받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인 부라는 게, 계속 괄호치고 (자본만이 아님)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과연 어떤 걸 말하고 싶은 건지 모호하다."


희원


"그런데 항상 기본소득 이야기할 때 만나게 되는 딜레마가, 말한 것처럼 차라리 정치적 자유권처럼 인권처럼 보장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가치가 더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일이란 무엇일까 - 기본소득이 바꿔낼 수 있는 일의 개념


희원


“가치를 나 혼자 창출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성원과 연결되어서 만들고 순환시키는 게 일이 아닐까. 가사노동은 가정 안에서 돌아가는 게 사회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게 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이 될 가능성의 시간에도 가치가 있다. →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K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전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 끌리게 됐다. 그리고 그 전제와 일에는 큰 관계가 있다. 아렌트가 ‘일'의 세가지 action, work, labor로 구분했던 당시 사회랑 지금과는 다르지만 노동이라는 개념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데에 기본소득이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 히키코모리 활동이든 단순하게 숨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가치가 존재한다고 본다면.


사람들이 ‘사람구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세상에 쓸모있는/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이, 어딘가 떳떳한 직장에 자리하고 생애주기에 따라 단계를 밟아서 수행하는 사람구실로 향하는 게 아니라, 기본소득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 자체로서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구실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사람구실’의 의미를 바꿔내야 한다."


희원


"사람구실을 하기 때문에 주는 게 아니라 사람구실을 하기 위해 줘야 한다. 정책 설계할 때 안보는 영역 → 노동생산 인구, 경제활동 인구, … 이런 것만 보고 위에서의 계획-과학적인 행정적인 합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비합리적으로 만들어간다. 그런데 개개인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런 행정적 합리성으로는 알 수 없다."


주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난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 다양한 노동을 인정받으면서 말이다. 오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임노동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일 하는 걸 오히려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이런 나의 성향이 ‘신자유주의의 아이인가!!’라는 생각도 해봤지만(웃음), 그게 아니라 기본소득을 받으면 오히려 '제대로' 일하게 될 것 같아서다. 지금은 임노동 외의 일은 엄두도 여유도 없어서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임노동은 원하지 않는 일을 어거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 저쪽 둘 다 괴롭다.


내가 좋아하는 일, 또 나의 노동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싶다. 사회에서 성원권을 가지고 개인으로 서고 싶다."


경아


일에 대한 아이덴티티, 전문가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기본소득이 큰 도움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을 통해 자기 ‘일'을 찾는 데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지원


학생도 직업이다- 우리도 일 하고 있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있고 뭔가를 습득하고 지식을 생산하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등가로 매겨진 ‘화폐 가치'로만 매겨서는 안되겠다. 기본소득이 그 가치체계를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아


임금 노동을 하지 않아도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있지 않나. 의미를 만들고 싶고 의미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이런 것들은 노동 시스템의 ‘밖'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그런 의심을 안해도 되고, 이런 일들을 더 늘릴 수 있다. ‘활동'의 개념이 확장된다면 이분화된 공/사 영역 역시 지금보다 확장될 수 있다. 지금은 자본이 흐르는 게 ‘공적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여성의 일'이란


주연


"여성의 일이란 뭘까? 여성이 개인으로 서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다. 현재의 노동체계/임금노동 모델 자체가 가부장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이런 것들이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신아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일단 여성에게 “가사노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자유가 생길 수 있다. 어쨌든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 선택지가 생긴다는 것이 보이지 않던 가사노동을 보이게 하는 일이다."


주연


"가사노동이 화폐가치로 나타나는 게 돌봄노동의 가시화냐 혹은 물신화냐는 논쟁이 있다. 이때 남성이 공적영역이고 여성의 일은 사적 영역으로 이분화되어 왔던 시스템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여성의 일이 공적 영역으로 갈 때 이분화가 오히려 확실해지는, 경계를 긋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신아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가사노동의 가시화는 여성이 선택할 자유를 확대하는 것으로 의미화하는 게 옳다고 본다."


"‘태스크 래빗’처럼, 심부름 및 다양한 노동을 대신해주는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등장 초기에 그런 부스러기 노동에 대한 남녀 성역할을 없애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노동들은 사실 상 젠더 편향된 성역할이나 임금구조를 깨지 못한다. 따라서 노동구조나 임금구조, 산업구조만 개편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젠더문제를 늘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왜 현금을 줘야 할까


경아


"현금을 왜 줘야 하는 지 설명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현재 성남시가 상품권을 주는 것을 보면서 상품이든 현금이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만약 기본소득이) 시행 된다면 현금을 주는 게 가장 맞는 것 같다. 현금소득이 있어야 오히려 과소비를 안할 수 있다는 부분이 와 닿았다."


"윗 세대들이 '일 하지 않는 자 밥 주지 말라' 식인데, 그런 생각의 타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전체적인 가치관을 전복하는 것. 3장에 나오는 게으를 권리: 좌-우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변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말고 효율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게 좋았다. 사람의 삶이 늘 효율적일 수 없다."


주연


"학생 때 정말 절실히 책이 너무 갖고 싶은데 돈이 늘 부족했다. 그때 불현듯 기본소득의 현금 지급에 대해 확 와 닿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책이 아니라 영화를 원할 수도, 새 옷을 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다양하고 그걸 일일이 재단해서 제공하고 지급할 수 없다."


"때때로 기본소득을 이야기 할 때 과소비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의 소득이 있어본 적 없어서, 기본소득이 과소비로 연결된다 라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웃음) 소비로 자아를 마음 껏 표현해본 경험 자체가 없다. 그래서인지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 중 과소비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안 와 닿는다. 저희 세대는 돈이 너무 없기 때문에 1만원짜리 디저트가 최선의 사치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신아


"돈이 너무 없으면 거대기업에 도움을 주는 소비 밖에 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다. 유니클로 H&M… 등."




기본소득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시작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


주연


"기본소득이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한 건 아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을 통해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희원


"'기본소득 받으면 사람들이 ~할 것 같은데?' 라는 말 자체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사회를 보고 있는 지에 대한 생각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용상


"거의 모든 걸 이마트 노브랜드 제품을 사다가.(웃음) 요즘 젊은이들은 아껴 쓰다가 가도 해외 여행 간다~ 막 이런 이야기 하는데. 사실상 우리 세대는 집도 차도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소비가 늘어난 거다. '사람은 늘 생산적인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도, 늘상 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생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기본소득이 그런 종류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압박감을 없앨 수 있다."


주연


"한국에 너무 없는, 이 사회에 있는 나/우리가 '바닥을 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일종의)청년수당을 받는 덴마크 친구가 ‘나는 우리가 절대 바닥을 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이야기 할 때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바닥을 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 그게 되게 중요하다. 나 혼자 성공해서 바닥 치지 않는 걸로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부모로부터 일종의 기본소득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부모의 돈으로 연명하게 되는 개인화된 안전망들을 기본소득으로 어서 대체 해야 한다."


희원


"기본소득의 기회비용이 있다면 국가가 보장하는 여러 정책들과 놓고 비교해보는 게 적절하다. 한 사회, 국가 전체의 자원을 개개인들의 자유와 권리,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쓸 것인가. 국가가 개인에게 줄 것인가, 기관을 만들고 통제할 것인가."


"기본소득 - 소비/생산/젠더/일/세대 등 다양한 것들과 연관된다. 따라서 나에게 기본소득이 무엇과 가장 연결되는 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 기본소득을 가지고 사회 내에 자원이 부족해지면 생기는 젠더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 지,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우선일 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작될 수 있다."





2017 세미나 <여성X기본소득> 0. <자기만의 방>

게시자: 네트워크 기본소득청'소'년, 2017. 3. 26. 오전 4:40   [ 2017. 4. 8. 오후 9:20에 업데이트됨 ]


2/12/2017
0주차.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속기: 한주연
정리: 김신아, 한주연

1. 발제 내용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돈을 벌며 그 돈으로 방을 빌리는 내가 페미니스트로 살기 위해서. (김신아)>


 ‘소설과 여성’이라는 주제의 강의로부터 발전한 이 글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세상에 무언가를 창조하려 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불안정하며 충분하지 않은 방과 돈을 가진 내가 어떻게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덧붙여 보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메리’라는 여성작가를 화자로 만들어 글을 전개한다. 잠깐 언급될 뿐이지만 메리는 여러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보이고,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재능과 영혼이 소멸하는 듯한 괴로움’이 잇따르는 일이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숙모의 죽음으로 매년 500파운드를 상속받게 되면서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메리는 이렇게 말한다.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60)

“그리고 일이 년이 지나자 연민과 관용도 사라지고 가장 커다란 해방, 즉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가 생겨났습니다.”(81)


 메리에게 찾아온 변화, 가난에서 해방되었을 때 마음속의 증오심, 쓰라림, 미움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사고의 자유를 갖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에 가난과 창작의 관계에 대한 울프의 핵심적인 논의가 제시된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예 창작이 불가능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창작하는 데 적합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난하다. 여성은 남성에게 ‘보호받는 성’으로서, 가사일과 양육일을 해왔지만 재산을 소유하지 못했고 개인 공간을 보장받았던 남성과 달리 공동의 공간을 나눠 사용했다. 창작을 위한 물적 조건을 갖지 못했던 여성들은 남성저자들이 만들어온 지식의 역사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았다(메리/울프는 여성에 대한 남성저자의 글이 넘쳐나는 가운데 여성저자의 글은 찾을 수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창조의 세계로부터 아예 배제되었던 이름 없는 여성들의 흔적을 더듬기 보다는 서가에 꽂혀져 있는 여성작가들의 글을 꺼내 읽는다. 그러면서 여성작가들에게 훼손되어 있으나 셰익스피어에겐 온전하게 존재하는 “창조행위에 순조로운 마음”(79)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바를 자유롭게 창작물로 구현해내는 마음을 말하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보기에 여성작가들은 항의하거나 분노하는 데 몰두하느라 창작의 흐름을 놓치고 만다.


 나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영화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의 어느 인터뷰를 보다가 ‘창조행위에 순조로운 마음’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설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한 남성 감독이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다보면 관객들을 의식하고 배려하며 깎여 나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비밀은 없다>는 감독의 날 선 그대로 만들어진 영화 같다’고 말하자, 이경미 감독이 ‘이야기에는 타고난 그릇, 팔자, 운명이 있는 것 같고, 이것을 갖춰서 나와야만 완성되는 것이 있다’고 답하는 부분이었다. 이야기가 가진 운명을 충실하게 따르고 때로 인도하는 것이 창작자의 역할이라면, 창작자의 믿음이 세상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감추거나, 그러느라 항의하는 마음이 섞여 들어간다면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여성들이 ‘창조행위에 순조로운 마음’을 갖지 못한 이유는 재능과 열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성실하게 따르고 믿는 게 불가능하거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는 여성들에게 어떤 방해가 있어왔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서가를 훑어보기를 마친 버지니아 울프는 동시대의 여성작가를 향해 “오른쪽이나 왼쪽을 돌아보지 않고” “욕설을 퍼붓기 위해”서나 “비웃기 위해” 멈춰서지 말 것을, “망설이거나 더듬거”리지 말고 오직 뛰어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을 간청한다(142). 그녀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소유한다면 울프의 간청대로 글쓰기가 훨씬 쉬워질 것은 자명하다. 창작하기에 충분한 돈과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쓰기’를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바꿔서 이해해본다. 적은 월급을 받으며 그 돈으로 방을 빌려서 살고 있는 내가 어떻게 오랫동안 페미니스트로서 살 수 있을까.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창조행위에 적합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단단한 태도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언어가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할 것, 나의 경험과 느낌을 신뢰할 것, 나의 약자됨을 긍정할 것, 욕망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유로워질 것, 그리하여 매순간 해방의 언어를 최선을 다해 찾아 행동할 것. 나는 자주 즐겁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하지 않는다. 아쉬워하거나 변명하고 싶지 않지만, 충분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그런 갈등은 사라지거나 최소화될 것이며, 창작하는 데 적합한 마음을 갖기 더 쉬울 것이다. 아마 나 자신과 세상에 새로운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강연의 마지막에 이르러, 대학에 다니고 전문직에 이르며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을 향해(동시대 한국의 젊은 여성들과 유사한 조건의),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글을 쓰는 행위에 역사적인 의미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녀가 다시 태어날 때 그녀가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겠다는 결단 없이, 그녀가 출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위해 일한다면 그녀가 출현하리라는 것과,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단언합니다”(172)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사명감을 느낄 수 있도록 끝나는 것이 좋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앞에서 언급한 작가들은 이름을 남긴 작가들이었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게 글을 쓰고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라, 과거의 여성들과 미래의 여성들을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대담 내용



버지니아 울프의 500파운드



이름


“500파운드가 지금 물가로 따지면 1년에 4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생존을 위한 돈 정도를 말한 게 아니다. 굉장히 넉넉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창작을 할 수 있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정도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거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방과 돈은 생존 그 자체만을 위한 돈 이상인 것은 분명하다.”


신아


“책 속에서 ‘여성의 소득이 없다’는 것은, 경제적 계층 문제라기 보다는 성별 그 자체에서 오는 문제다. 귀족 여성들의 경우에도 계층으로는 상위에 있지만 남편의 ‘배려’ 하에서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글을 써서는 안되는 존재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그때문에 가지게 되는 분노, 해결되지 않는 욕망들이 존재했다. 여성의 가난은 남성의 가난에 대해 이야기 되는 것처럼 단순히 ‘저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자기만의 방'이 의미하는 것?


신아


“여기서 말하는 방과 돈은 개별 여성이 남성간의 관계를 가지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물적 조건이다. 단순한 방이 아닌, 어떤 모습의 방인지 혹은 어느 곳에 있어야 하는 방이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다.”


오베르만


“책에서도 계속 자물쇠가 있는 방이라고 명시한다. 가족으로부터 차단당할 수 있는 방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가족공간 안에 들어가면 나의 역할 하나만 부각이 되지 않나. 나를 하나의 캐릭터로 조명시키는 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


지혜


“거기에 더해, ‘방’이라는 게 홀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자아 이상이어야 한다. 연립주택에 살 때마다 왜 도어락을 바꿔야 할까. ‘안전한 나의 방'이 나에게 온전한 의미에서 ‘자기만의 방'이다. 여성이 그 안전한 공간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하고 대출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계급적인 접근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여성이 시민으로서 설 수 있으려면 금전적인 요건에서 배 이상의 요건이 필요하다.”


G


“자기만의 방을 얻을 수 있는 돈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이 있는데 하나가 부족해서 결핍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편으론 가족의 배려 혹은 가족의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필 외동딸이고 하필 서울에 살아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있지만 내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돈이 있어도 가족이 주는 제약 때문에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다. 그런 배려가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작을 위한 기본소득


경아


“작가에게 있어 작업실을 갖는 것은, 생활과 분리한 자기만의 또다른 방이다. 코워킹 공간을 찾아다니거나 카페를 전전하거나, 최근에는 작업실을 찾아다니고 있다. 월 10만원에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족과 분리된 생활을 하기에는 경제적인 요건의 문제가 있다. 생활과 창작공간을 분리하며 함께 갖고자 하니 큰 벽에 부딪친다.”


이름


“소득이 없다는 것은 창작활동에 대해서 자신의 것을 발산해야 겠다는 걸 위축시킨다. 소득과 사회적 성원권이 창작에 대한 마음을 확보한다.”




여성과 기본소득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주연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할 때, 취준을 할 때,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때 등 다양한 삶의 상황 속에서 소득의 유무와 상관없이, 시민으로 서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특히 내가 가진 정체성 중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늘 기본소득과 같이 떠오른다. 늘 내 삶을 꾸리기 위한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임금격차는 그대로이고, 다른 복지 제도나 청년 제도는 남성청년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젊은 여성에게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지혜


“짤릴 것 때문에 할 말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별말도 아닌데. 일터에서 좀 더 자유롭게 발언하고 싶다"


경아


“기본소득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경제적 요건들 때문에) 그 욕망을 충족하기가 너무 힘들더라. 또 자기 생활의 질이 높아지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을 위해서 다음 세대에라도 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이름


“기본소득을 모든 이들에게 준다고 했을 때 새롭게 발견되는 주체들이 존재한다. 청소년, 아동, 여성이 그러하다.”


G


“직장과 일이 잘 맞지 않아 빨리 그만 두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에게 일은 뭐지, 노동은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활비 실험 같은 걸 하면서 나는 한달에 최소 얼마를 가지고 내 생활을 불려나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소비-소득 중 뭐가 더 중요한가 가늠해보는 고민이 이어지면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용상


“돈이 힘과 권력의 표현이지 않나. 나만의 집도 있고, 타인이 터치 못하고.. 취업하면서부터 월급을 받게 되고 제 생활을 영위하면서 돈이 필요한데, 내가 대표가 맘에 안들어서 나가면 월세 못내고 하는데 이직을 할 때까지 그 회사에 어떻게든 있다가 이직을 한다든지 그렇게 된다. 내가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텐데. 돈을 벌어야만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데 나머지 행복한 삶은 작은 부분이고, 그런 식으로 타협하다보니까 그나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곳들을 찾아다녔다.”


신아


“연구소 인턴으로, 비정규직으로, 다음 직장을 또 고려해야 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너무 중요하다. 어떤 일에 의욕이 생기고,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돈이 안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들이 존재한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나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세상의 변화로서 운동 차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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