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와의 인터뷰

2017년 9월 초부터 페북의 알맹e 페이지에 3차례에 걸쳐 올려졌던 역자 박규태 목사와의 서면 인터뷰를 이 자리에 올립니다.

맹Q. 신생 출판사인데 불구하고 이 책의 번역을 선뜻 맡아주시겠다고 했을 때에는 이 책을 진짜 번역하고 싶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하셨나요?

박A. 대표님께서 이 책 번역을 처음 제안하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어떤 번개 모임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 각자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죠. 다들 가시고 횡단보도에 대표님과 저, 둘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때 뜬금없이 이 책을 번역해주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하셨지요. 그때 제 느낌이 어땠냐 하면, 그냥 덤덤했습니다. 당황스럽지도 않았고요. 막 설레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정식으로 번역 제안을 받았을 때는 속으로 이미 “OK!”라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번민이 많았습니다. 이런 책은 번역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크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요구합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번역해야 겨우 생계유지가 가능한 전업 번역가에겐 고통스러운 책이지요.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도, 결국 허덕이는 형편 때문에 삶에서 즐거움이나 보람을 느끼기가 힘들어지니, 몸과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매달 기본 생활비도 벌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오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을 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면, 마음이 참 답답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책은 거절해야 마땅한 책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번역 제의를 사양할까 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신학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을 번역하는 것이 번역자로서 큰 보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보려다 중도에 포기한 쓰라린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완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죠. “번역은 아주 정밀한 독서”라는 말이 있는데, 아주 정밀한 독서로 이런 의미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했는데, 어찌 보면 가장의 책임을 내팽개치고 이기심을 앞세운 결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번역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이젠 다른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번역할만한 능력도 부족하고 실력도 없었기 때문이죠. 저자의 역작이라는 책에 누를 끼칠까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족한 사람에게 즐거운 도전 기회를 주신 출판사 알맹e에게 거듭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 한국어로 번역, 출간해야 한다는 요구는 많았지만, 결국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라 아무도 나서지 못했던 일에 신생 출판사가 도전한 것에도 고마움과 존경을 표합니다.

맹Q2. 교정을 하면서 보니까 저 같은 경우는 사해사본 부분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목사님은 번역하실 때 어느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요? 그리고 어느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나요?

박A2. 사해 사본 부분은 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편집자께 제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저는 마조히스트 번역가 같습니다. 어려운 부분을 번역할 때 이런저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만 생각하면, 그 고통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사해 사본과 외경, 위경 부분을 번역할 때도 그런 즐거움이 있었죠. 번역할 때 사해 사본과 번역문을 담은 다른 자료들도 열심히 뒤졌습니다. 그런 자료들과 <바파유>를 대조하며 하나하나 번역문을 완성해가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사실, 되돌아보면, 모든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제까지 만난 신학 책에서 잘 만나지 못했던 학자, 이야기, 논증, 사실들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들, 그런 내용들을 알아간다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번역이 주는 혜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렇게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이지요. 저자인 샌더스 교수의 관심사가 단순히 신학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라더니, 정말 그런 면모가 보였습니다. 종교와 삶, 종교와 사상이 직결된 모습이 책 곳곳에서 보였지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유대인의 일상사, 심지어 부부생활까지 엄격하게 규율하려 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유대교가 정말 유대인의 뼛속까지 들어가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안 하셨지만, 가장 주의 깊게 읽어볼 대목을 들라면, 2부 바울 편을 꼭 읽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울 편을 읽어보시면, 이 책이 소위 새 관점(저자인 샌더스 교수는 싫어하시는 표현입니다만)이라는 주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텍스트 자체를 엄격히 존중하고 텍스트가 말하는 내용 자체에 천착하려는 학자의 자세, 나아가 텍스트에 비춰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검증해보려는 성실함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자세가 바로 종교개혁자들이 이야기했던 성경 연구 자세요, 멀리 사도행전 17장에서 말하는, “마음이 트인” 베뢰아 사람들의 성경 읽기 자세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책에 다가갈 때도 그런 마음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책의 논증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요. 그래서 저자가 이후에 이 책에서 제시한 논지를 더 자세하게 다룬 작품들을 잇달아 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 학자의 생각이나 주장은 책 하나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존중하면서도 비판하는, 비판하면서도 귀 기울여 듣는 자세로 다가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맹Q3. 책이 많이 어려워서 번역속도가 굉장히 느렸을 겁니다. 교정을 보면서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은 버셨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구간별로 편차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몇 자 정도 번역하셨나요?

박A3. 평균하면 한 시간에 얼마나 번역하는지 어림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번역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저자의 문체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책 내용이 얼른얼른 들어오지 않아 속도가 더딥니다. 그러다 뒤로 갈수록 속도가 붙지요. <바파유>는 딱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긴장해야했고 끝까지 꼼꼼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었지요. 이 책을 보시면 알겠지만, 원서의 마지막 문장이 한 책을 끝내는 문장 같지 않습니다. 그만큼 저자가 끝까지 치열하게 썼다는 이야기겠죠.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채우는데 한 시간이 걸린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을 번역할 때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여러 번 있어서, 한 시간에 200자 원고지 1장을 채웠다는 것이 가슴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성실히 번역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자신이 조금 대견스러웠죠.

맹Q4. 영어로는 이 책을 PPJ라고 보통 약칭하는데 우리말로는 친근감 가게 바파유라고 목사님께서 잘 붙여주셨잖아요? 이 책에 대한 목사님의 소감 한 말씀이나 기타 하실 말씀이 있다면?

박A4. <바파유>는 “제가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번역하느라 바빠유!”라는 말에서 착상한 줄임말이었습니다. “바울”의 “바,” “팔레스타인”의 “파,” “유대교”의 “유”를 따 만든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출판사에 계신 분들이나 다른 번역가 분들을 뵈면 다 <바파유>라고 부르시더군요. 솔직히 지난 몇 년간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번역을 그만 두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이 책 앞에 앤터니 티슬턴이 쓴 <두 지평>을 번역한 일이 제겐 회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파유>를 번역하면서 앞으로도 의미 있는 책을 번역하는 일에 계속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죠. 제겐 이 <바파유>가 힘을 북돋아준 책입니다. 말라가는 논에 내린 단비 같은 책이죠. 이 번역이 참 소중한 기억이 될 겁니다.

맹Q5. 목사님은 인기가 많아서 짐작에 내년까지도 번역하실 책이 줄 서 있을 것 같은데, 현재 번역하고 있는 책들은 어떤 것들인지요?

박A5. 아이고, 전 인기와 무관합니다. 지금 번역하는 책들은 다 좋은 책인데, 다 마무리하면 “짜잔!”하고 공개하겠습니다. 생뚱맞은 신비주의 전략입니다. 살짝 귀띔하면, 훌륭한 복음서 소개서,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가 만났던 조직신학과 조금 구성이 다른 조직신학 책입니다. 이후에 번역할 책 가운데 독자들께서 관심을 가지실 만한 책을 든다면,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가 쓴 소품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다 1961년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다그 함마르횔드의 유작 <Vägmärken>(표지판)이 있습니다.

맹Q6. 꼭 번역해보고 싶은데 아무도 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번역 못한 책이 있다면 무슨 책일까요? (많다면 3권 정도까지)

박A6. 요새 제 가장 큰 관심 분야는 평전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늘 관심이 많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소개했습니다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에서 시민 정부를 이끌다 화형당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평전이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선지자 같은 혁명가로, 또 어떤 이는 미치광이 선동가로 보는 이 인물은 교회사뿐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연구, 당대 정치 연구에서도 비중이 크다 하는데, 이런 이를 다룬 평전다운 평전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또 하나는 독일 신학자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가 쓴 <구약 역사비평 연구사>입니다. 크라우스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네 번이나 개정판을 내 완성한 작품인데요. 역사비평이라는 테마가 신학에서는 중요한 주제이니, 언젠가는 한국어로 만나는 날이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과거에 나왔다가 절판된 번역서 가운데 좋은 책을 선별하여 다시 번역, 출간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재번역, 재출간 작업이 침체된 출판계에 새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Q7.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많이 번역하는 '박규태'처럼 될 수 있을까라고 후배 신학도들은 생각할 것 같은데, 신학공부를 하고 있거나 번역자가 될까 고민하는 신학전공자를 위하여 조언을 해주신다면?

박A6. 아, 이 질문은 정말 과람한 말씀입니다.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그동안 고생고생하시며 터를 닦아놓으셨습니다. 황무지를 개척하듯 큰 고생을 하셨죠. 그렇게 만들어주신 밭 한 구석에 염치없이 들어가 농사를 짓고 있을 뿐입니다. 굳이 대답을 드린다면, 무엇보다 신학이라는 경계에 매이지 말고 이 분야 저 분야에 다 관심을 가져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학 분야 책도 신학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다양한 분야를 다룹니다. “번역가는 잡식가(雜識家)여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를 결론까지 알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많은 분야에서 서론만이라도 알아두는 것이 번역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번역가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 제가 여기서 말을 더하면 군더더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일본 번역가이자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꾸준히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그렇게 끝까지 쓰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번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속입니다. 번역가로 자리 잡으려면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이 무너지는 일을 수도 없이 겪습니다. 돈도 벌지 못합니다. 어려운 형편에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깨, 손목, 목, 허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요, 외로움과 슬픔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꿋꿋이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며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간다면 어엿한 번역가가 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아직도 신학 번역가가 필요하니, 신학을 깊이 공부하신 분들이 강단으로만 나가지 마시고 좋은 신학 책을 한국어로 소개하는 일에 힘을 보태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뜻 있는 분들이 계시면, 좋은 책을 펴내는 출판사를 많이 도와주시고 고생하시는 번역가들에게 힘을 보태주십시오. 으리으리한 교회 건물은 신자들이 떠나면 퇴락하여 폐허로 변하지만, 훌륭한 번역 작품은 대대손손 훌륭한 자산이 되어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북돋울 샘이 됩니다. 큰 은행가 롭(Loeb)도 막대한 재산을 번역 사업에 기부했습니다. 번역 메세나가 많이 나와서, 한국 기독교 출판계, 나아가 한국 출판계에 희망이 다시 비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