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적으로

이 책을 소개해보자면

알맹e 스타일은 원래 딱딱하지 않습니다. 그럼 원래 스타일 대로 이 책 소개를 한다고 했을 때는 과연 어땠을까?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메인 페이지에 소개글을 정리한 하늘샘이 맨 처음에는 아래와 같이 소개글을 작성했었던 것을 아래에 붙입니다. 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메인 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올리기에는 책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책을 평가하는데 정당하지 않은 영향을 보일지 모르겠다는 판단하에 이렇게 하부 페이지에 호기심 가실 분만을 위해서 올립니다. 좀 더 편하게 쓴 글이니 그냥 편하게 보실 분만 보시기를....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읽으면 절대 안 되는 책, 읽으면 시간 아까운 책, 읽든 말든 상관 없는 책, 읽으면 좋은 책,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등이 그 종류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바파유)』는 맨 마지막 범주, 즉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에 속합니다. “에이, 어느 출판업자가 ‘이 책은 안 읽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하겠어요?”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파유는 진짜입니다. 진짜 진짜입니다.

왜냐구요? 우선 샌더스는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바울에 대한 1차 자료를 모조리 섭렵합니다. 그것도 원어 히브리어 및 헬라어로 읽고, 부분적으로 발췌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헌의 견지를 파악하려 합니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유대교 자료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200년을 가리키는데요, 이중에서 샌더스는 우선 랍비 문헌, 즉 탄나임 문헌을 먼저 다룹니다. 탄나임 문헌은 다른 주요 신약학자들이 바울과 유대교를 비교하기 위해 인용하는 자료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물론 탄나임 문헌이 비교적 후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 포괄적이고 방대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정체를 밝히는 데 필수적인 문헌이죠.

다음으로 샌더스는 기원후 70년 문헌인 사해 사본을 다룹니다. 사해 사본, 즉 쿰란 문헌에서도 랍비 종교 구조에서 볼 수 있었던 주제들이 많이 등장하지요. 저자는 제1동굴에서 나온 사본들과 다마스쿠스 언약을 주로 참고하여 사해 사본이 갖고 있는 종교 패턴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경과 위경, 즉 집회서, 에녹1서, 희년서, 솔로몬의 시편, 에스라4서를 토대로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어떤 종교 패턴을 갖고 있었는지 분석합니다.

샌더스는 이 방대한 자료를 다루면서, 이 모든 다채로운 색상을 하나로 희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직접 1차 자료를 제대로 봤다면, 그 안에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래서 그는 하나의 시각을 가진 “조직신학”을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않고, “종교 패턴”을 제시하죠. (이 종교 패턴이라는 단어는 사실 이 책의 부제, “종교 패턴 비교”에서도 등장합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샌더스는 자기 의견만 제시하지 않고, 이 1차 자료들을 읽고 해석한 굵직한 학자들의 견해 역시 철저하게 다루어줍니다.)

이 모든 자료를 읽고 해석하고 종합하면, 우리가 흔히 들어온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가 됩니다. 이 종교 패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이 자기 선택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임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을, 그에 반하여 범죄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십니다. 율법은 또한 속죄 받을 수 있는 방편을 제공해주는데, 여기서 속죄란 언약 관계를 다시 수립해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종교 패턴을 정의한 뒤, 바울이 제시하는 종교 패턴을 알아봅니다. 샌더스는 바울의 서신을 직접 원어로 살펴보고, 또한 바울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인 논의를 대거 인용함으로써 그 작업에 착수합니다. 샌더스의 바울 해석을 따라가다보면, 기독교가 새로운 언약적 율법주의처럼 보이다가도, 엄밀히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샌더스가 묘사하는 바울에 의하면, 죄는 그리스도와 이룬 연합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연합을 이루게 하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나아가 바울에게 핵심적인 개념은 “참여라는 관점에서 옮겨감을 표현한 개념들”로, 이는 언약적 율법주의의 틀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종교 패턴과 바울의 종교 패턴은 서로 다른 종교 패턴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게 되지요.

이 책의 업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볼까요? 샌더스는 이 책을 통해서 주제와 관련된 자기 이전의 자료를 거의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샌더스 이전에도 유대교 자료 및 그 자료에 대한 해석을 정리한 사람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파유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후의 바울 신학이 그의 저서를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는 겁니다! 흔히 ‘바울!’하면 떠올리는 라이트, 던, 버드 같은 학자들 역시 샌더스의 어깨 위에 서 있으며, 바울 전문 신학자가 아니라도 신약학자, 성경학자 아니 그냥 신학자라도 샌더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샌더스를 직접 읽지 않은 사람은, 어떤 신학 책을 읽든, 그 신학의 깊은 맛도 누리지 못하고 그 진정한 함의를 헤아릴 수 없게 되는 셈입니다! 조금 과장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바파유는 역사적인 책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1977년은 1517년만큼이나 묵직한 해라고 저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결국 루터 개혁의 핵심 중 하나가 바울 해석이기도 하니까요.

“중요한 책인 건 알겠는데, 이거 위험한 책 아니에요? 읽고 괜히 제가 이상하게 되면 어떡하죠?”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 이 책 위험한 책 맞습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피할 순 없습니다. 저는 절대로 이 책만이 진짜배기 성경 해석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이걸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분의 견해 중 반대하는 것도 많아요. 하지만, 샌더스가 제시하고 있는 데이터 그 자체, 그리고 그가 이 자료를 다루는 방법론, 그리고 그가 신약 학계에 미친 영향만 생각하면, 위험하더라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까요? 여러분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까고 싶으면, 이 책의 서론과 결론 정도는 읽어 봐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바파유는 그중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끝까지 읽을 수 없더라도 한번 씨름해 봐야 할 책임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드립니다.

여기까지가 하늘샘이 쓴 원래의 바파유 소개글입니다. 마무리는 아래 에피소드가 좋겠군요. 하늘샘이 찾아낸 내용인데 90년대 트리니티 박사과정 어느 세미나에서도 무 교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극이 되기를 바라는 취지로 소개합니다.

1980년경, 더글라스 무와 에드 패리쉬 샌더스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만났다. 샌더스가 무에게 물었다. “무 박사님, 혹시 미쉬나 전체를 히브리어로 읽은 적이 있으신가요?” 무는 자신이 읽은 양에 대해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저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샌더스는 대답했다. “저는 다 읽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 토론에서 당신의 입장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1]

[1] Dougals Moo, “John Barclay’s Paul and the Gift and the New Perspective on Paul”, Themelios 41.2 (2016): 281.

이 페이지에 걸맞게 알맹e를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알맹e는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의 출판전문 자매회사입니다. 본업이 에이전시이기에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남들이 내지 않는 오래된 책들 중에서 그래도 꼭 필요한 책만 선별하여 취미로 냅니다. 내는 책마다 분명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겠지만 많이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놀라울 일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