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논쟁에 즈음하여

- 교육 혁신처에 바란다 -

 

■ 시작하며

최근 논쟁이 되는 학점을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학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채용시장 현황, 대학의 학점 부여 현황, 그리고 교육부의 학사관리 정책과 대학의 대응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➀ 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 채용은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블라인드하고 직무능력 중심으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2017년부터 공공부문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최근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등 역량 중심의 채용 문화로 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57.6%가 출신학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고, 이 기조는 지금 수준으로 유지(50.8%)하거나 더 확대될 것(27.5%)이라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4.29.)


블라인드 채용 도입 전후로 전체 공공기관 합격자 중 서울 주요대 비율은 15.3%→10.5%로 4.8%p 감소하고 비수도권 대학 비율은 38.5%→43.2%로 4.7%p 증가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9.06.27).

 

➁ 학점 인플레 현황

대학 정보공시에 따르면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12곳의 2020학년도 1학기 전공과목 A 학점 비율은 평균 63%로 집계됐다. 같은 학기에 경희대, 고려대, 한국외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서울대 등은 수강생 60% 이상에게 A 학점을 매겼다. 이화여대, 중앙대, 연세대, 숙명여대 등은 수강생 70% 이상에게 A 학점을 줬다(매일경제, 2021.05.05).

 

➂ 교육부의 학사관리 정책

교육부는 대학의 학사관리 정책에 꾸준히 개입해 왔다. 지난 1999년 각 대학에 상대평가 도입을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할 때 A·B·C 부여 비율을 5~6% 반영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성적 부여나 재수강에 관한 제도 등의 ‘합리성’을 정성 평가해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에 4% 비중으로 반영했다(시사저널, 2017.7.10).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선정되면,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에 제한을 받았다. 또한 대학구조 개혁평가에서 D·E와 같이 낮은 등급을 받으면 정원을 대폭 감축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대학이 존폐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는 의미다. 중위권 대학은 생존을 위해 교육부의 정책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시사저널, 2017.7.10).

 

➃ 대학의 대응 상황

블라인드 채용에는 출신 학교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류 심사를 통해 판단할 변별력 있는 정량적 지표가 얼마 없어 학점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한대 신문, 2021.05.23)


명문대학 출신자 중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이 제도의 도입과 무관하게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명문대학 학벌을 당당하게 기재하던 시절의 프리미엄이 사라지면 명문대학의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은 설 자리가 모호해진다. 이에 더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 수도권 명문대학은 어떤 학점관리 정책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교육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대학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대는 재수강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성적의 상한을 A0로 설정하는 데 그쳤다. 고려대는 2016년부터 오히려 절대평가를 확대함으로써 교육부의 기조에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온도 차는 최상위권 대학의 ‘자신감’으로 풀이할 수 있다. 상위권 대학들은 학사관리 정책 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다른 지표에서 점수를 만회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시사저널, 2017.7.10).


■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장단점


절대평가가 무조건 학점인플레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학점인플레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서, 지난 경험은 취업 문이 좁아질수록 학점 인플레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모두 A 학점을 받는 학점인플레 상황이 지속되면 학습자의 학습 동기는 저하된다. 이는 공정하지도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수도권 대학에서 70%의 학생에게 A 학점을 주게 되면 상대적으로 엄격히 관리되는 부산대학 학생들은 대외경쟁에서 선의의 피해를 보게 된다. 엄격한 학점관리로 제자들이 학업에 충실하길 바라는 마음도 제자 사랑이지만, 제자들에게 학점을 잘 주어 좀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제자 사랑이다. 학점 인플레는 이런 스승의 복잡한 심정을 바탕으로 확산된다.


상대평가는 개인적인 학습 동기 부여를 위한 강력한 수단일 수는 있으나, 다 같이 열심히 하면 다 같이 잘 되는 제도가 아니라 상대가 열심히 하면 내가 손해 보는 제도이다.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이 한 만큼 평가받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롭다. 이런 제도 하에선 상생과 협업의 교육제도의 형식적 도입은 가능할지 몰라도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은 요원하다. 따라서 상대평가는 상생과 협업이 가능한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로는 부적합하다.


대학교육의 궁극적 목표


가르칠 ‘교’(敎) 키울 ‘육’(育).

교육의 목적은 가르침(敎)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키움(育)을 포괄해야 한다. 교육은 초중고를 다니게 하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를 기회를 동등하게 주었으니 평등하다는 소극적 선이 아니라, 사회 새내기로 첫발을 내디디는 학생들이 부모의 재력과 상관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길러 주어 모두가 동등한 시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민주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포괄해야 한다.


정체된 사회 속 한정된 자원의 분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우열을 가려 서열을 매기는 것은 사회의 몫으로 하고, 모두를 충분히 교육 시키는 것이 교육기관의 사명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모두를 A 학점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무조건 모두에게 A 학점을 그냥 주는 것과 모두가 A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 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모두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거의 이상에 가깝다. 그러나 잘하는 학생을 칭찬하고 못하는 학생을 좀 더 돌보는 교육시스템이 잘 정착된 나라를 선진국이라 한다. 이번 학점 논쟁을 계기로 이제는 우리도 한번 가르치고 따라오면 좋고 아니면 낮은 학점을 매기고 포기하는 후진적 교육시스템의 개혁을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 나가며

지금의 학점인플레가 코로나19가 빚어낸 일시적인 현상으로 수도권 발 학점경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교권을 회복하고 학점인플레를 막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문제는 학점경쟁의 확산 형태를 고려할 때 전국대학교육협의회 등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공론화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나 홀로 내린 결정은 미봉책으로 근원적 해법이 될 수 없고, 모든 대학이 함께해야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제 대학은 또다시 자율의 시험대 위에 놓였다. 코로나19 대응으로 지쳐있을 교육 혁신처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우는 것 같으나, 이것이 교육혁신의 기본이다. 이것이 제대로 잘되지 않으면 대학의 자율은 요원해지고 새로운 타율을 불러오게 된다.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