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의 조기 사임 공약 파기에 부쳐(1~3)


며칠 전 총장께서 이메일로 총장 후보 시절 내건 「학기에 맞춘 조기 사임에 관한 공약」 파기를 명확히 하셨습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

어떤 직업이라도 누군가 그만둘 땐 거의 예외 없이 업무의 연속성 등 크고 작은 문제가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현 총장께서 총장 후보 시절 제가 교수회장이자 선거의 총괄책임자였습니다. 그 당시는 대학 본부의 선거 개입으로 교수회와 대립이 심화하고 총장 임기 자체가 학내에서 큰 이슈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후보였던 현 총장께서 자신의 기본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학사일정에 맞춘 조기 사임을 약속한 것은 참으로 신선한 공약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내건 공약의 최대 수혜자는 본인 자신이 듯이 책임 또한 본인 스스로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조기 사임은 총장님의 개인적 결단의 문제로 교무회의의 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총장께서 이메일에 언급하신 교무위원과의 논의가 이 사안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교무위원과 책임을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사안입니다.


총장 임용 시기에 대한 보장

총장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현재의 법체계하에서, 투표를 통해 다음 임용후보자가 정해지기도 전에 후보 검증에 걸릴 시간을 장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현 총장의 퇴임 시기와 상관없이 후임 총장의 공백 없는 임용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전국 국립대학의 여러 사례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로 지금 새삼스럽게 총장님의 글 속에서 다시 논의될 사안은 아닙니다.


총장님의 조기 사임 공약에 대한 높은 지지는, 학사일정에 딱 맞춘 공백 없는 후임 총장 임용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아니라, 이런 법체계하에서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공약의 평가 기준

공약 이행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 기준은 “자의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인가?” 아니면 “자의로는 어쩔 수 없는 약속인가?”입니다.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로 지킬 수 있음에도 지키지 않는 공약은 문제가 됩니다.


구성원 모두에게 한 이런 약속의 파기는, 구성원 모두에게 사과하고 동의를 구할 때 비로소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교육기관의 장에게 주어진 책무

부산대학교는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 기관이 아니라 3만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기에 약속이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학생에게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의 중요성마저 부정하면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습니까!


건물 한두 개를 더 짓는 것보다 올바른 대학 문화의 형성을 통해 대학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무형의 가치를 가집니다. 올바른 대학 문화를 만들고 지켜가는 것은 총장에게 주어진 결코 가볍지 않은 책무 중 하나입니다. 특히 대학이 사회로부터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공적인 약속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나가며

공약에 따른 조기 사임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훗일을 걱정하시는 총장님의 충정은 이해가 되나, 공약하신 조기 사임의 결단까지가 총장님의 몫이고 그 이후는 나머지 구성원 모두의 몫입니다. 저는 교수회장 시절 총장님과 연이 닿은 이래 많은 만남을 갖진 못했으나, 총장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더욱 올바른 대학 문화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신 명예로운 총장, 명예로운 교수로 남으시길 희망합니다.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