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해야만 하는 교육시스템 개혁 관련

 

부산대학교 모든 구성원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내용입니다.

글이 조금 길어 pdf파일로 첨부합니다.

한번 읽어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드림

==========================================================================

 

돈으로 해야만 하는 교육시스템 개혁

                                                               김한성

 

한국은행의 '7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경상수지는 87억6000만 달러로 77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중앙일보, 2018.09.05.) 삼성전자가 D램 수요 폭증과 스마트폰의 선전으로 올해 1분기에 또다시 '실적 신기원'을 이뤄냈다. 4분기 연속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비즈니스코리아, 2018.04.26.)


▣ 고용창출의 한계

삼성 등 대기업은 사상최대의 수익을 매년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신규인력 고용이 사상최 대 기록을 매년 갱신하고 있다는 뉴스는 들은 바가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은 어제 오늘의 이 야기가 아니라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이 우 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걱정 되는 것은 인 공지능의 탑재한 제조업 자동화의 가속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나치게 세분화된 대기업 분업구조의 소품종 대량생산체계는 자동화 구현의 가장 손쉬운 타켓이 된다. 기업은 이윤추 구를 제1의 목적으로 하니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탓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쪼그라드는 파이를 선점하기위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고용 없는 성장은 부의 양극화를 가속화 시킨다. 이에 서민들은 자연스레 인구를 줄이는 쪽을 택하게 된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자동화의 소나기를 피해가진 않으나 오전엔 이 일을 하고 오후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체계의 중소기업에선 상대적으로 자동화가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고용창출의 측면에선 중소기업이 더 강점을 가진다. 즉 인간중심 경제성장의 열쇄는 소품종 대량생 산체제가 아니라 다품종소량생산 체계에 있는 것 같다. 물론 다양한 멀티 작업이 가능한 만능 로봇이 등장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높은 산 하나를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하는 로봇의 수준에 안심하고 싶다.

 

▣ 블루오션과 레드오션

2017년 기준으로 화웨이는 연구 개발비는 약 15조 원, 아마존은 약 24조 원, 알파벳은 약 17조 원, 인텔은 약 14조 원, 마이크로소프트는 약 13조 원, 애플은 약 12조 원을 각각 투자했다 고 한다. (2017. 4.17, THEGEAR)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비로 역대 최대인 약 16조원 을 집행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정부의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약 20조원 정도라 한 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발표한 2017년~2018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 장점유율 전망치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19.9%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화 웨이 등 중국업체의 가파른 성장으로 삼성전자가 더이상 점유율을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에서 소품종 대량생산의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것이 세계 각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규모만 봐도 녹녹치 않아 보인다. 뒤늦은 출발의 징크스를 깨고 일어서고 있는 중국과 강력한 군사력과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무역장벽을 높이 쌓고 있는 미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 녹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기업은 잘 해 왔고 앞으로도 잘 해 주기를 기대한다.

다행인 것은 어느 나라도 모든 산업분야에 수십조원 이상식을 집중 투자할 여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거액의 투자는 몇몇 소품종 대량생산의 레드오션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다품종 소량생산의 불루오션에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선거철 한 때 바람처럼 지나가는 구호가 아니라 점점 더 우리가 수용해야할 현실로 느껴진다. 인공지능이 등장한 21판 자본주의 체제의 맹점으로 재부각 되고 있는 소득양극화와 실업률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는 대기업에 있지 않고 중소기업에 있 는 것 같다. 새로운 혁신적 중소기업의 탄생과 기존의 중소기업의 혁신을 통한 글러벌 경쟁력 강화가 답인 것 같다.


▣ 혁신적 중소기업 창업과 중소기업 혁신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의 99.9%를 구성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종사자수는 전체고용의 87.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2014. 5. 14.) 대기업 대졸 신입 사원 의 첫 해 급여는 평균 4060만원, 중소기업의 경우 평균 273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매일 경제, 2018.09.03.) 올 1분기, 고소득층은 역대 가장 많이 소득이 늘었고, 저소득층은 역대 가장 많이 수입이 줄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mbc news, 2018,5,25) 대기업 성장의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낙수효과를 전면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 기업 중심의 생산구조로는 전체 근로자의 약 9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 종사자 모두를 풍요 롭게 하기엔 역부족이다.


대기업은 상위10%의 인재를 대부분 흡수하여 지속적인 혁신을 거듭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90%의 중소기업은 스스로가 혁신을 통해 생산 성을 높이고 고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처우가  대기업 못지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그래 서 누구라도 자랑스럽게 입사를 의망할 강소기업의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은 GDP 대비 사업체수가 세계1위를 기록하고 있다. 창업 후 10년 생존율이 24.6%에 불과하다고 한다 (개인사업자 창·폐업 특성 및 현황 분석'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12). 그런데도 창업의 양적 팽창이 경제를 살리는 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GDP 대비 사업체수 OECD 1위, 연합뉴스 2015년 08월 11일) 더 이상 창업의 양적 팽창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질적 강화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혁신을 누가 하나이다?


▣ 창업과 혁신의 주체는 누가인가?

대부분의 창업엔 작게는 수억에서 수백억까지 막대한 자본과 그 바닥의 생리를 훤히 꿰뚫는 상당한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대학에서의 창업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몇몇 특수업종을 제외하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의 창업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으로 결코 권장사항이 아니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분업구조속에서 전체를 보기 힘든 대기업 종사자도 창업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창업은 현재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아주 잘 나가는 직장인이 하는 것이 맞다. 그러기 위해선 이들의 능력과 자신감이 창업으로 이어 질 수 있는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성공으로 이어질 공정경쟁의 기업생태계 조성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중소기업 창업 또는 혁신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새내기도 아니고, 상위 10%의 대기업 종사자도 아닌 나머지 90%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 그들 스스로가 주역이 되어야 한다.


▣ 하위 90%를 포기해야 하는 수업구조

시험 답안 통해 확인되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 많은 학생들에 대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교육을 돌이켜 보면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학생은 수업을 듣고 그 다음 시험을 치고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학생은 칭찬을 듣고 나머지 90% (편의상 하위 90%라 칭하자)는 포기했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 초중고 대학 교육에서 잘 따라오면 좋고 못 따라오면 포기하는 교육시스템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 상위10%를 위 한 특별반이 편성되고 별도의 학습공간도 마련되었었다. 지금도 초중고에선 그러한지 모르 겠으나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교육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해온 하위 90%가 글 러벌 경쟁에서 이겨나갈 중소기업 혁신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학생에게만 가혹한 유 급제나 실패한 졸업정원제의 도입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는 기본적인 강의(lecture)와 함께 개인교습(Supervision)이라는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채택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교수와의 1:1 수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개인교습 수업은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매우 깊고 풍부한 이해를 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케임브리지 대학) 억장이 무너진다. 이런 수업을 하자고 주장하는 바는 더더욱 아니다.


30~40명의 학생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30~40 학생을 한 실험실에 몰아넣고 실험장비 1대를 두고 실험을 하는 현실 속에서 양질의 수업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하여 토론이나 실험수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자 (이런 수업을 외면하고 서 미래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양성을 논하는 것이 말이 않되지만....). 하위90%를 포기하는 교육 시스템을 방치하고서 중소기업의 혁신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고도 중소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다면 교육무용론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번도 하위 90%에 대한 교육시스템 개혁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덜어본 적이 없다. 물론 상위 10%의 학생에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경쟁은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기 십상이다. 치열한 경쟁의 상당부분 걷어내지 않고선 공부가 수단화 되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이것 또한 중소기업의 혁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 교육정책 방향 (부산대학교, 김한성, 정진, 김회용)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일단 여기선 논외로 하자.

교육부의 교육정책에선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응책을 포함한 결과의 평등을 논하고 있고 (교육부 2017.3) 대학에서도 F학점을 받은 학습부진아를 대상으로 학습법 컨설팅 프로그램이 도입되어 왔다. 그러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90%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의 도입은 논의된 바가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모두에게 있었으니 형식적 평등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으나 금수저 흙수저 논란 속 부의 대물림을 통한 본질적 평등이 아니란 사실은 애서 부인하기 어렵다. 부의 양극화는 대물림이 되어 교육양극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시작의 불평등으로 고착된다. 교육부에서 말하는 학습 부진아를 대상으로 하는 소극적 결과의 평등과는 달리, 여기선 시작 의 평등을 말하고 싶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은 골 고루 키워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향후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에 맡기더라도 최소한 학교 울타리안에선 하위90%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을 통한 적극적 시작의 평등을 말하고자 한다.


F학점을 받은 학습부진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안하는 것보단 나으나, 학습부진아를 포함한 보통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의 본질적 평등에 대한 추구는  맥락은 비슷해 보이나 추구 하는 목적과 대상이 터무니 없이 소극적이고, 중소기업 혁신의 주체를 키우기 위한 취지에도 터무니 없이 모자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습부진아에 대책과 같은 문맹해소 수준의 소극적 교육복지의 개념을 포함한 적극적 성장동력으로서의 서민역량 강화를 통한 국가의 중추역량강화 개념으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누구나 대학입시의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으나 평등하다는 일상적으로 방치되어온 소극적 기회의 평등속에 감춰진 부의 양극화가 불러올 태생적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평등.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결과의 평등은 자본주의 최대의 성장동력인 동기를 정면으로 무시한다. 여기선 사회적 불평등에 기인한 불평등 구조를 해소키 위한 결과의 평등을 지향점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회 새출발을 하는 새내기들에 부여 되어온 소극적 기회의 평등을 넘어선 적극적 시작의 평등을 말한다. 중소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안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나  이미 초중고 대학을 거치며 모르른 것을 방치하는 굳어진 일상화를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교육혁신은 비단 대학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초중고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재 초등학생이 혁신의 주역이 되려면 30~40년은 걸린다. 그래서 교육이 백년대계인 것 같다.


민주주사회의 불평등은 동기와 노력의 산물로 발전의 강한 동력이 된다. 그러나 법앞의 평등과 함께 사회 새 출발을 하는 사회새내기들의 시작의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란 생각이다. 누구나 수긍하는 불평등은 자본주의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많는 불평등은 자본주의 붕괴의 촉매재가 된다. 평등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며 불평등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 교육시스템 개혁

학생 모두의 등수를 동일하게 1등으로 되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전체 학생의 평균점수를 올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명문대학 진학자수로 학교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 평균학력을 자랑하는 풍토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교수자 중심이 아니라 학생을 중심에 둔 하위 90%의 학생을 위한 학습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잘하는 사람만 데려 가고 못하는 사람은 포기하는 현실을 평균역량을 강화하는쪽으로 개혁하려면 단순히 생각해 도 교수 대 학생 비율 (전임, 비전임, 보조교사, TA를 포함)을 두배로 늘려야 한다.


좀 참고 잘 해주세라는 사명감에 의존하는 사회시스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 같다. 하루 이틀이랑션 몰라도 10년20년을 지속해야 한다면. 모든 직장인들에게 아무 대책 없이 업무량만 두 배로 늘리면 어떻게 되나. 개인의 이기심을 충족 시키지 못하는 어떠한 사회제도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명감에 의존한 교수자의 희생은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10년 20년을 지속하기는 힘들다.


수도권의 대학이 지역의 우수인재를 싹쓸이 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지역에도 우수한 인재가 있다. 여기선 단순히 수능성적 평균분포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하위 90%를 위한 교육혁명은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나가며...

가진 것이라곤 인적자원 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선 대학진학률이 높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잘 가르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방치되어온 교육시스템의 혁신이 결국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현재 야기되고 있는 수많은 사회문제의 해결의 단초가 된다.


대물림된 부의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땐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갖추고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작의 평등과 노력한 만큼의 결과의 불평등에 대한 인정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정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