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법에서는 대학을 교과부 장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교과부 장관의 지도와 감독을 받으면서 어떻게 자율이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대학의 자율은 교과부의 대학정책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추상적인 개념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독주를 방지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인가? 이 부분에 이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럼, 질문을 바꿔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 나가고 또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총장 선거는 결론적으로 보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는 집단으로 매도되었고 이 결과는 향후 상당히 오랫동안 대학의 자율성의 축소를 위한 모범답안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교육부 장관의 지도·감독 권한 강화의 필요성을 대학이 스스로 제공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총추위의 구성이 교수회 임원을 주축으로 이루어짐을 전제로 이야기하겠다. 교수회는 교수의 권익 보호와 복지향상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고 보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거부하는 것은 교수회의 존립의 근거인 교수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꼴이 되니 교수회의 입장이 꽤 어려웠을 것 같다. 만약 대다수 교수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간다면 교수회는 교수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는가? 아니면 교수회가 교수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가? 여기서 현실적으로 교수회가 가지는 태생적 한계가 느껴진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많은 논란을 불러오고 더 나아가 타율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교수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해지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결국 궁극적인 책임은 이 모든 상황을 야기하거나 묵인하고 원만하게 소통 하지 못한 모든 교수가 함께 지고 가야 할 것이다.
대학 선거는 일반선거와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학선거에서의 높은 도덕성은 비단 교육자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뿐 아니라 대학선거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요구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부산시장 선거의 경우 유권자를 대략 200만 명으로 보면 후보자가 직접 유권자들에게 밥 사고 술사고 하려면 하루에 유권자 10명을 만난다고 가정하면 약 500년 이상이 걸린다.그러나 대학 선거의 경우 모든 교수를 하루에 10명씩 만난다고 하면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아 모든 유권자와 직접 대면하고 밥 사고 술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 대학선 거는 유권자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후보자가 유권자를 유혹하기도 쉽고 유권자가 유혹당하기도 쉬운 취약한 구조를 띠고 있다. 이것이 일반선거에서는 볼 수 없는 일들이 대학 선거에서 발생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생면부지의 타인도 아니고 동료 교수로부터의 부름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최소한 나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과연 일반 유권자들이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그러나 대학의 미래나, 공짜로 생각되는 것들이 사실은 공짜가 아니라는 선거 원론적인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중앙선관위의 감시·감독의 강화가 우연이 아니고, 교과부의 대학구조조정 강행 기류가 오늘의 현실이라면 더 높은 수준의 선거문화의 정착은 더 이상 미루어질 수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만약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제도가 개선되기 전까지는 이 제도를 준수해야 함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이 아닌가! 향후 직선을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한다면 일반 선거의 유권자들보다 더 타락하지 않은 수준에서 도덕성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자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헌법 조항을 근거로 자율만을 주장한다고 자율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인가? 자율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책임이 함께하지 않는 자율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는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수능 대박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수험생이 되어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둘러보고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 된 것은 아닌지?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