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의 대학교육에 대한 사견입니다.
글이 다소 길어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대학의 교육에 관한 문제로 우리 대학의 구성원 모두와 함께 한번 쯤 고민해 보고 싶은 내용입니다.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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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과 대학교육
유기소재시스템공학과
김한성
1차 산업혁명과 2차 산업혁명은 생산동력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변화의 원인이고, 이에 비해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의 활용을 통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자동화된 생산체제의 도입을 의미하고, 이들과 비교해서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네트워크 기술과 인공지능을 통해 강화된 판단력이라고 한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는 결코 새로운 뭔가를 발명한 것은 없다. 밖으로 나가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최선의 것이 발견되면 가져와서 조합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한 창조다. (윌리엄 더간 컬럼비아대 교수)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가 기술과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기술적 전환과 다양한 산업의 진보를 주도할 융합인재밖에는 적절한 답이 없다. (문승현 총장, 광주과학기술원)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이 규칙을 파격적으로 위배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목적을 창조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인공지능이 개발돼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은 4차 혁명에서도 인간의 창의적 능력이 감당해야 한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교육시스템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의 양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김진하, KISTEP 부연구위원)
1. 창의교육이란 무엇인가?
희랍신화에 따르면, 힘과 에너지가 기억과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 창의성이다. Torrance에 따르면, 진정으로 창의적인 것은 가르칠 수 없다. 그렇다고 창의성이 가르치지 않고 저절로 오는 것도 아니다. 창의적 해결의 요소들은 가르칠 수 있다. 이러한 창의적 해결의 요소들에 대한 교육은 창의성 자체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바로 비판적·논리적 사고 능력에 대한 교육인 것이다. 창의성 자체는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훈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창발적인 결과물(emergent product)인 것이다. (김영정, 서울대 철학과)
결국 이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풀어 보면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의 바탕위에 관심과 열정이 더해지면 창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대학에선 인류가 깨우친 진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르치고 그 위에 학생들이 관심과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창의환경 조성 및 창의체험을 통한 창의역량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학교육은 크게 학부교육과 대학원교육으로 나뉜다. 학부교육은 본질에 대한 통찰력 강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대학원교육은 학부에서 배우고 익힌 통찰을 바탕으로 창의적 문제해결 역량강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것 같다. 학부교육은 또 크게 교과와 비교과로 나뉜다. 앞으로는 자유로운 창의환경 속에서 창의체험을 할 수 있는 토론대회, 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를 포함한 비교과활동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캡스톤 디자인이나 졸업논문도 이런 맥락에서 운영방식에 따라 좋은 창의교육이 될 것 같다. 결국 대학에서의 창의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창의환경 조성이 사회로 확장되면 창의생태계의 조성이란 큰 틀로 묶이는 것 같다.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정부주도의 비효율적 계획경제의 기획보다는, 작게는 한 조직 내의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벗어나 자유롭게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 형성과 크게는 창의적 신생기업이 탄생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기업 간의 창의생태계 조성을 위한 제도개선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Tv다큐멘터리 서민갑부를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대부분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고 남다른 열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일궈낸 분들의 이야기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단지 대학교육의 다른 점은 우리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의 출발점을 시대가 요구하는 난제의 최첨단에 올려놓는다는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2. 융합교육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물리적, 디지털적, 생물공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고 융합된 기술이 다양하게 적용·파생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WEF, 2016) 융합인재란 복수 학문분야의 융합을 통해 새롭고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학문, 사회, 경제 문화 전방에 확산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성은모 외, 2013)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조합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빌게이츠의 말은 상당히 많이 인용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보면 타학문분야는 프로그램의 대상이 됨으로 각 대상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타학문분야의 입장에선 컴퓨터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것 같다. 여기가 4차산업혁명시대의 창의와 융합에 대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환경·에너지, 식량·자원, 생명·안전과 상실된 인간성 회복이란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모두 해결해줄 인공지능의 등장이전엔 모든 학문분야는 그 나름의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의 총체적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 자체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야기한다. 4차산업혁명을 생각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이런 인공지능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에 봉착하게 되지만 일단은 이 문제는 소설가의 상상력에 맡겨두고 다시 오늘로 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개발된 수도 없이 많은 제품은 특정 학문분야만의 성과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많은 학문분야의 융합이 필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신제품의 개발을 위한 다양한 전문가들 간의 융합이 필요하다. 이미 사회에선 해방 이후 협업을 통한 실질적인 융합을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기업이 신제품 개발을 위해 팀의 구성과 해체를 반복하는 것처럼 대학도 신제품이 개발 될 때마다 새로운 학과의 구성과 해체를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제품 중심으로 배워나간 학생은 신제품이 등장하면 어떻게 되나? 따라서 대학의 학문단위의 구성은 제품중심이 아닌 학문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융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융합의 핵심은 다양한 전문가들 사이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한 협업이지, 어떤 한 분야에도 정통하지 않는 만물박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 혼자만의 두루두루 속에서도 창의가 있을 수 있으나, 혼자가 아닌 깊이 있는 더불어 속에서 창의를 구하는 것이 좀 더 멀리 가고 오래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전공의 경우, 제품중심의 두루두루 방식 또는 인기학과 중심의 근거도 없는 융합이 아닌 학문적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학문체계의 정립이란 차원에서의 시도라면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이 경우에도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버려야 하다. 이것이 예산이 한정된 조직의 한계인 것 같다.
융합교육의 목적이 창의라면 기본이 중요한 학부과정보다는 창의적 문제해결역량을 키워야할 대학원 과정에서의 연구실 간 유리벽을 허무는 것이 어렵지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할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협동연구과제의 도입 같지만........ (물론 학부과정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통한 협업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도 의미 있는 교육인 것 같다.)
KAIST는 ‘융합기초학부’를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 드는 미국의 하버드와 같은 명문대학의 학생들은 특정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과목을 수강해도 무방할 것 같다. 사회에 진출하면 해당 영역에서 필요한 지식 전반을 스스로 학습할 충분한 능력을 지닌 학생일 것임으로, 어떤 의미에선 이런 학생들에겐 대학교육 자체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3. 4차산업혁명의 한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어차피 컴퓨터는 인간보다 기억력이 좋았고 계산도 잘했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강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자동화의 가속이 우리 학생들의 일자리를 잠식해 가는 속도이다.
나는 칼 마르크스를 잘 모르지만, 그가 말한 “프로레타리아 혁명”은 산업혁명 초기 기계에 의한 노동시장의 잠식은 인간을 노동에서 배제시키고 이로 인한 실업률 증가는 사회시스템 변화의 동력이 된다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예언이 지금까지 적중하지 않은 것은 기계에 의한 노동력 대체 속도보다 산업성장에 의한 일자리 창출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전자는 작년 한해 13조를 투자했지만 고용증가는 650명에 그쳤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사상최고의 수익률 기록을 갱신하고 또 갱신했다. 투자도 생각보단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투자를 해도 예전만큼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강화된 인공지능을 탑재한 자동화에 기반한 고용 없는 성장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대목에서 칼 마르크스가 다시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기우이길 바란다.
고용 없는 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 파라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를 들면 생산자 중심의 생산체제에서 소비자 중심의 생산체제로 전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생산체제는 인간의 숙련기간이란 단점이 있음으로 맞춤형 생산체제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기계의 경우는 숙련기간이 필요치 않음으로 강화된 인공지능은 등장은 맞춤형 생산체제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경제 파라다임의 변화가 의식주를 포함한 자동차, 스마트폰 등 모든 산업분야에서 상담 인력, 디자인 인력, 공학설계 인력 등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이 기계와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식의 일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 따르면 향후 5년간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지고, 4차 산업혁명으로 21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 한다. 지구의 인구가 약 74억이니 경제활동인구를 약 30억으로 보면 약 30억개의 일자리가 존재한다. 즉,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30억개의 일자리 관련 분야의 동반성장 없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기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에 더해서 30억개의 일자리 관련 분야의 균형 있는 성장 또한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한계 극복을 위해 중요한 것 같다. 이것이 학문의 균형발전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인 것 같다.
4. 정보화교육과 시민사회교육
4차산업혁명시대 교양교육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4차산업혁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능력인 것 같다.
컴퓨터관련 우수한 인재는 앞으로도 많은 수요가 예상되지만 어중간한 비전문가는 필요없는 승자독식의 성향이 강한 분야가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학생이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컴퓨터 관련 유용한 툴의 적극적인 활용 능력은 중요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은 필요한 것 같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 ‘남을 밟고 올라서는 법’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역량을 길러주어야 하며, 학습자들이 미래사회의 여러 부정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시켜야 한다. (김용 외, 2015),
시민사회 교육을 통해 “4차산업혁명은 왜 필요한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이란 무엇인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면 안되는가?” 등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이 모여져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 4차산업혁명과 대학 구조조정
“1987”란 영화를 보고 그 땐 어떤 독재가 자행되었나 생각해보니 문득 권력의 사유화란 단어가 떠올랐다. 몇몇 사람들이 밀실에서 결정하고 형식적 절차를 거치는 권력의 사유화와 절차적 민주주의와의 본질적 차이는 대화에 임하는 자세의 진실성에 있는 것 같으나, 겉보기 구별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학과 또는 새로운 단과대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학의 근간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기에 구성원과의 진솔한 대화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할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은 대학에서 신설학과나 신설대학이 하나 더 생겨나면 결국 강의를 위해 더 많은 시간강사와 행정인력이 필요해진다. 1000명의 시간강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선 대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기형적인 현재의 교육구조를 더 악화시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대학의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온다. 부산대학의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융합전공을 비롯한 새로운 학문단위의 신설은 현재의 학문단위의 축소를 전제로 기획되어야 한다. 국립대학의 경우 더하기는 쉬우나 빼기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이것이 국립대학 행정의 최소한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선도할 인재양성 뿐만이 아니라 30억개의 기존 일자리를 선도할 인재양성을 위해 균형 있게 기획되어야 할 대학정책이 미래의 일부만 대비하자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한다. 자칫 이것이 수도권 광풍 편식구조의 두 번째 버전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