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한나 아렌트는 귄터 가우스와의 대담에서 말했다. ‘무엇이 남는가? 모어(母語)가 남는다.’
나는 지금 <The Law War>라는 장편 다큐멘터리를 연출 중이다.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영어로 제작 중이다. 나는 지금 작업 중인 하나의 프로젝트를 빼고는, 모든 작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모어에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끝내 모어인 독일어가 그녀에게 남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어 저술 활동을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독일어가 자신의 코어임을 주장했다. 나는 나의 코어가 한국어인가, 에 대하여 의문을 품는다. 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영어든, 불어든, 어떤 외국어든 간에, 나는 나의 작품 활동을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어가고 싶다.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음에도 이 나라와 나 사이 이질감과 불쾌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모어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결국 모국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나라에 기대하는 것이 없다. 그것이 내가 한국의 검찰, 경찰과 시민들의 투쟁을 그리면서도 이 다큐멘터리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제작하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으로 메이킹 노트를 한국어로 쓰는 이유는 뭘까? 위악적으로 이 나라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누군가는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까?
다큐멘터리는 현대사회에서 법률 전쟁이란, 단순히 행정이나 소송 따위의 문제가 아닌, ‘인권’을 찾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지만,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법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2026년 3월부터 현재까지 겪고 있는 대한민국 공권력과의 싸움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사실 나는 나를 꽤 ‘기득권’이라고 생각해 왔다.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대기업 소속 작가이고, 미국과 유럽에서 예술을 공부했고, Arts Council과 문화재단에서 해마다 각종 지원을 받아 예술 활동을 이어가니, 세상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 어려운 것은 오직 나의 예술 활동뿐이었다. 사적으로 법률가나 의료인에 대한 접근성도 좋은 환경이고, 친인척 중에도 관련자들이 있다. 당연히 법률가나 의료인을 그다지 대단한 직업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직업적 비하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나에게 직업적으로 대단한 성취는, 오직 예술적 성취를 이룬 부분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보통의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라이선스가 있는 노동자일 뿐이다.) 이전까지 나는 나에게 법적.행정적 사건이 일어나면, 주위에 있는 ‘전관 출신의 비싼’ 변호사를 사서 해결하면 문제없을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또한 나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미디어 관계자와 법률가, 의료인이 있는데, 내가 공권력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거나, 비합리적인 처우를 받는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겠지만,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본안이 된 의료 사건과 관련하여, 나는 아주 ‘당연하게도’ 관련 기관과 경찰이 조사와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모든 증거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공권력이 꽤 비상식적이고 위법적인 일들을 관습적으로 정당화함에 매우 놀랐다. 법적 문제가 있어 다큐멘터리 공개 전, 이 메이킹 노트에 모든 걸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일선 공무원들이 저지른 행위들은 결코 관료주의적 관습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다.
나는 그다지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앞서 내가 지나치게 솔직하게 드러낸 나의 사상과 인격이 사람들에게 그다지 호응받을 만한 것이 아님을 안다. 어쨌든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초기에는 전면에 대형 로펌 변호사를 여럿 선임하여 이들을 다 짓밟아야 하나, 라고도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감히’ 일선 하급 공무원에 불과한 그들의 불합리한 일 처리는 ‘회초리 들고 패야 하는’, 시혜적으로 접근할 문제였다. (언젠가 이 글을 토대로, 나를 또다시 ‘나르시시스트’로 몰아갈지도 모르겠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섹션에서 다룰 것이므로 할 말은 해야겠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지 않아서 저들이 저렇게 미친 짓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겨우 저런 공무원들을 상대로 내가 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전면에 선임하는 금전적, 물리적 손해를 봐야 하지? 이미 나는 나의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그들에게 쓰는 데에 꽤 분노했었다. 당연히 싸우다 보면 합리적이고 법치주의적인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여기가 해결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변호인단을 공식적으로 선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가 ‘히스테릭한 악성 민원인’이라는 것을 공무원들이 공문서에 명시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무시했듯, 그들도 나를 무시한 것이었다. 나는 이 싸움이 결국 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고, 여전히 확신하는데, 나는 이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통해 나의 예술적 성취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정의가 나에게 있는데 내가 잃을 것이 무엇이냐, 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이는 나의 물리적 시간과 자원에 대한 분노는 예술 작품 창작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니 꽤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단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매번 궤변과 비상식적 처리를 일삼았다. 처음 한 달 이후로는, 그들이 어디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나, 그 부분이 궁금해졌다. 이 부분 또한 지금 특정하여 이야기할 수 없지만, 다큐멘터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는 만약에 갑자기 여기에서 단 하나의 기관이라도, 혹은 단 한 명의 공무원이라도 갑자기 스탠스를 바꿔서 합리적인 결과를 낸다면, 최소한 정상적인 결과를 내겠다는 말이라도 한마디한다면 어떻게 하지, 라고까지 생각했다. 물론 오늘까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덕분에 내 다큐멘터리는 무사히 순항 중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연출을 위해 각종 자료 조사와 여전히 투쟁 중인 시민들을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 연출을 공부했을 때도 극영화에만 야망이 있었지, 다큐멘터리의 정의로움과 공공의 이익 같은 가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설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하여도, 그것은 당연히 예술에 관련된 것이지, 사회적 실체가 분명한 이슈를 다루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어왔다. 보통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선의와 사명에서 작업을 시작한다면, 나는 부끄럽지만 ‘이왕에 하는 김에’ 콘텐츠 아이템을 찾아냈다는 기분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비록 필요로 ‘나’가 아닌 세상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때 마침내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사실 평범한 시민이 아니었다. 물론 이 사건 관련 공무원들은 나를 악성 민원인으로 취급하지만, 나는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므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기록할 힘과 대응할 물리적 조건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 일은 내가 앞서 말한 대로 나의 ‘직업적 성취’인 것이다. 그런데, 진짜 보통의 시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생업이 있고, 불합리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배경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법률가에 의한 착취도 존재했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3장에서 법률가에 의한 법적 권리 찬탈에 다루는데, 이는 사실상 보통의 국민들은 ‘그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고용한’ 법률가, 즉 명백한 직무상 의무가 있는 자들에 의해서까지 착취당한 케이스들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내가 앞서 말한 기분이 상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전의 나는 수사기관의 무능함과 위법적 행태에 대하여, 아무래도 직업적으로 요구되는 지능이 그리 높지 않아서 생기는, ‘무지한 하급 공무원들의 무능'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은, 지금도 그 공권력의 안일함과 관료주의로 인해 어떤 이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이었다. 1950년의 보도연맹만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이 민주화 열사들을 살해하고, 고문하고, 탄압하던 시대는 어쩌면 끝났을지도 모른다. 2026년의 검찰과 경찰, 그리고 공권력은 ‘법’과 ‘행정’으로 시민을 탄압한다.
정말 모든 인간이 법 앞에 평등할까? 진짜 우리 사회는 무전유죄 유전무죄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법의 세계에서는 법률가의 언어만이 인정받는다. 일반 국민은 법률가의 언어에 접근할 수 있는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데, 법률가에 대한 접근은 어째서 자본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권리가 아무리 정당하여도 법의 언어를 ‘스스로’ 구사하지 못한다면, 그 권리는 법률가의 대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에 대한 기만이며, 국가가 법률가의 독점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폭력이다. 본안과 관련해서 나는 종종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법률 서면은 냉정해야만 한다.’ ‘수사기관과 위원들은 이런 감정적 일상 언어를 접하면 해당 서면을 기본이 안 된 것으로 본다.’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피해자에게 법정이나 행정기관이 요구하는 '양식에 맞춘 태도'가 정말 피해 당사자와 국민을 위한 것일까? 혹은 법률가의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그들만의 독점적 권리 행사는 아닐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면서, 왜 법의 언어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을까? 그것이 과연 만인에게 평등한 법일까? 피해자가 자연인으로서의 분노와 슬픔을 거세당하고, 시스템이 원하는, 얌전하고 정제된 서류로 자신을 욱여넣어야만 비로소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법정의 오만함은 내가 가졌던 하찮은 오만함과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 언어와 양식의 독점이 곧 인권의 박탈이라는 측면에서, AI로 법률 대응을 하는 시민들에 대하여, 법률 서면에 거짓 판례나 법리를 작성하면 처벌하는 법적 조치를 취하자는 논의가 펼쳐지고 있음에 다시 한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리처드 서스킨드는 그의 저서 ‘온라인 법원과 미래의 사법제도’에서 법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AI와 기술의 발전이 사법 접근성의 혁명이라 보았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는 논문 ‘법의 힘’에서 법정이 일반인은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고유의 언어와 규칙으로 무장한 사법장이라고 정의한다. 더욱 본질적으로 접근하면, 현대의 사법 체계는 미셸 푸코가 주장한 대로, 지식(전문성)이 단순히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가 아니라, 대중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핵심적인 권력이라는 통찰에 대한 명백한 현상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라는 신화를 만들면서도 지식과 언어를 독점한 카르텔이 합법적으로 국민의 주권을 억압하도록 방치한다. 어떤 이들은 분명히 나의 주장에 반대하여, 법의 세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법의 양식화가 필요하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민주 사회는, 당연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의 주권을 제한하는 국가적 통제와 억압을 타파하는 데서 그 의의가 있다. 한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외부에서는 이미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괴리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임을 전하고 싶다. 지금 내가 한국 현대사회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와 같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지만, 그 법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는 평등하지 않다.” 구시대에, 성경에 대한 접근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제들에게 국한되었던 것과 현대 사회의 법체제는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특정 법률 AI에 직접 접근했다가, 깜짝 놀랐다. 인증된 법률가와 관련 공무원만 해당 AI의 사용이 가능했다. AI를 사용해서 거짓 판례나 거짓 법리를 적은 서면을 제출하는 국민을 처벌하자는 의견이 진짜 정당할까? 일반 시민 중 판례 검색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과, AI가 거짓 판례를 만든다는 사실, 그것을 확인할 방법에 대해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법리의 논리성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 명문화된 법이 국민적 공감을 사지 못하는 세태에서 법률 서면을 읽는 것으로 현실에서 상식과 법정의 상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 설사 그들이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과연 고도로 전문화된 법률 용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시민이 자연권인 인권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법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대신에 처벌할 규정을 만들겠다는 것은 참으로 일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검찰 내부의 AI 프로그램은 초고도화하는 와중에, 2026년 대한민국은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태제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 아닐까? 국선 변호사와 법률구조공단이 있으니, 국가의 책무는 다했다는 반론은 일고할 가치조차 없다. 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평등한 환경에서 스스로 추구하고 찾을 권리가 있다.
나는 법률가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니다. 내가 앞서 다룬 이야기는 내가 아닌, 대한민국의 법률가들이 논의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전문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불합리를 겪은 당사자로서 이에 대해 탐구하고 진리를 찾는 것은 예술가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다큐멘터리로 인해 나의 주력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나로서는 그 프로젝트의 지연이 심히 불쾌함을 넘어, 분노가 일어난다. 마땅히 실천되어야 할 상식이 유린당하는 사회는 구성원인 국민 개인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그 당사자가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다.
다시 한나 아렌트로 돌아가면, 그녀는 ‘권리를 갖기 위한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 고찰했다. 국가가 국민의 눈에 최루탄을 박아 바다에 던졌던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우리는 그 시대를 이겨냈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영어로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이 자정할 의지가 사실은 거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어로 메이킹 노트를 쓰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전산을 조작하고, 법과 시스템을 무기로 무형의 폭력을 저지르는 국가도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희망. 이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단체 때문이다. 국가권력과 사법기관이 저지른 명백한 가해로 인해 인권을 박탈당했음에도, 그 배상금으로 장학회를 만든 어느 피해자들의 연대가 나의 오만함과 예술지향적 목적에 대해 수치를 느끼게 했고, 동시에 희망을 만들어주었다. 오늘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공권력에 대하여, 그저 오만하기만 했던 나보다 훨씬 숭고하고 고귀한 피해자들의 연대를 통해 내가 갖게 된 유일하고 작은 희망, 그것이 마침내 모어로 ‘권리를 갖기 위한 권리’에 대한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메이킹 노트를 쓰게 된 이유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