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국문학을 사랑했고 국어학이 재미있어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겠다고 심지를 굳혔기 때문에, 고등학교 재학 중에 진로 자체를 탐색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때때로 고민했던 건 국문과를 지망한다고 해서 국문과에만 초점을 맞춘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제가 배우고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문학과 만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거기에 잠식되어 편협해지는 일만은 경계하려 했습니다. 미래의 인문학도로서 역사와 철학 과목인 ‘세계사’, ‘동아시아사’,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를 즐겁게 공부했지만, 거기에만 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에는 ‘화학I’을, 3학년 때에는 ‘미적분’을 선택해 공부했습니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통상적으로 잘 듣지 않는 과목들이어서 선택 과목을 고를 때마다 조금은 쭈뼛거리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제게 큰 확신을 심어준 것이 (여러분도 읽고 계실) ‘서울대학교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책자였습니다. “소수 학생이 선택한 과목이나 난이도가 높은 과목을 이수하여 수치상 결과가 다소 나쁠 수 있지만 학생의 도전 정신과 호기심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 더 좋은 평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자의 문장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용기를 얻어 ‘자연계열 과목’으로 분류되는 화학과 미적분을 공부했고, 수능 수학에서도 미적분을 선택해 응시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특출나게 잘했던 건 결코 아니고, 잘 모르는 분야를 공부하면 저의 시야가 조금이나마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화학 시간에 배운 오비탈 개념은 파동함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미적분 시간에 이를 확장해 복소해석학이 어떤 것인지 맛볼 수 있었어요. 수준이 높거나 통찰력 있는 탐구를 수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일러 등식의 증명을 얄팍하게나마 이해하며 손으로 써보던 순간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비탈 함수는 ‘불확정성 원리’를 따르는 것이기도 한데, 3학년 때 활동한 자율 동아리에서는 이와 관련해 심화된 활동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든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융합적으로 탐구하는 동아리였는데, 함께 문학 작품을 읽고 불확정성 원리를 적용해 해석해보는 활동이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안에서는 서로 다른 학문 분야들 사이에 날카로운 금이 그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걸 넘어설 때 우리는 더 큰 눈을 갖고 즐거이 공부할 수 있다고 느껴요. 저 또한 아직 갈 길이 멀고 배울 것이 많지만, 한 번이라도 그어진 경계선을 넘어서 공부하는 경험을 해보시라고 여러분께 권유해드리고 싶습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마침내는 허물어뜨리는 일을 우리가 머지않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과목을 배우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배우는 것입니다. 진로가 명확하지 않다면 다양한 과목을 충실하게 배우는 것으로 진로를 탐색할 수 있으며 앞으로 있을 학습의 기반을 다질 수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경제 전반에 관심이 있긴 했으나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선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을 충실하게 학습하였습니다. 때로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과목일지라도 큰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윤리와 사상이 그러했습니다. 윤리와 사상을 배우기 전에는 윤리와 경제는 큰 관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단지 도덕적 판단에 있어, 그리고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사상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노동과 권리의 관계에 대해 깊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후 근로자 및 노동 시장을 탐구하며 관련 분야를 진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진로가 분명해진 이후에는 기초 역량을 다질 수 있는 과목들을 선택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적분과 기하를 배웠습니다. 미적분은 경제 분석의 기본이 되는 과목이기 때문에 당연히 중요하겠지만 기하를 왜 배우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수학 분야든 수학을 학습하는 것은 수리적인 감각과 더불어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기하도 마찬가지입니다. 벡터와 달리 쌍곡선이나 공간도형은 경제에서 활용할 일은 없지만, 기하와 수식의 관계를 생각하며 사고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하를 수강하였고, 기하를 수강한 이후 수학적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어 사고력이 발달했음을 체감하였습니다. 진로가 분명하지 않다면 다양한 영역의 기초 교과목을 충실하게 이수하기를 추천합니다. 다양한 영역의 내용을 충실하게 배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진로 탐색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후 자신의 진로가 분명해졌다면,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과목은 무엇인지, 대학의 관련 전공에서는 어떤 과목들을 배우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살펴 본 후에 관련된 기초적인 역량을 다질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면 학습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선택과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 관심사를 가장 많이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물과 관련된 과목들이 개설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원헬스 개념에 착안하여 인간과 환경에 대한 과목들을 많이 수강하였습니다. 원헬스 개념이란 수의학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인데 인간과 동물, 환경이 하나의 헬스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환경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생태와 환경’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환경호르몬에 대해서 배웠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물건들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을 꺠닫고 이 환경호르몬이 인간과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직접 계획하여 실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환경호르몬을 구하는 것을 쉽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와있었던 물건에서 환경호르몬을 직접 추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원헬스 개념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선택했던 과목은 ‘보건’입니다. 저는 동아리 시간 친구들과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보건체계에 관심을 가져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보건’ 교과목을 수강하며 동아리 시간에는 알 수 없었던 전문적인 지식을 채워나갔습니다. 일상에서, 동아리 활동 중에, 다른 수업을 통해 해결하지 못했던 어려운 내용들을 다른 선택 과목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지적 호기심들을 충족시키는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공동교과정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공동교육과정이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학교의 과목도 수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배워보고 싶은 과목이 자신의 학교에서 개설되지 않는다면 공동교육과정도 적극 활용해보기를 추천합니다. 저는 3학년 1학기까지 총 5개의 공동교육과정을 수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과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공중 보건과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다른 학교의 시스템을 접하며 서로의 우수한 부분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심화 과목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과목을 수강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특정 과학 과목만이 제 진로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물리/화학/생물학/지구과학 모든 과목을 이수했습니다. 모든 과학 교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드물었기에, 인기 교과목을 제외한 물리와 화학은 1등급 수가 1명이었고, 고교학점제 시범운행으로 인해 화학은 2등이 3등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꼭 이수하고 싶은 과목들이었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이수하였습니다.

수치적으로 좋은 성적이 아닌 제가 이수하고자 하는 과목들을 선택한 것이 학생부종합전형 합격의 중요한 열쇠였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부교과전형이 아닌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선발한다는 뜻은 각 학교별 여건과 그 학생이 과목을 이수할 때 느끼거나 배웠던 점들을 알아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정 진로에 국한되어서 수강하기보다는 본인이 미래를 위해 배우고 싶은 교과목이 있다면 그 과목을 선택하여 수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지구과학이 제 진로와 관련이 없었지만 자연재해나 다양한 기후적 환경의 원리에 대해 알고 싶어서 수강하게 되었고, 화산이나 황사와 같은 지형적/기후적 현상에 대한 탐구활동도 해보았습니다.

모든 과학 교과목을 수강하면서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이 중요도의 차이가 없는 모두 중요한 과목이며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 와서 특정 과목 분야를 전공하게 된다면 다른 교과목을 들어볼 기회는 고등학교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최대한 많은 분야의 과목을 이수해보는 것이 대학 과정 수료를 위한 기본 지식을 얻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미래에 어떤 진로를 택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때, 저는 우연히 이스라엘의 무기체계 영상을 보았고, 이후 국방 분야에 관심을 갖고,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무기체계공학자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ADD의 채용 모집 공고를 확인해본 결과, 기계공학부와 항공우주공학, 재료공학부 등의 관련 학과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우연히 접한 영상에 흥미를 느끼고 탐구해보는 과정에서 진로를 정했던 것 같습니다. 저처럼 관심 직업을 먼저 찾은 학생이라면, 해당 직업의 채용 공고문 등을 통해 학과를 탐색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기계공학, 국방 분야라는 진로를 정하고 나니, 과목을 선택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공학 분야를 진로로 잡았기 때문에, 물리학I과 화학I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였고, 생명과학I과 지구과학I 중 한 과목을 추가로 선택하고자 하였습니다. 생명과학을 배워 웨어러블 장치 쪽으로 가볼까 했었지만, 저는 II과목 때 케플러 법칙, 원심력, 코리올리 힘, 등 물리학적 내용까지 이어지는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학생들은 진로를 선택할 때나 이수 과목을 선택할 때 자신의 관심사 외에도 진로에 대한 평가, 과목에 대한 평가와 선택 수강자 수 등의 외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주변에 신경을 쓰며 진로의 방향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신념대로 정한 진로와 이에 적합한 과목을 이수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등학교 초창기 단순히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수와 논리, 과학적 원리와 표현에 흥미를 느낀 1학년 시절을 반영하여 2학년 탐구 과목으로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을 선택하였습니다. 물리가 수강자 수가 등급 경쟁에 불리하다는 두려움도 있었으나, 물리학이 수학을 다룸에 있어서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 결정을 이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선택한 물리 과목을 통해 과학과 수학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지식의 활용 범위가 확장되며, 진로의 선택 폭이 넓혀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수와 데이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학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통계학을 공부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하였습니다. 진로의 방향성을 찾고 난 후, 3학년 선택 과목으로는 미적분, 기하, 정보과학 등 대학에서 통계학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과목들을 선택하였습니다. 당시에도 평균 등급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미적분과 기하 중 한 과목만 선택하고 정보과학 선택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저는 이러한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고 제가 원하는 공부를 이어 나갔습니다.

진로 탐색과 이수 과목 선택에 있어서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리거나 중점을 두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길을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처음부터 진로를 정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서둘러 결정한 진로에 따라서 이수 과목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학문, 더욱 심화적으로 학습하면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여 의미 있는 경험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현재의 좁은 가능성을 가진 학생으로 남기보다는 미래의 더 넓은 가능성을 가진 학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제가 지금 목표하고 있는 진로를 따라 물리학과에 진학하겠노라고 결심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물리학과로 진학하여 가능하다면 학술 연구를 하고 싶지만, 중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입학해서 까지도 저는 번역가가 되은 학생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이수 과목 선택과 같이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선택을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걸 느껴 ‘과연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나?’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종종 그토록 급격한 변화에 놀라곤 합니다. 늘상 어문학과로 진학할 것이라 생각해오던 것이 길지도 않은 시간에 물리학과로 바뀌었으니 말입니다. 그 이후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현재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러니 후회할지 어떨지 모를 그러한 상황보다는 높은 확률로 좋은 것이리라. 그러니 적어도 현재로서는, 나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리라.’

그렇게 접게 된 번역가의 꿈이지만, 꿈을 포기했다고 해서 그에 관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저에게 남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번역가를 향한 제 나름의 노력은 외국어로 된 텍스트를 독파하는 능력을 길러주었고, 저에게 더 넓은 세계의 정보를 접할 능력을 길러주었습니다. 꿈은 포기해 사라졌다곤 해도, 그 꿈을 향한 노력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목표하고 도전해오던 바를 상실하게 된다고 해도 여러분에게는 많은 것이 남아있을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버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혹여 끝까지 해내지 못할까 염려스러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에 너무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늘 생각을 멈추지 말고, 열린 자세로 꿈을 찾아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물리학과에 진학하고자 하니, 선택과목으로 물리I, 물리II를 고르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대로 선택했다고 해서 정해진 대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리과목의 수행평가는 늘 실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교과서에 소개되는 실험을 직접 진행해서, 실험값와 이론값을 비교해보고 그에 관한 분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실험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물론 학문의 걸음마를 떼기도 전의 수준에서 이러한 기초적인 실험 연습은 필수적이지만, 이론과 실험이 서로를 검증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아닌, 이론에 맞춰가기만 하는 이러한 실험은 말하자면 “죽은 실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허락하에, 여유 시간에 실험실을 찾아 번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평소 머릿속에 담아두던 생각 중의 몇 가지를 주어진 기구로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해 진행해보았습니다. 대체로 실패한 적이 많았던 것 같지만, 직접 실험을 고안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은 아주 생생한 경험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선택과목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과목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가장 겹치는 부분이 많은지,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단순히 수업을 따라가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 적극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부분이 혹여나 있을지를 잘 고려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수 과목을 선택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했던 첫 번째 요소는 유기성입니다. 학교생활 과정에서 특정한 주제를 학습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 주제에 대한 탐구가 해당 단원, 해당 과목, 나아가 해당 학년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다시 말해, 이수 과목을 선택할 때 이전까지 이수했던 과목들과 그 속에서 탐구했던 내용은 물론 함께 이수하게 될 과목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2학년 때 이수한 ‘사회․문화’ 과목을 이수하며 당시 관심 분야였던 ESG에 관한 사회 현상을 탐구하였고, 이 때 새롭게 생겨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3학년 때 ‘사회문제 탐구’ 과목과 ‘환경’ 과목을 선택하였습니다. ‘사회문제 탐구’ 과목에서는 다양한 사회 문제의 유형과 이를 탐구하는 구체적 방법론에 관해 공부하며, 이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했습니다. 또한, ‘환경’ 과목을 통해 ESG의 세 분야 중 환경 요소에 관해 자세히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과목 간의 유기성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드러나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언어와 매체’, ‘정치와 법’ 두 과목을 3학년 때 함께 이수한 덕에, 한 가지 주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예로, ‘언어와 매체’ 시간에서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광고 매체로써 기능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탐구했다면, ‘정치와 법’ 시간에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광고 매체로써 기능하게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점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 고민하며 균형적인 관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수 과목을 선택할 때 과목들 서로 간의 유기성을 고려한다면, 탐구 내용에 관한 종적 진보는 물론 다각적인 관점에서 이를 조명하며 횡적 확장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던 두 번째 요소는 발전 가능성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발전 가능성이란, ‘해당 과목 또는 해당 수업을 이수함으로써 그 전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성장통이 없다면 성장 또한 없다는 것을 후배 여러분들께서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수한 과목 중 ‘경제’ 과목은 당시 같은 학년 친구들이 공부하길 꺼려하던 과목이었습니다. 성적에 대한 압박이 있었슴에도 저는 ‘경제’ 과목을 선택하였고, 수업이 이어질수록 수요와 공급, 시장과 국가 경제, 경기와 금융에 관해 차근차근 공부하며 경제 뉴스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선명해짐에 따라 경제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지속적인 선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저는 유기성과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며 과목을 선택한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1학년 때 단순 명사에 그치던 제 진로가 구체화되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인지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후배 여러분. 성적에 대한 압박이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에게 주목해보길 바랍니다. 성적표에 기록될 숫자 몇 개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에 따라 장기적인 선택을 내리길 바랍니다. 그 선택이 결국 여러분을 더 나은 곳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 것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다 보면, 진로를 빠르게 결정하고 그 진로를 올곧게 유지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합니다. 많은 학생이 이제껏 쌓아온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야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겁 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1학년 때 큰 고민 없이 상경 계열의 동아리에 들어가 경영학도 지망생으로서 살던 저는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나는 진정으로 그 꿈을 소망하는가?” 꿈은 가슴 뛰는 거라던데, 열정보단 초조함이 앞서 성급히 결정해버린 진로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꿈’과 ‘학교’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삶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생활과 진로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고, 학교 교육 현장 속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개성 있는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꿈은 무엇일까?’라는 개인적인 성찰이 ‘진로와 교육’이라는 사회적인 담론까지 확장되었고 그렇게 교육에 대해 공부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학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진로 교육에 가장 관심이 많았기에 이와 관련된 수업을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교육심리학’을 중심으로 진로와 자아의 개념을 배우고 싶어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으로 ‘교육학’ 수업을 신청했고, 진로의 형성과정을 더 공부해 보고자 3학년 1학기에는 ‘심리학’을 선택해 수강했습니다. 이후 심리학 수업을 통해 얻은 통찰을 진로 교육의 효과를 탐구해보고 싶었고, 그 소망을 ‘사회문제탐구’ 교과를 통해 실현했습니다.

‘진로교육’을 키워드로 잡고 끈기 있게 탐구한 덕에 어떤 과목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은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부족한 지식을 채워줄 과목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목 선택에 앞서 ‘나는 무엇이 궁금하지?’를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에 아주 작은 답만 할 수 있어도 과목을 선택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선택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무엇을 얻고 어떤 탐구를 하느냐입니다. 제가 교양과목으로 심리학 대신 철학을 선택했어도, 사회문제탐구 대신 세계사를 선택했어도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을 이해할 때는 보다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볼 때는 문제 중심보다 맥락 중심으로 조명하는 역량을 길렀겠지요.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것을 선택하든 치열하게 임한다면 분명 많은 성찰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택과목을 이수하는 데 있어서 제일 첫 번째로 생각했던 부분이 ‘나는 이 과목을 배우고 싶은가?’ 였습니다.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하는 과목은 신청 인원 수가 채워지지 못하면 개설이 안 되었기 때문에 제가 듣고 싶은 과목을 못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동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는데 이것은 일부러 저의 시간을 내서 학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정말 배우고 싶은 과목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학년 때는 수학 영재 학급을 이수하여 제가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을 다른 학생들과 함께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이 경험은 제게 있어 주변의 것들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 예측은 어떻게 하는 것이고 오차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었고 관련 내용이 비문학 지문으로도 나와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2학년 때도 원하는 과목을 학습하며 평소 제가 어려워했던 회화나 영어 발표를 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제게 또 하나의 성장 과정으로 작동했습니다. 여기서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 보다는, 내가 이 수업에서 무엇을 얻어가고 싶은지를 선택 기준으로 계속 삼았습니다. 당장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대입에 도움이 되거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약한 부분에 도전하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제가 면접을 준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들었던 프로그래밍은 정말 100% 저의 흥미가 반영된 선택이었습니다.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제가 이 수업을 듣는 것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계셨지만 결국 저는 프로그래밍 수업에 매우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다루고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과정인지를 알게 되었고 진로를 컴퓨터 쪽으로 틀어볼까 하고 잠깐 고민했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제에게 있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이때의 경험은 제가 계속해서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시도해보는 데 있어서 훌륭한 선례가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무엇을 배울 때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보면 고등학교 생활은 그저 버티기의 연속이 아니라 탐구하고 개척하고 새로운 도전을 반복할 수 있는 장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과목은 여러분이 진심으로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이고 힘들지만 재미있게 공부한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