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서, 또는 학생 여러분을 상담하거나 지도할 때, 가끔 여러분이 '교수'라는 사람을 마치 자신과 전혀 다른 종족처럼 여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교수'라는 직함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고, 또는 여러분이 스스로 가진 색안경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학생 여러분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적어도 이 페이지까지 찾아온 친구들에게는, 저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공부하기 싫어하고, 놀기 좋아하고, 게으름 피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특별한 꾸밈 없이, 제 생각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20대인 여러분은 아마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친구들이 가족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직장이나 취미생활 등에서의 개인적인 성취가 더 값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여러분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바로 가족일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성취는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내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하지만 성취하고, 달성하고, 이루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마세요. 열심히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만, 삶의 다른 영역들과의 균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가족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즐기는지 알아보고, 함께 공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세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기록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에게는 제 아내와 딸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것은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기도 합니다.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이든, 취미생활이든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 주변을 그만큼 희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최고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조직 사회이기 때문에, 내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너무 열심히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대충하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참아가며 스스로를 갉아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것을 희생한 끝에 찾아오는 성취의 순간은 짜릿할 수 있지만, 그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목표만을 쫓는 삶은, 순간의 영광을 위해 오랜 시간의 괴로움을 견디는 일입니다. 목표나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세요. 과정이 즐거우면 삶의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과정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20대인 여러분은 입시나 취업 등에서 과도한 경쟁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서열화의 피해자들이지요. 하지만 어른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실적이나 승진을 위해 경쟁하고, 사적으로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자산이 얼마인지로 서로를 비교합니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면, 다시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얼마나 잘났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비교하게 됩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남들보다 우월해지고자 하는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운 좋게 남보다 더 크고, 더 비싸고, 더 희소한 것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항상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결국 또 나타납니다.
이렇게 끝없이 경쟁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반가워할 사람이 있을까요?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에 몰두하는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부족한 점만 보지 말고, 남들보다 나은 점도 찾아보세요. 그리고 더 나아가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바라보세요. 남들보다 나아지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물론 꼭 고쳐야 할 점은 고쳐야겠지만, 그 외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보세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남들보다 나은 것을 가지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세요. 그리고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가며, 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한 삶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기
아무리 경쟁을 피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과정을 즐겁게 여기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도, 가끔씩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경쟁을 피한다고 조롱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에게 경쟁을 부추기며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누구나 분노, 불안, 좌절, 혹은 폭력적인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하고 즉각적인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더라도 충동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나 자신입니다.
내면의 공격성을 참기 어렵다면 운동을 하거나, 격렬한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려보세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겠다면,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노력해 보세요. 성취감을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취미를 갖는 것입니다. 취미를 가지고 일과 병행하면 스트레스를 훨씬 수월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취미생활 : 나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며 살기
제 오피스에 와본 사람이라면 제 취미가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음악 감상입니다. 바그너와 말러의 음악은 프랑스에서의 외로운 유학생활을 견디게 해준 힘이었고, 실험과 연구에 지칠 때마다 브루크너의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 세 위대한 작곡자들 외에도 저는 음악사를 빛낸 수많은 작곡자들의 음악을 사랑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소위 ‘클덕(클래식 음악 덕후)’일 수도 있고, 80년대생 아재들의 표현으로는 ‘마니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최고로) 열심히 살지 않는 삶의 태도’와 더불어 제가 여러분께 권하고 싶은 또 하나의 삶의 자세는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세요. 게임도 좋고, 운동도 좋습니다.
여러분, 꼭 취미를 가지세요!
이 글의 위쪽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어딘가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결국 ‘적절한 균형’을 갖는 것입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사 모으기 시작한 음반은 어느덧 3,000장을 훌쩍 넘었고, 지금은 방 양쪽 벽을 가득 채운 ‘짐스러운’ CD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CD들을 사실 이제는 들을 시간도 부족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음반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또, 젊은 시절 용돈이 부족해 헐값에 팔아버렸던 음반들이 여전히 아른거려서, 틈날 때마다 다시 구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악기를 다룰 줄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덧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더 잘 듣기 위해 고성능 오디오를 구입하고, 더 섬세하게 듣기 위해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 음악에 담긴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예술 사조나 철학, 미술까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활동이 저에겐 순수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저에게 있어 취미생활과 직업적인 성취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취미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즐겁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과도하게 도전적인 과업에 지쳐 있을 때, 열심히 노력한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혹은 벽에 부딪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저는 취미를 통해 작은 위로를 얻습니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고, 도피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끝없이 즐거움을 주는 것—그게 바로 제게 음악 감상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좋아하는 음반이나 음원 파일을 들고 제 오피스로 오세요.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