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Jihad)'의 어원은 '자하다(Jahada)'로, 그 말뜻은 '분투하다' 혹은 '투쟁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영어 단어로 옮긴다면 'combat'이나 'fight'보다는 'struggle'에 가깝고, 따라서 지하드라는 말 자체를 전쟁과 폭력을 내포하는 의미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심지어 '전쟁'을 의미하는 'qital'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이슬람은 지하드를 대지하드와 소지하드로 구분한다.
대지하드는 정신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투쟁을 말한다. 신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모든 노력이 대지하드에 해당한다.
한편 소지하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하드의 개념으로, 육체적 측면에서의 물리적 투쟁을 말한다. 선교 행위, 영토 보존 등을 목적으로 하는 무력 투쟁이 해당하며, 바로 이 소지하드가 이슬람 지하드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지하드의 총체적인 의미는 "신(알라)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하는 모든 분투와 전심전력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차원의 지하드가 '큰 지하드(대지하드)'라고 불리는 만큼 지하드는 결코 폭력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으며, 폭력을 쓰게 되는 경우에도 방어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흔히 지하드의 폭력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꾸란의 일부 구절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구절은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인 꾸란 9장 14절이다. 표면적으로는 폭력적이고 잔인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이 구절은 자신들과의 계약을 먼저 파기하고 메카의 전령을 쫓아내려 한 다신론자들에 대한 보복적, 방어적 행동이다. 이처럼 소지하드 또한 그것이 선제 공격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방어적 성격을 띤다고 봐야 한다. 또한 사신이 천대받거나 박해받은 사건이 국가 간의 전쟁으로 번진 경우는 역사 속에 허다한 만큼, 이것을 이슬람만의 문제로 보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러나 지하드는 현재 극단주의 지하디스트(지하드의 의미를 곡해하여 폭력 행위의 정당화에 사용하는 집단) 집단과 서구권의 정치적 이용 등으로 인해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극단적 소지하드와 비슷한 맥락으로 인식되는 중이다.
서구 언론과 미디어는 지하드를 단순히 폭력적 시도로 그려내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이미지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다. 광범위한 파급력을 가지는 대중 매체의 이러한 시도는 사람들이 이슬람과 지하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며, 이슬라모포비아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서구의 편견은 정치적 차원에서도 극대화되었다.
앞서 소개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냉전 이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미국 행정부에 의해 왜곡되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이슬람 문명이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항할 것이라고 가정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당시 실상보다 더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새로운 편견과 국민들의 불안을 만들어냈다.
또한 9.11 테러를 기점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었고, 언론은 앞다투어 지하드라는 개념과 이슬람의 위협에 대한 우려를 보도했다. 어디에도 지하드의 진짜 의미와 이슬람이 지향하는 평화적 가치는 없었다. 뒤이은 이라크 침공은 이 정서를 증폭시키는 데 더욱 기여했다.
정리하자면, 지하드가 지금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교리와 개념의 자체적 문제라기보다는,
...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지하드에 폭력적, 공격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성한(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우상 숭배자들(다신교도)을 살해하고 그들을 잡거나 감금하라. 또 모든 매복 처소에서 엎드려 그들을 기다리라. (꾸란 9:5)
이 구절은 "칼의 구절"로 불리며 이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인용하는 구절로 손꼽힌다. 이 구절 또한 전후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 구절의 뒷부분에도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자카트를 바친다면, 그들에게 길을 가게 해주어라'라는 서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며 자카트를 바친다면'이라는 말은 조건절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보고자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아래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라.
이주성. (2019). 글로벌 지하디즘의 맥락 분석: 지하드 개념의 왜곡과 편견을 중심으로. 중동연구, 37(3), 47-68.
Karipek, A. (2020). Portrayals of Jihad: A Cause of Islamophobia. Islamophobia Studies Journal, 5(2), 210–255. https://doi.org/10.13169/islastudj.5.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