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는 왜 씨앗을 고정자본이라 하였는가?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의 사용 방법을 유동자본과 고정자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유동자본(circulating capital)은 계속적인 교환을 통해서만 이윤을 가져다 주는 자본이라고 하였다. 고정자본(fixed capital)은 소유주를 바꾸지 않고 수입이나 이윤을 가져다 주는 물건으로 일컬었다. 유동자본의 예는 상인의 화물이나 상인의 화폐가 대표적이고, 고정자본의 예는 토지, 기계, 생산도구이다. 유동자본은 지출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하고, 고정자본은 보유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한다.

농업자본도 유동자본과 고정자본으로 나뉘는데, 고기를 팔기위해 사육하는 소는 유동자본이고, 일소(역축, 役畜)는 고정자본이다. 젖소가 생산한 우유는 유동자본이고, 젖소 자체는 고정자본이다. 스미스는 농부가 심는 씨앗도 고정자본이라 하였는데, 국부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주1)

“씨앗의 가치 전체도 역시 적절하게도 고정자본이다. 씨앗은 토지와 창고 사이를 왕복하지만 결코 소유주를 바꾸지 않으며, 따라서 유통한다고 말할 수 없다. 농업자는 씨앗의 판매에 의해서가 아니라 증식에 의해 이윤을 획득한다.”

스미스가 씨앗을 고정자본이라 한 이유는 농부가 씨앗 자체를 유통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보유함으로써 이윤을 획득하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러하다. 농부는 씨앗이 아닌 씨앗으로 생산한 농작물을 내다팔아 이윤을 획득하게 되므로, 씨앗은 유동자본의 원천이 되고 농부가 반드시 보유하여야 할 고정자본이 된다.

그런데 씨앗은 크기가 작고 손쉽게 운반하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게다가 하나의 씨앗이 수백수천 개씩 많은 양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대게는 일년이 지나면 쓰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고정자본이라하면, ‘고정’이라는 말이 나타내듯, 쉽게 운반할 수 없고, 양이 변하기도 어렵고, 일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이용가능한 상태로 보유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기계, 토지, 일소나 젖소를 보면 고정자본의 특징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금새 없어질 수도 있는 씨앗이 고정자본이 될까?

그것은 씨앗의 가치가 물리적으로 관찰되는 물체로서의 씨앗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씨앗을 관리한다는 것는 씨앗에 깃들어 있는 유전정보를 관리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씨앗의 가치는 씨앗 속에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농부가 봄에 볍씨를 심어 가을에 낟알을 거두어 들이는 양이 많을수록, 밥맛이 좋을수록, 병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강할수록, 그러한 볍씨에 더 높은 가치를 주게 된다. 이러한 가치는 볍씨의 품종이 갖는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 과거에는 농부들이 내년에 더 좋은 씨앗을 심기 위해 튼실한 개체를 눈여겨 보며 보호하기도 했고, 아는 농부와 씨앗을 교환하며 다양한 품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부들이 씨앗을 관리하고 실험했던 일은 씨앗의 유전정보를 관리하던 일이었다. 고정자본으로서 씨앗의 가치는 유전정보에 있다. 유전정보는 보이는 물체가 아니라 농부의 머리 속에 씨앗의 특징으로 기억되는 것인데, 이는 결국 지적재산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가 씨앗을 고정자본이라 한 것은 농부가 씨앗을 보유하는 일이 지적재산권을 갖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씨앗은 어떠한가? 농부들은 씨앗을 고정자본으로 이윤을 획득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씨앗을 기업으로부터 구입하여 심고 있다. (주2) 농부들은 스스로 품종의 개발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이 제공하는 유전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는 결국 농부가 가져야할 고정자본으로서의 지적재산권을 농부로부터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자기 씨앗의 정보를 바탕으로 논밭에 거름을 넣고 흙과 물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던 농부로서의 자립성과 전문성을 잃게 만들었다.

농부들이 씨앗이라는 지적재산권을 잃어 버리면서, 그들은 자영농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게 되었다. 농부들이 씨앗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동안 종자기업들은 농업 엔지니어들과 함께 상업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중요한 경제 주체였던 농부들은 이제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농업 엔지니어들의 네트워크에 종속되었다. 오늘날 농부들은 씨앗뿐만 아니라 농약, 비료, 기계 등 농업 기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자본가 집단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힘들어 졌다.

농부들보다 기술 우위에 있는 기업들은 농부들이 그들에게 의존할수록 이윤을 남기기 쉬워진다. 그들은 농부들에게 씨앗, 농약, 비료를 팔아 이윤을 남기므로, 농부가 스스로 씨앗을 관리하고, 해충의 천적이 서식하는 농업생태계를 보호하고,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활성화하는 일을 권장하지 않는다. 씨앗은 종자기업들에게 지적재산으로서 고정자본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기술을 의존하는 농부들에게 씨앗이란 지적재산이 아닌 소모품이 되었다. 농부들에게 ‘1회용’ 씨앗의 유전정보는 이제 의미가 없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농업 엔지니어들이 농부들로 부터 기술 주체성, 직업적 자긍심, 자본의 몫을 빼앗아 감으로서 자영농부들이 소작인이나 마찬가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농부들이 사회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는 모습은 씨앗의 지적재산권을 잃어버린 농부들의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나 국가에 등록된 종자기업들이 농부를 대신하여 씨앗의 지적재산권을 소유하면 그 국가에게 식량주권이 세워질까? 그런 기업들은 언제든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갈 수 있을 뿐더러, 국내 자본이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농부들이나 농업생태계에 도움이 될 것은 없다. 씨앗에 대한 정의를 세우기 위해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길은 고정자본으로서 씨앗의 지적재산권을 수 많은 농부들에게 되돌리는 일이다. 스미스가 일컬은 바와 같이 씨앗은 농부들에게 고정자본이어야 한다. 농부들이 씨앗의 지적재산권을 갖도록 농업경제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그것이 농부들을 자립하도록 돕는 일이고 결국 나라의 식량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주1. 애덤 스미스, 국부론(상)<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340쪽

 주2. 물론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농업전문 연구기관이 씨앗 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방법도 농부가 유전정보를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은 기업이 씨앗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