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순라길 57년 산증인’ 이희창 할아버지

게시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0. 21. 오전 1:51

선주성 시티스토리 편집장   김민철 조선비즈 인턴기자 | 2013.06.12 ChosunBiz.com

“40년 전엔 ‘종삼’이라는 집창촌으로 유명”

순라길 ‘57년 산증인’ 이희창(77) 형제식당 사장 /  사진=김민철 조선비즈 인턴기자
 순라길 ‘57년 산증인’ 이희창(77) 형제식당 사장 / 사진=김민철 조선비즈 인턴기자
“여긴 원래 집이 꽉 들어차 있어서 사람이 못 다녔어. 순라길이라는 이름만 전해졌을 뿐이지. 지금 이 집들과 돌담 사이는 언덕이었어. 언덕 위 돌담과 붙은 곳은 판잣집이 많아서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지.”

봉익동에서 57년 동안 사업을 하는 이희창(77) 할아버지는 순라길의 산증인이다. 1957년 당시 21세였던 이 사장은 제대를 하고 직장을 찾다 현 종묘공원 자리인 훈정동에 터를 잡았다. 건축 자재상으로 일하던 이 사장은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식당을 운영 중이다.

“90년대 중반 이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남자 혼자 다니기 무서웠어. 길이 생기고 보도블록도 깔려서 왕래하기가 좋아진 거지.”

이 할아버지는 “순라길 주변은 40년 전인 1960년대 후반 ‘종삼(鍾三)’이라는 대규모 집창촌이 번성했다”고 한다. 

“당시 서울에서 종삼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 시골 사람이든 서울 사람이든 올라와서 돈을 까먹는 곳이 바로 순라길 주변이었어.”

종삼 집창촌은 6·25전쟁 이후 형성된 곳으로 성매매 여성 숫자나 규모 면에서 당시 전국 최대였다. 종삼이 사라진 것은 1968년 9월 26일, 서울시의 대대적인 철거 작전인 일명 ‘나비작전’ 때문. 꽃(성매매여성)이 아닌 나비(성매매남성)를 뿌리 뽑는 뜻으로 서울시는 이 일대를 출입하는 남성들을 적발해 명단을 공개했다. 그 결과 단 한 달 만에 종삼은 완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집창촌도 사라졌다.

“양자를 들이는 방식으로 3대에 걸쳐 이곳에 산 내시 어르신도 있었지. 내가 본 마지막 내시 어르신은 실제 궁궐에서 생활하셨다고 했어. 1996년쯤 이사 가셨지.”

이 할아버지는 순라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참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에도 돌담 넘어 뻗은 종묘의 참나무 가지에서 도토리가 수도 없이 떨어져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지. 도토리가 떨어지는 시기면 묵을 쑤어서 동네잔치를 열기도 했어. 근데 길이 생기고 5년쯤 지났을까, 담이 망가진다고 참나무 가지들을 모두 잘라냈어.”

이 할아버지는 순라길이 깨끗하고 안전해 진 것은 좋지만, 예전 풍경이 많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순라길은 조선시대부터 역사가 깊은 길인 만큼 전통문화와 관련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섰으면 좋겠어. 그래야 순라길을 오는 사람들이 전통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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